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발생한 이태원 압사 참사에 대한 정부의 국회 첫 현안보고가 1일 열렸다. 정부를 대표해 참석한 이상민 행안부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은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지만, 정작 현안 보고에는 책임에 대한 메시지는 없었다.
1일 국회에서는 이태원 참사에 대한 행정안전위원회 차원의 현안보고가 있었다. 평소 같으면 의원들의 각종 질의가 쏟아졌겠지만, 이태원 참사 국가 애도 기간임을 고려해 여야 간사 간 합의로 질의 없이 현안 보고만 진행하기로 했다.
다만 국민적 공감대와 동떨어진 발언으로 공분을 사고 있는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사과는 있었다.
이 장관은 이 자리에서 “경찰의 사고 원인 조사 결과가 발표되기 전까지는 섣부른 추측이나 예산은 삼가야 한다는 취지에서 드린 말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소중한 가족을 잃은 유가족과 슬픔에 빠진 국민의 마음을 미처 세심하게 살피지 못했다”며 “깊은 유감의 말을 전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 장관은 앞서 지난달 30일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언론 인터뷰에서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인 것은 아니었다”며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고 주장하며 회피성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사과 후 이어진 현안 보고가 이어졌다. 사고 개요와 주요 조치사항, 향후 계획 등이 행안부, 경찰청, 소방청 순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현안 보고를 받은 의원들은 불만을 드러냈다.
민주당 의원들은 언론을 통해 이미 알고 있는 수준의 보고였다면서 정부의 불성실한 태도를 지적했다. 행안위 민주당 측 간사인 김교흥 의원은 “현재 상황을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만든 자리인데 장관의 보고가 너무 평이해 안타깝다”며 “언론에서 볼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다. 왜 사고가 났는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계획 정도는 가지고 와야 하는 게 아니었느냐”고 비판했다.
실제로 정부 측의 현안보고는 그동안 각종 보도를 통해 알려진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행안부 현안보고는 참사가 발생한 사건 개요와 현황 자료들이 대부분이었다. 향후 계획도 상황 종료 시까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개최, 이태원 사고 관련 유가족 및 부상자 가족 지원책 등에 대해서만 나열됐다.
경찰청 현안보고는 조금 더 구체적이긴 했지만, 경찰의 책임을 회피하려 하는 듯한 설명 항목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행사를 앞두고 용산경찰서의 요청으로 용산구청, 상인연합회, 이태원역장과 간담회를 갖고 질서 유지방안을 논의하고 상인연합회에도 자체 안내 인력을 충분히 배치토록 하는 등 질서유지를 위한 자정 노력을 촉구했다”고 구두로 설명했다.
하지만 의원들에게 제출한 자료에는 이에 더해 “일부 상인들은 과도한 경찰력 배치 시 핼러윈 분위기 위축 우려를 제기하며 자정 노력을 언급했다”고 적어뒀다.
또 향후 대책 항목에서는 “주최자가 없는 다중운집 상황 관련 대응체계 마련 검토하겠다”고 강조하면서도 “관련법상 주최자가 없는 경우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할 의무를 규정하고 있지 않아 관계기관들의 체계적인 안전관리가 곤란”하다고 자료에 적어 ‘제도의 불비’에 따라 발생한 사고라는 점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한국공안행정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정세종 조선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경찰 태도에 대해 강하게 지적했다.
정 교수는 1일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국민의 생명 신체 및 재산의 보호와 공공 안녕에 대한 위험의 예방과 대응을 위한 정보의 수집·작성 및 배포가 경찰관 직무집행법상 경찰의 직무”라며 “경찰은 그러한 업무를 하기 위해 국가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조직인데 안일하게 대처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10만명이 모인다고 하면 정보 라인에서 어떠한 문제가 생길지 파악하고 대응법을 마련해야 하고 정보를 공유받은 생활안전과와 경비과에서는 혼잡 경비와 관련한 대책을 수립·시행해야 한다”며 “그럼에도 행사에 주최자가 없으니 경찰은 책임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식의 말이 안 된다. 그럼 국민의 생명 신체 및 재산의 보호는 누가 하느냐”고 강조했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