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박태현, 이승주 기자 =시간이 멈춘 듯 낡고 오래된 골목에는 옛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좁은 골목에는 낡은 시계들이 진열된 상점이 빼곡히 들어차 있고, 확대경을 착용한 시계 장인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빛바랜 간판과 시계 장인들이 어우러진 이곳은 '예지동 시계골목'이다.
좁은 골목 사이로 펼쳐진 시계 진열장이 박물관을 연상시킨다. 사람들은 시계 장인에게 수리를 맡기기 위해 골목을 서성이고 있었다. 이들은 시계 진열장 앞에서 가격을 흥정하거나, 장인들의 시계 수리 솜씨에 시선을 떼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예지동 시계골목은 1960년대 청계천 인근 상인들이 이주하면서 형성됐다. 당시 사과박스 위에 시계를 진열해 놓고 팔던 게 시초다. 이후 귀금속 상점들이 늘어났고 1970~80년대에는 혼수 마련을 위해 가야하는 곳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가 터진 이후 시계를 비롯해 예물 상권이 백화점으로 이동하면서 손님들의 발길은 점차 줄었다. 이어 2006년에는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현재 예지동 시계골목은 일부 업계 장인들만 남아있다.
45년째 이 골목을 지킨 장충락 장인은 기계식 시계를 수리하며 상점을 운영하고 있다. 2~3평 남짓한 상점에는 오래된 시계들이 공간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기자의 인기척에도 장충락 장인은 등을 구부린 채 시계 수리에 여념이 없었다. 수리하는 모습이 의사 같다는 기자의 말에 “멈춘 초침이 내 손을 거쳐 움직일 때면 죽은 사람 살리는 기분이에요”라며 장인은 말하는 중에도 시계 살피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시계골목에서 만난 상인들은 이 공간이 곧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염려로 걱정이 많다. 현재 예지동 시계골목은 서울 도시 정비구역 중 재개발 구역으로 분류되어 있어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 시계골목을 찾는 이들과 자리를 지키는 장인들이 어쩌면 단순히 시계를 수리하기 위해서가 아닌 좋은 기억이 담겨 있던 예지동 시계골목이 그리워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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