외교부, 이송업체 현황 파악 등 연구 실시
복지부 등 관련 부처와 논의 나서 책임 나누기
오는 2021년 1월 16일 ‘재외국민보호를 위한 영사조력법’ 시행을 앞두고 재외국민 환자 이송 지원 방안 마련을 위해 범부처 차원의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영사조력법은 재외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영사조력과 관련한 제반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민의 안전한 국외 거주·체류 및 방문을 도모하기 위해 제정된 법이다. 하지만 그간 재외국민 환자 보호에 대한 소관부처가 불분명하고 법적 체계도 미비했던 터라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자격 의사 둔 이송업체 난립, 비용은 수천만원인데 ‘법’이 없다
사고나 뇌졸중과 같은 급성질환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다. 해외라고 할지라도 응급상황이라면 당연히 골든타임 내 치료를 받는 것이 먼저다. 문제는 언어장벽 등으로 인해 환자가 어떤 상태인지, 회복은 언제 되는지 일반인이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게다가 건강보험제도에 익숙한 우리 국민이 해외에서 발생하는 높은 의료비를 감당하기엔 부담이 크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국내로 이송되고 싶어 한다. 의료 시설 등이 취약한 곳이라면 더욱 그렇다.
해외여행자가 늘면서 응급환자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한해 1000명 이상의 우리 국민이 해외 의료기관에서 생사를 다투고 있지만, 재외국민 환자 보호에 대한 소관부처가 불분명하고 법적 체계도 미비해 국내 이송이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영사관에서 지원하는 재외국민 보호 서비스 또한 매우 제한적이어서 환자와 보호자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감당하며 민간 해외응급환자이송업체를 이용해야 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현지 의료기관이 환자 이송을 거부할 경우 공신력 있는 국내 의료진이 직접 방문하지 않는 이상 이송 자체가 어렵다.
또 국내에는 의료진과 의료장비 등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부실 해외응급환자이송업체들이 많다. 업체 설립에 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일반 서비스업’으로 신고만 하면 되고, 국가 차원의 관련법과 제도적 규제가 전무해 사실상 ‘불법’을 저지르는 것도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석현 의원이 외교부·보건복지부·국토교통부·지자체에게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현재 광역지자체에 등록된 이송업체는 전국적으로 97개이지만 포털사이트에 등록된 업체들은 응급이송업체가 아닌, 일반 서비스업인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의사를 사칭하는 무자격자 또는 환자 진료 경험이 부족한 인턴 의사를 해외로 데려가 환자를 국내로 이송하다가 심각한 뇌 손상을 입히거나 사망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김호중 순천향대 부천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에는 해외 응급환자 이송과 관련한 법 자체가 없다. 그러니 사설업체 운영 실태, 정확한 환자 현황 등 파악이 안 되고 있다”며 “국내 이송업체 광고들을 보면 대학병원에 정식으로 소속되어 있지 않은 촉탁의들이 이송을 맡고 있다고 되어 있다. 어떤 곳은 2급 응급구조사가 아닌 사람이 환자를 데리러 가면서 억대 비용을 받더라”라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운이 좋으면 국적기를 이용해 2000만원대로 올 수 있지만, 국제 이송업체를 이용하게 되면 수억원이 발생한다”며 “하지만 어떤 항공사가 중증 환자를 비행기에 태우고 싶겠나. 항공사 내 환자, 사망자, 범죄인 송환 등을 대상으로 하는 특수예약팀 직원도 매우 적다. 심지어 A 항공사는 직원이 1명이고, 현지 항공사에 연락하라고 한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연간 약 1000건, 아시아나는 2016~2019년(7월)까지 82건의 이송이 있었다. 국내 국적기를 제외한 각종 전세기 및 외국 국적기 등을 고려하면 응급이송 현황은 연간 1000건 이상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총대 멜 수 없어”…소관부처 없어 제도 마련 난항
외교부 등에 따르면 외교부의 ‘재외국민 응급환자의 국내 이송 지원 방안’과 관련한 정책연구용역 사업이 최근 마무리 절차에 돌입했다. 하지만 그동안 재외국민 환자에 대한 관리체계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이번 연구도 ‘이송업체 현황’ 파악에 그치고 있다. 게다가 해당 사안은 영사조력과 관련해서는 외교부, 의료는 복지부, 항공기는 국토부, 여행업과 관련해서는 문화체육관광부, 여행자보험은 금융감독원 등이 관련된 상황이라 각 부처가 모여 논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선뜻 나서는 곳이 없다.
외교부 관계자는 “현재 믿을 만한 이송업체들을 선별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실태를 파악하고 있다”며 “지금 외교부가 재외국민 환자 및 보호자에게 할 수 있는 서비스는 전화통역, 일부 비용 지원 안내, 이송업체 소개 정도인데, 검증된 업체가 없으니 정확한 정보 제공에 어려움이 있었다. 연구결과가 나오면 안전이 확인된 업체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하지만 해외에서 문제가 발생한 일이라고 해도 모든 영역을 외교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항공 이송과 관련해서는 국토부, 응급환자는 복지부의 영역이기 때문에 어느 한 부처에서 총대를 메고 (제도 구축을) 다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며 “이에 지난주 관련 부처들과 간단하게 중간 논의를 했고, 향후 협력을 강화할 예정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복지부 관계자는 “복지부의 응급의료법은 국내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만 효력이 있다. 해외에서 발생하는 일을 관여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부처간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며 “그러나 영사조력이 핵심이기 때문에 외교부가 필두로 나서 체계를 짜야 한다고 본다. 우선 외교부의 연구결과를 기반으로 협의에 나설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외교부의 영사조력법 시행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지 않다. 세부 규정 마련을 위해 내년에는 어느 정도의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의사들 모여 해외응급이송팀 운영…“여행자 보험 가입 필수”
해외 환자 국내 이송에 대한 체계와 국가 차원의 지원도 없는 상황에서 김호중 교수는 직접 환자들을 찾아간다. 응급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의사’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다.
김 교수는 “언론 등에서 이송체계에 대한 문제를 많이 지적하고, 응급의학회 활동을 하면서 이름이 알려지니 사고를 당한 환자의 보호자들이 내게 연락을 한다. 물어보면 영사관에서도 포털사이트에 있는 여러 업체들과 내 번호를 알려준다고 한다”며 “학회에서는 365일 24시간 해외 응급 이송을 요청할 수 있는 이송팀을 운영하고 있다. 정식으로 의뢰를 신청하면 귀국시 가까운 병원에 바로 입원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학회 내 전문의들 중 가까운 시일 내에 현지에 갈 수 있는 사람이 직접 찾아간다. 학회 차원의 활동이기 때문에 비용도 정해져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환자들을 국내로 데려오기 위해서는 의사가 직접 가서 싸워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의료시설이 안 좋은 의료기관에서도 환자를 안 보내려고 하고, 한국 의사들을 안 믿는 경향이 있어서 교수들이 직접 가서 영어로 소위 ‘기싸움’을 해야 한다”며 “우리가 나서기 전까지 환자와 보호자는 낯선 곳에서 마냥 불안해하며 고비용의 진료비와 이송료를 준비해야 한다. 자국민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인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가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토로했다.
이어 “계속 이렇게 방치하다가 더 큰 문제가 발생하면, 예를 들어 단체가 사고를 당했을 때, 아이들이 다쳤을 때 사회적 반발은 엄청 커질 것이다”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이송체계 구축이다. 부처들은 자기 일이 아니라고 하고, 외교부도 구체적인 지원 범위를 규정하지 않았지만 우선 자국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국가가 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김 교수는 “모든 비용을 국가가 지원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여행자 보험 상품을 개발하고 가입을 권장하면 된다. 국민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본인은 안 다칠 거라 생각하지만 하루에도 몇 통씩 전화가 온다”며 “효도관광 간 노인들이 뇌출혈로 쓰러지고 여행지에서 갑자기 진통이 와 미숙아를 출산하는 경우도 있다. 여행자 보험은 꼭 들고 가고 안전수칙도 준수해야 한다. 응급상황의 경우에는 현지 병원에서 우선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고, 보호자가 한국에 있는 경우에는 신속히 현지로 이동해 환자의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