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는 ‘속이 하얗다’하여 백채(白菜), 갓은 ‘겨자의 매운맛이 난다’하여 겨자 개(芥)자를 써서 개채(芥菜), 시금치는 ‘뿌리가 붉다’고 하여 홍근채(紅根菜) 등, 채(菜)는 이렇게 식물을 나타낸다. 그러면 담채(淡菜)는 무엇일까?
담채(淡菜)는 채소가 아닌 바다에 사는 동물의 일종인 홍합(紅蛤)의 한약명이다. ‘담백한 맛이 나는 바다의 야채’ 같다고 하여 '담채'라고 불린다, 지역에 따라서는 ‘담치’라고도 한다. 담채, 즉 홍합은 전 세계적으로 250여 종이 분포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삼면의 바다에서 모두 자란다. 조선 시대 허균(許筠)은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에서 “동해와 남해에서도 홍합이 나지만, 남해의 것이 조금 더 크다”라는 기록을 남겼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기록을 통해서도 일찍부터 우리나라의 바다 전역에서 홍합이 생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홍합(紅蛤)이라는 이름은 다른 조개류에 비해서 살 색이 붉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암컷의 살이 붉은 편이고, 수컷의 살 색은 하얀 편이다. 맛이 담백해 담채(淡菜)이며, 이패(貽貝)、비취이패(翡翠貽貝), 각채(殼菜), 해폐(海蜌), 동해부인(東海夫人)이란 이름으로도 불린다. 대만에서는 홍합 껍질의 색이 ‘공작의 화려한 깃털만큼 아름답다’하여 공작합(孔雀蛤)이라고도 한다. 순수 우리말로는 ‘섭’이다.
홍합은 해산물 중에서 영양이 풍부하면서 가격도 비교적 저렴해서 서민들에게 인기 높은 요리 재료이다. 겨울철 식재료로 국물 요리 등에 사용하여 시원한 맛을 내기에 안성맞춤이다. 단백질의 함량이 높아서 해중계단(海中雞蛋) 즉 ‘단백질 함량이 계란만큼 높은 바다의 계란’이라고도 불린다.
요즘같이 추위가 시작되는 초겨울부터가 제철인데, 산란기가 시작되는 봄부터 여름까지는 맛이 급격히 떨어진다. 외국에서는 'A로 시작되는 달인 4월 April 에서, 8월 August 까지 조개류를 먹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는 독소가 있는 플랑크톤이 수온이 상승함에 따라 번식하여 삭시톡신(Saxitoxin)이라는 마비성 독소를 만들기 때문이다. 홍합이 자체적으로 내는 것은 아니지만, 삭시톡신이라는 독이 홍합 내에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 시기에는 섭취에 주의해야 한다.
홍합은 요리의 재료로 다양하게 이용된다. 『식료본초(食療本草)』에는 ‘구워 먹어도 좋고, 끓이거나 익혀 먹어도 좋다’고 기재되어 있다. 미역국이나 짬뽕 에 넣기도 하고 홍합탕을 끓여서 먹기도 한다. 서양에서는 파스타나 다른 요리에도 자주 사용된다. 홍합은 단백질은 물론이고, 칼슘, 마그네슘, 칼륨, 비타민, 철분 등이 풍부한 고영양 식품이다. 홍합국물 특유의 시원한 맛은 타우린, 베타민, 아미노산 등인데 소화력이 약한 사람들도 누구나 소화 시킬 수 있는 성분들이다.
간 기능 개선에 효과적인 타우린과 베타인 성분도 풍부하다. 타우린은 체내의 나쁜 콜레스테롤을 배출시키는 작용이 있다, 또한 타우린 성분은 피로 회복과 시력 향상에도 효과가 있다. 홍합에 풍부히 함유되어 있는 셀레늄은 노화방지와 항암효과를 지닌다.
이는 셀레늄이 체내 산화 과정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홍합은 허리와 다리를 튼튼하게 하기에 요통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는 현대영양학적으로도 홍합에 풍부한 단백질, 칼슘, 마그네슘이 관절과 근육을 튼튼하게 하기 때문이다.
한의학에서는 홍합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淡菜味甘鹹,性溫。入肝、腎二經。功能補肝腎、益精血、助腎陽、消癭瘤
담채는 맛이 달고 짜며, 그 성질은 따뜻하다. 간과 신장에 작용하여 간과 신장을 보하고, 정과 피를 기르며, 신장의 양기를 돕고, 갑상선 등의 질환을 치료한다.
나이가 들어 체력이 떨어지고 허리나 무릎 등이 자주 아프며 기력이 떨어지는 증상을 한의학에서는 ‘신장이 약해진다’고 표현한다. 담채는 남성 호르몬 부족으로 약해진 남성들의 정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 여성에게는 생리를 고르게 하고 자궁 출혈, 대하 증상을 다스리는 데도 도움이 된다. ‘대익부인(大益婦人)’이라는 말처럼 부인에게 매우 이롭다. 동해부인(東海夫人)은 『본초강목(本草綱目)』에 기록된 이름으로, 특히 산후 어혈제거, 복부냉증 개선 등 산후후유증 게선에 도움이 된다. 몸을 따뜻하게 하면서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냉증을 제거하는 효과가 크기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피를 맑게 하고 안색을 개선하며 피부 노화 예방에도 좋다.
정약전의 『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코피가 나서 멈추지 않는 경우 홍합의 수염을 불에 태워 그 재를 바르면 신통하게 코피가 멈춘다’고 기재된 구절이 나온다. 이 홍합의 수염이란 홍합의 껍질에 붙어 있는 수염털을 가르키는 말로, 족사(足絲)라고 부른다. 홍합이 다른 조개류와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이 족사(足絲)이다.
족사는 홍합이 액상의 단백질 성분을 분비하여, 몸을 바위에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홍합이 담채라고 불리는 이유 중의 하나가 이 족사 때문인데, 족사로 바위에 자신을 고정시킨 모습이 마치 식물이 뿌리 내린 모양과 비슷하다하여 채소 채(菜)자를 쓰는 것이다. 이 족사로 옷감을 만드는 것도 가능한데, 영어로 이를 바다 비단, Sea silk라고 한다. 주로 지중해 인근 국가에서 만들었는데 촉감이 매우 고우며, 만들기가 힘들어서 아주 고가에 거래되었다.
족사의 지혈작용은 혈액 응고를 촉진시키는 단백질을 이용해 심장조직에 붙이기만 하면 효과를 볼 수 있는 심근경색 치료제 개발에도 이용되고 있다. 또한 접착력 강한 홍합의 접착 단백질을 이용한 항암 면역기술이 국내기술로 개발되었다는 뉴스도 전해진다. 이를 보면 홍합은 예로부터나 지금까지 참으로 우리에게 이로운 존재인 듯하다.
하루가 다르게 차가워지는 요즘, 영양이 풍부하면서도 맛있는 제철 음식인 홍합, 담채를 이용해서 건강을 지켜보면 좋지 않을까? 흔하고 저렴한 소박한 서민 음식이면서도, 맛과 영양 면에서는 다른 어느 재료에도 뒤지지 않는 홍합의 품성은, 마치 우리네를 닮은 모습 같아서 더 정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