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운의 영화 속 경제 이야기] 폴 뉴먼의 ‘심판(The Verdict, 1982)’과 뇌물의 경제학

[정동운의 영화 속 경제 이야기] 폴 뉴먼의 ‘심판(The Verdict, 1982)’과 뇌물의 경제학

정동운(전 대전과학기술대학교 교수)

기사승인 2020-12-17 15:39:01
▲정동운 전 대전과기대 교수
프랭크 갤빈(폴 뉴먼)은 앞날이 창창한 변호사였지만 배심원에 대한 뇌물증여라는 누명을 쓰고 집행유예를 받는다. 이 사건 이후 그는 알코올중독자가 되어, 보험브로커 변호사로 전락한다. 그런 그가 가톨릭 종합병원의 의료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피해자 언니가 병원을 제소한 사건을 맡게 된다. 처음에는 의뢰인에게서 합의금만 챙길 목적으로 맡았지만, 환자를 보고난 후 갤빈의 생각이 바뀐다. 그러나 상대는 돈과 권력을 지닌 가톨릭 교단과 법률사무소였으며, 그의 협력자는 스승이자 동료였던 노 변호사 미키(잭 워든)뿐이었다. 이후 갤빈은 권모술수에 능한 상대측 변호인단과 편파적인 판사에 고전한다. 갤빈은 상대 의사의 과실을 증언해 줄 의사 그루버를 찾아내지만, 그 의사도 상대편에 매수되어 종적을 감춘다.

더구나 갤빈이 사귀게 된 로라(샤롯 램플링)는 상대편 법률사무소에서 보낸 스파이였다. 그루버 대신 증언할 의사를 구하지만 그 의사는 전문의 자격도 없는 흑인 노인에 불과하였다. 어려움에 빠지지만 결정적인 증인을 찾아낸다. 비로소 그는 정의로운 변호사의 모습을 찾고, 배심원들에게 “오늘은 여러분이 법입니다.”라며, 정의사회구현은 ‘법보다는 양심’에 달려 있다고 최후 변론을 한다. 결국, 그의 노력으로 재판에 승리한다.

영화에서 갤빈의 앞길을 막은 것은 뇌물(賂物)이었다. 한자로 ‘賂(뇌물 줄 뇌)’자는 貝(조개 패)와 各(각기 각)이 결합된 글자다. 貝가 ‘화폐’로 사용되었으므로 ‘돈’, ‘재화(財貨)’를 뜻한다. 各은 거꾸로 된 발(止․지)과 집의 입구(口․구)로 구성되어 집에 ‘도착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돈을 다른 사람의 집으로 가져가는 것’이며, 발이 거꾸로 그려졌다는 것은 그것이 비정상적이며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서 이루어지는 행위를 말한다.(하영삼, “(漢字 뿌리 읽기) <129> 선물(膳物)과 뇌물(賂物)”, 동아일보, 2004.11.17. B15면).

즉, 돈은 ‘공적(公的)으로 통용되는 재물’인데, 여기에 ‘各’이 결합되어 몰래 제각각 ‘사적(私的)으로 유통되는 재화’를 뜻한다. 그리고 뇌물을 뜻하는 영어 단어 ‘bribe’는 중세 ‘프랑스’어에서는 ‘거지에게 주는 한 조각의 빵’(즉, 빈민 구호물자)이 뜻이었으며, 후에 ‘걸식하다’를 뜻하게 되었다가, 구걸해서 안 되면 ‘도둑질하다’의 뜻으로 변모했다.(월간영어사 편집부 편, '英單語 이야기', 서울 : 월간영어사, 1997, p.33.). 이와 같이 중세시대에는 선물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다.


물론, 선물(膳物)이란 글자에서 선(膳)은 좋은(善) 일에 쓰이는 고기(肉)를 말한다. 고대사회에서 제일 중요하고 좋은 일이 제사였으므로, 膳은 ‘제사에 쓰이는 고기’를 뜻한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최상급의 고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물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한자의 자원으로 본 선물은 정말 순수한 개념의 선물이다.(하영삼, 앞 글)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 속, 남편과 아내의 선물 ‘머리핀’과 ‘시곗줄’은 아름답고 소중한 선물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대가성이 없는 선물이라 하더라도 받으면 언젠가 그 사람의 말을 들어주게 되므로, 무섭고 위험한 것이 선물이다. 그래서인지 독일어에서는 선물을 의미하는 gift라는 단어에 ‘독(毒)’이라는 의미까지 담겨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동서를 막론하고 선물을 싫어할 사람은 없다는 데서 뇌물은 탄생하였다. 이러한 뇌물(賂物)은 ‘직권(職權)을 이용하여 특별한 편의를 보아 달라는 뜻으로 주는 부정한 돈이나 물건’을 뜻한다.

‘천금으로는 죽지 않고 백금으로는 벌 받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천금을 뇌물로 바치면 죽을 목숨도 살릴 수 있고, 백금이 있으면 죄를 면한다는 뜻이다. 고구려에 감금당한 김춘추가 청포(靑布) 300보를 뇌물로 주고 탈출한 경우가 그렇다.

그러나 전국시대 여불위(呂不韋)는 자초(子楚)에게 갖은 뇌물과 미녀를 바쳐 진시황을 낳았지만 끝내는 자살해야 했고, 오나라 부차(夫差)에게 패한 월나라 구천(勾踐)은 미녀 서시(西施)를 뇌물로 바쳐 마침내 오나라를 멸망시켰다(臥薪嘗膽의 고사). 뇌물은 일신상의 파멸뿐만 아니라 나라를 망하게 할 수도 있다.(鄭錫元, “(재미있는 漢字여행) 賂物”, 중앙일보, 1994. 8. 15.) “내겐 물질적 유혹이 많았지만, 유혹을 물리칠 비법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어려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어머니의 ‘도둑질하지 말라’는 말씀 때문이었다.”(링컨 대통령) 정직했던 그는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 중의 한 명임이 분명하다.
최문갑 기자
mgc1@kukinews.com
최문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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