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아니면 이 견적에 계약 못 하세요. 신부님.” 지난 1월 서울 논현동 A 예식장 상담을 받던 정은비(31‧가명)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년 초 결혼을 앞둔 정씨는 2주 후 서울 논현동 B 예식장에서도 상담받고 두 곳을 비교해 어느 예식장과 계약할지 결정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가계약금을 안 내면 자리가 없다는 얘기에 할 수 없이 A 예식장에 가계약금을 냈다. 2주 뒤 B 예식장으로 결정한 정씨는 결국 두 곳 모두 가계약금을 낸 셈이 됐다. 각 500만원씩 총 1000만원이었다.
코로나19 여파로 결혼식을 미룬 이들이 돌아오자 예식장과 웨딩업계는 호황을 맞이했다. 반면 웨딩업계 비용이 상승해 예비부부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예식장에서 1시간 정도 진행되는 결혼식을 하려면 평균 3000만원 정도 필요하다. 올해 결혼정보업체 듀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근 2년간 결혼한 신혼부부들은 예식장 1057만원, 예단 797만원, 예물 739만원, 예식패키지 333만원 등을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혼수와 신혼여행 비용을 뺀 결혼식 비용이다. 결혼식 스냅‧영상에 예복, 혼주 한복 대여, 혼주 메이크업까지 하면 한 번 결혼식에 3500만원까지도 들어간다.
지난달 결혼한 A(30)씨는 결혼식 비용으로 3400만원을 지출했다. 예식장 대관료에 식대,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결혼식 스냅‧영상, 양가 부모님 한복 등을 포함한 비용이다. A씨는 “고가의 호텔 결혼식을 올린 것도 아니였다”라며 “평범한 예식장에서 평균적인 선택을 했어도 3000만원이 넘게 든 것”이라고 밝혔다.
‘플러스알파’만 존재…“왜 선택할수록 돈이 많이 들죠”
지난 7월 결혼반지를 보러 예물숍에 방문한 정씨는 ‘다이아 반지’를 사기로 했다. 처음부터 다이아를 살 생각으로 간 건 아니었다. 정씨는 “다이아 반지를 살 생각이 없었지만, 직원들이 ‘다른 분들은 다 하는데 왜 안 하세요?’라며 계속 유도했다”라고 털어놨다.
결혼을 준비하는 신랑‧신부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수많은 선택지 중 자신도 모르게 돈을 더 많이 쓰는 쪽으로 유도된다. 한 번뿐인 결혼을 위해 아끼지 말라는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이모(30대)씨는 결혼식 당일 입을 웨딩드레스 추가금만 200만원을 지출했다. 평균 300만원대의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비용에 포함된 드레스 대신, 본식 드레스를 위해 추가로 지출한 것이다. 이씨는 “드레스를 고를 때 대부분 추가금이 필요한 신상 드레스를 보여준다”라며 “한 번뿐인 결혼식이란 생각에 비싼 드레스를 고를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정씨도 결혼식을 준비하며 예산을 줄이는 선택지는 없고, 늘리는 선택지만 존재한다는 걸 알았다. 정씨는 “결혼식 비용을 참고할 만한 사례가 대부분 기준치 이상이라 뭐가 표준이고 하한선인지 모르고 ‘오늘이 제일 싸다’는 웨딩업계 직원들 말에 의지하게 된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길어야 한 시간 조금 넘는 결혼식에 수천만원을 쓰는 게 공감이 안 간다”라며 “결혼식 문화가 원래 이런 건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청년들에게 결혼 비용 상승은 큰 부담이다.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사회조사로 살펴본 청년의 의식변화’에 따르면, 결혼하지 않은 청년 중 33.7%가 결혼하지 않는 이유로 ‘결혼자금 부족’을 꼽았다.
매년 오르는 결혼 비용…청년들 “어떻게 결혼하나요”
올해는 더 올랐다. 김씨가 결혼한 서울 한 예식장의 올해 대관료는 890만원, 식대 8만6000원. 이는 1년 만에 대관료 12%, 식대 10%가량 오른 수준이다. 예식장 비용은 오르는 이유엔 최근 문을 닫는 예식장이 늘어나는 것도 있다. 국세청 국세통계포털에 따르면, 결혼 성수기인 지난 5월 기준 전국 예식장 수는 737곳으로 전년 동월(778곳) 대비 41곳 줄었다. 2020년과 2021년에도 각각 62곳, 50곳씩 감소하는 등 매년 50곳씩 감소하는 추세다.
매년 오르는 물가가 반영된 결과란 의견도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화려하게 하지 않고 기본적으로 소박하게 하더라도 물가가 너무 올라 예식 비용 자체가 많이 올랐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가격을 안 올리는 업계가 없다. 웨딩업계만 오른다고 볼 수 없는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사회적 지위가 불안정한 청년들에게 웨딩 비용은 부담으로 느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