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통제불능의 감염자들(감염되기 전의 행동 습관을 기억하는) 때문에 복도식 아파트에 갇힌 두 사람이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디지털시대에 통신(핸드폰, 와이파이, 문자)이 단절되었고, 식량과 물이 떨어졌으며, 전기마저 끊어진 상황이다. 배고픔, 두려움보다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는 외로움에 절망한 준우(유아인)는 자살하려 한다. 그러나 건너편 아파트의 또 다른 생존자 유빈(박신혜)이 보낸 희망의 빛을 통하여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갖게 된다. 이후, 두 사람은 밧줄을 통해 서로에게 식량을 전해준다. 무전기를 이용해 대화를 나누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라면을 끓여 먹는다. 마치 옆에서 같이 식사-‘밥을 같이 먹는 가족(家族)인 식구(食口)’-를 하는 듯, 필연적인 파트너(딥택트, deep-contact)가 된다.
자신의 집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유빈은, 준우가 사는 동 8층이 안전한 장소임을 확인하고, 유빈과 준우는 서로 힘을 합쳐, 감염자들과 혈투를 벌여, 아파트 8층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준우와 유빈을 감염된 아내의 먹잇감으로 하고자 하는 마스크 남자를 죽이고, 마침내 헬리콥터 타고 나타난 군인들에 의해 구출된다. 헬기가 안전지대로 들어서자, 비로소 안 되던 인터넷이 갑자기 되면서 휴대폰 알람이 울린다. 준우가 전에 SNS에 올렸던 ‘#살아남아야한다’는 해시태그가 ‘#살아있다’로 변하며 영화가 끝난다.
코로나19는 아무리 조심해도 감염 위험성이 높고, 남을 감염시킬 위험이 높다는 특성이 있으므로, 타인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따라서 자신만의 행복을 위한 ‘여행’, ‘취업’, ‘결혼’, ‘유학’ 등을 미루거나 포기하였다. 또한, 교육 격차와 경제 격차도 심화되었다. 경제에 끼친 영향을 살펴보면, ‘경제성장률 하락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 ‘기업경영 악화로 인한 폐업, 파산의 급증’, ‘주식가격의 하락’, ‘공장의 가동 둔화’, ‘무역과 소비의 위축’ 등의 현상이 벌어졌다. 무엇보다도 ‘사람과 사람 사이를 떼어놓기 때문에, 누군가를 만날 수도 만질 수도 없다”는 점이 가장 안타깝다.
‘人’(사람 인)자는 사람이 걸어가는 모습을 본떠서 만든 문자로, 왼발과 오른발이 서로 받쳐 주는 형상이다. 어느 한쪽이 없으면 중심을 잃고 쓰러지므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공동체를 이룬다. 즉, 인간은 혼자 살 수 없으며, 혼자서는 행복할 수 없다. 게임 스트리머로 비대면적 인물인 준우와 등산이 취미인 면대면적 인물인 유빈. 상반된 두 사람이 자신들의 생존도구(준우는 드론, 휴대폰 등의 디지털 기기, 유빈은 손도끼, 아이스픽, 야영용 낫, 밧줄, 망원경 등의 아날로그적인 물건)를 이용하여, 서로의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나가며, 진정한 소통과 연대(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결합)를 이루어 생존하는 과정을 그린 <#살아있다(2020)>는 의미가 크다.
감염병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치료제의 개발이 최선이지만, 정부의 맞춤형 통제 및 효율적인 의료제도 정비를 통한 충분한 의료 시설과 인력 마련, 성숙한 시민으로서 방역수칙 준수(‘마스크 쓰기’, ‘손 씻기’ ‘기침예절’,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최근 친한 교수의 전화를 받았는데, 필자의 칼럼을 잘 보고 있다면서, 80세가 된 자신의 스승께서 ‘영화를 통한 교육’에 관한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이었다. 한참 영화와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좋은 날 만나기로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다. 부족한 글이나마 이 글을 통하여 나를 아는 모든 사람에게 ‘열심히 살고 있음’을 전할 수 있어서 행복하였다. 코로나19도 결국은 끝이 날 것이고, 우리 모두가 진흙탕에 빠져 있을 때에도 별은 반짝이고 있다. 소소한 일상이 행복이 되기를 희망하며,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해준’ <#살아있다(2020)>,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