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매운 맛을 즐기면, 기름기가 빠지거나 순한 맛의 다이어트 음식은 ‘종이 뭉치처럼’(장강명 소설가) 맛없게 느껴진다. 장강명 소설가에 의하면, 고추와 식물의 매운 맛을 표시하는 척도를 스코빌 지수라 한다. 1986년 나온 신라면의 스코빌 지수가 2700 이었는데, 최근 라면은 스코빌 지수가 5000이 넘는다고 한다. 라면 뿐 아니라 과자, 치즈, 족발, 소시지, 돈가스, 김치도 매운 제품들이 인기다. 마라탕과 마라샹궈가 유행하더니 얼마 전에는 급기야 매운 도넛, 매운 우유까지 나왔다. 좀 더 기다리면 매운 탄산음료나 매운 [와인이나] 매운 술[소주]도 나올지 모른다고 소설가는 진단했다.
왜 우리는 매운 맛을 찾을까? 사람들은 세상이 살기 힘들어진 탓이라고 말한다. 무한 경쟁과 코로나 블루 등 점점 더 심해지는 스트레스를 매운 맛으로 풀려한다는 것이다. 장강명 소설가는 다르게 해석한다. "이런 종류의 경쟁은 한 번 시작되면 그 자체의 힘으로 굴러가게 되는 듯하다. 세상의 평화와 상관없이, 보다 강한 자극을 향해.“
우리 동네에는 표준과학연구소가 있는데, 왜 그게 있는지 잘 몰랐다. 서양음악계에서는 표준 조율 음을 정하기 전까지 '음 높이 인플레이션'이라는 현상이 있었다 한다. 연주자들이 조금씩 악기의 음을 높이는 경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장강명 소설가에 의하면, 바로크 시대의 음악을 작곡 당시의 악기 조율 방식과 연주법으로 연주하면 지금 우리에게는 반음 정도 낮게 들린다고 한다.
표준이 필요하다. 매운 맛과 높은 음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보상을 받지만, 순한 맛과 낮은 음은 제대로 평가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맛과 음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야기(드라마나 영화, 시 등)의 세계에서 담백한 이야기도 순한 맛과 작은 소리의 처지와 비슷하다. 그래서 상업 영화의 폭력 묘사는 점점 더 잔혹해지고, TV 드라마의 막장 강도가 갈수록 심해지고, 심지어는 역사 드라마도 왜곡이 사해진다. 뿐만 아니다, 가요와 팝송도 평균 음량이 커질 뿐만 아니라 비트가 점점 더 강렬해진다.
"맵지 않아도 좋아요", "담백한 이야기가 좋아요". 이런 말은 듣기 힘들다. 사람들은 좀 더 자극적인 것을 찾는다.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자들도 평균적인 말을 너무 심하게 이상한 소리로 비튼다.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분야에서 이런 현상이 더 두드러진다. 장강명 소설가의 주장처럼, 다양성이 증가하는 것이라면 환영할 일이지만, 실제로는 표준에 대한 감각이 바뀌면서 매운 맛이 순한 맛을 쫓아내는 현상이 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정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막말을 일삼고 갈등을 부추기는 모리배는 카메라 앞에 자주 서게 되지만, 타협하는 신사는 이름을 알리지 못한다." 내 이야기가 아니다. 소설가 장강명이 하는 말이지만 나도 동의한다. "2010년대 이후 용꿈을 꾸는 한국 정치인들은 대부분 이런 구조를 이해하고 '매운 맛' 경쟁을 벌였다. 언론도 거기에 퍽 협조적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