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 형제는 독립영화부터 상업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민감한 소재를 거침없이 다뤘다. 독립영화 데뷔작인 절지 애니메이션 ‘이 사람을 보라’(2001)는 십자가에 걸린 예수부터 마릴린 먼로와 아인슈타인이 등장하고, 상업영화 데뷔작 ‘화이트: 저주의 멜로디’(2011)는 아이돌 가수의 어두운 이면을 공포로 승화시켰다. 철학과 인문학적 사고로 사회 현상을 비틀어 표현하던 이들이 새롭게 주목한 건 보이스피싱이다. 28일 쿠키뉴스와 화상으로 만난 김선 감독은 보이스피싱을 주제로 삼은 것에 대해 “언제나 관심 있던 화두”라고 답했다. 김곡 감독은 개인 사유로 불참했다.
“보이스피싱은 이미 사회 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잖아요. 과거에는 영화에 보이스피싱이 에피소드 일부 정도로만 나왔지만, 피싱 범죄를 본격적으로 다뤄보고 싶다고 늘 생각했어요. 보이스피싱에 당하는 장면뿐만 아니라, 주인공인 서준(변요한)의 눈을 통해 범죄조직의 지옥도 같은 민낯을 보여드리고 싶었죠. 범죄의 산실인 콜센터 구현에 특히 주력했어요.”
쉽지만은 않은 작업이었다. 중국에서 진행되려던 첫 촬영은, 드라마처럼 출국 전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문제가 터지며 난항에 빠졌다. 중국 일정을 뒤로 미루고 한국에서 먼저 촬영을 진행했지만 코로나19 사태는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국내 촬영을 마친 뒤에도 중국 출국이 불가하자 현지 스태프를 고용해 얻은 촬영물에 국내에서 찍은 인물들을 합성하는 것으로 제작을 대신했다. 김 감독은 “여러모로 도전 과제가 많았던 작품”이라고 회상했다.
또 다른 과제는 사회 이슈를 담아내며 장르적 쾌감을 전달하는 것이었다. 경각심과 쾌감, 두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골몰하던 감독은 관객 호평을 보고나서야 비로소 안도했다. “점수로 따지면 100점 정도”라며 유쾌히 웃는 여유도 보였다. 이유 있는 만족감이다. 금융감독원부터 경찰청 사이버수사팀, 화이트해커 등 철저한 사전조사를 통해 표현한 범죄조직 내부 모습은 감독의 자신감이 됐다.
“최대한 많은 정보를 모으려 했어요. 금감원 분들에게는 피해 사례를, 형사님들에게는 가해자 이야기를, 해커 분들에게는 범죄 기술을 들으며 시나리오를 보강했죠. 보이스피싱 범죄는 현대 첨단 기기와 함께 진화하는 범죄여서 더욱 복잡해요. 영화로 범죄 내용을 충분히 보여드리려 했지만, 다 보여드리지 못한 아쉬움도 있어요. 가장 중요히 여긴 건 피싱 콜센터 내부 모습이었어요. 형사님들도 다 알지 못하는 미지의 공간이라, 영화적 상상을 가미해 구현했어요.”
사회문제에 면밀히 접근하자는 건 독립영화부터 상업영화까지 올곧게 지켜온 이들 형제의 뚝심이다. 사회 전반에 대한 관심은 상업영화로 넘어오며 사회악을 해부하듯 뜯어보는 것으로 확장됐다. 스스로를 ‘할리우드 키드’(어린 시절 미국 영화에 열광하던 사람)라고 자칭한 김선 감독은 “조 카펜터, 스티븐 스필버그와 같은 고전주의 감독 작품을 보고 자라다 보니 장르 영화로 다져졌다”고 말했다. 시의성을 가져가되 장르물 성격도 놓지 않으려는 이들의 차기작은 역시나 장르물이다. OTT 확장세가 이어지며 시대가 달라지고 있지만 그가 생각하는 영화의 본질은 같다. 그래서 이들 형제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내일도, 그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로 영화를 만든다.
“코로나19로 시장 구도가 급변해도, 다수가 동시에 보는 콘텐츠라는 성격에서 영화는 변하지 않아요. 아무리 집에서 혼자 영화를 본다고 해도 결국은 다른 사람과 그 작품을 공유하는 거거든요. 영화의 근본적인 정신은 공유하고 있는 셈이죠. 본질은 바뀌지 않을 거라고 봐요. 그래서 저희는, 어디서든 정체성이 반영된 영화를 만들 거예요. 저희를 영화로 이끄는 가장 큰 원동력은 바로 영화예요. 영화를 보며 느끼는 수많은 감정들을 저희 식으로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이 커요. 제가 느낀 감정이 그대로 전달되는 것, 저희에겐 그게 곧 성공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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