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김희란 인턴 기자 =장기간 휴일 없이 달려온 시민들에게 어둠 속 한줄기 빛 같은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오는 17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한다는 깜짝 발표를 한 것이죠. 기쁨도 잠깐. 이런 낭보가 전해진 지난달 21일, 임시공휴일을 제치고 생뚱맞은 단어가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등장했습니다. 바로 ‘사흘, 나흘’ 입니다.
왜 갑자기 많은 사람이 사흘과 나흘을 검색했던 것일까요. ‘휴일이 사흘간 이어진다’는 기사 제목을 보고 사흘을 4일로 착각한 네티즌들이 댓글에서 논쟁을 벌인 것입니다. 일부 네티즌들은 ‘연휴는 3일인데 왜 사흘이냐’며 기자를 ‘기레기’라고 비난했습니다. 또 다른 네티즌들은 ‘학교에서 안 배웠냐’며 면박을 주기도 했습니다.
1일, 2일 등 날짜에 숫자를 붙여 세는 것은 아라비아 숫자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사용된 방식입니다. 근대 이후부터죠. 하루, 이틀, 사흘은 날짜를 세는 순우리말입니다. 아라비아 숫자가 도입되기 전부터 쓰여 온 방식으로 조상들에겐 매우 중요한 어휘였습니다.
사흘과 나흘의 뜻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거리에 나가 시민들에게 직접 물었습니다. 얼마 전 뜬 실시간 검색어에 덕분인지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정답을 외쳤습니다.
이들은 다만 학교에서 배운 기억은 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김모(19·여)양은 “책을 읽다가 사흘과 나흘을 본 적은 있지만 그 이상은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또다른 시민 김모(29·여)씨 “실시간 검색어에 사흘, 나흘이 올라온 후에야 그 뜻을 알았다”며 “학교에서 배운 기억이 없다”고 전했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적 없다’는 이들의 말은 사실일까요?
먼저 교과서를 확인해봤습니다. 현재 초등학교에서 쓰이는 2015년 개정 교육과정 전체 학년의 국어 교과서를 샅샅이 뒤졌습니다. 사흘, 나흘 등 날짜를 세는 순우리말을 다루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혹시 몰라 초등학교 수학교과서 및 중·고등학교 국어교과서도 일부 살폈지만, 역시 없었습니다.
이전 교육과정은 어떨까요. 6차 시기(1997년)와 7차 시기(2002년)의 전체 학년 국어교과서와 일부 수학교과서까지 확인했지만 해당 내용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초등학생 때 배웠다’는 지적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의문은 현직 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은 뒤에야 풀렸습니다.
초등학교 교사 정모(29·여)씨는 “현행 교육과정에는 날짜를 세는 순우리말을 가르치는 차시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교육과정에는 없지만 가르친 적은 있다”며 “2학년 수학시간에 오전, 오후, 반나절 등 하루의 시간을 배우는 차시가 있는데 이와 연계해서 하루, 이틀, 사흘, 나흘을 가르친 경험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고등학교 교사 박모(37·여)씨도 “교과서에서 해당 내용을 본 적은 없지만, 상식 맞춤법을 다룰 때 몇 번 가르친 적은 있다”고 답했습니다. 즉 사흘, 나흘 등은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배우는 내용이 아니지만 교사의 재량에 따라 배운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는 겁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측에 확인해본 결과 사흘, 나흘 등 날짜를 세는 순우리말은 현행 교육과정 및 역대 교육과정에 포함된 적이 없습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관계자는 “지나치게 지엽적인 내용까지 교과서에 모두 담을 순 없다”며 “교육과정 틀 안에서 세부적인 교수학습 내용을 결정하는 건 교사의 몫”이라고 답했습니다.
김도남 서울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역시 “체계적인 지식적 틀이 있어야 교육과정에 포함될 수 있다”라며 “날짜 단위는 개념이 복잡하지 않은 단순 낱말이기 때문에 굳이 교육과정에 의도적으로 포함시켜 가르칠만한 내용이 아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사흘을 모르면 비난받아야 할까요. 이대성 국립국어원 공공언어과 학예연구관은 “현재는 사흘이라는 단어가 일상에서 잘 안 쓰이다보니 모른다고 해서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진 않을 것”이라며 “사흘이 일상생활에서 꼭 필요한 단어인지에 대한 합의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에 해당 단어를 모른다고 해서 문제라고 할 순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다만 어휘를 풍부하게 알수록 표현력이나 이해력, 사고력이 풍성해지기 때문에 해당 단어들(날짜 단위)을 알아두면 적재적소에서의 자연스러운 말하기, 독서에서의 이해가 용이해질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사흘, 나흘을 몰라도 살아가는 데 지장은 없습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하나 둘 잊혀져가는 순우리말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기자 뿐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