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봉투·간식’ 돈 내고도 눈치 보는 예비부부 [요즘 신혼부부⑤]

‘예쁜 봉투·간식’ 돈 내고도 눈치 보는 예비부부 [요즘 신혼부부⑤]

기사승인 2023-10-12 06:05:02
웨딩 스튜디오 촬영. 독자 제공

“신부님은 준비 안 해오셨어요? 다른 신부님들은 다 하는데….”

지난 3월 결혼한 박모(30)씨에겐 예상치 못한 일로 웨딩 플래너에게 지적당해 당황한 기억이 있다. 결혼 준비 중 청첩장을 전달했더니 “아무것도 준비해 오지 않았냐”란 얘길 들은 것이다. 플래너는 과거 다른 신부들에게 받은 선물을 박씨에게 자랑한 뒤 “실망”이라고 했다. 플래너는 장난처럼 말했지만, 박씨에겐 진심처럼 보였다.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들이 준비 과정에서 추가금을 지불하는 사례가 다수 나타나고 있다.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발표한 2023년 결혼 준비 비용 보고서에 따르면,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이 포함된 웨딩패키지는 평균 333만원. 그러나 많은 신혼부부들은 추가로 약 100만원 이상이 들었다고 호소했다. 박씨가 겪은 ‘플래너 선물’ 외에도 ‘피팅 봉투’, ‘촬영 간식’, ‘원본 비용’ 등 이미 하나의 필수 문화처럼 굳어져 원치 않아도 지갑을 열어야 하는 분위기다. 

드레스 투어 시 피팅비를 넣는 예쁜 봉투와 간식 예시. 그래픽=이승렬 디자이너

“입혀주셔서 감사합니다”

예비부부는 결혼식에서 입을 드레스를 직접 입어보고 고르기 위해 평균 3곳의 업체를 방문, 드레스 피팅을 진행한다. 이때 드레스를 입혀줘서 고맙다는 의미로 드레스 업체에 피팅비를 ‘예쁜 봉투’에 넣어 전달하는 문화가 존재한다. 각 봉투에 5~10만원씩, 3곳이면 15~30만원이 현금으로 필요하다. 최근 들어 카드로 피팅비 결제가 가능한 곳도 늘고 있지만, 여전히 봉투에 넣은 현금을 받는 업체도 많다. 지난달 드레스 투어를 다녀온 조모(30)씨는 “현금을 못 뽑아 카드 결제를 했는데 괜히 눈치가 보였다”라고 말했다.

드레스 입는 걸 도와주는 드레스숍 소속 ‘헬퍼 비용’도 스드메에 포함되지 않아 별도로 지불해야 한다. 헬퍼비는 5시간 기준 평균 20만원. 스튜디오 촬영과 본식까지 최소 두 번은 필요해 기본 헬퍼비만 40만원이다. 스튜디오 촬영 시 헬퍼의 이동비도 따로 내야 하고, 정해진 시간을 넘으면 초과비도 발생한다. 지난달 스튜디오 촬영을 진행한 최은비(31‧가명) “촬영이 끝난 뒤 헬퍼를 드레스숍까지 직접 데려다 주거나, 아니면 택시비를 제공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라고 말했다.

직접 포장한 스튜디오 촬영을 위한 간식. 독자 제공

“드시고 예쁘게 찍어주세요”

스튜디오 촬영 때는 ‘간식’을 준비해야 한다. 평균 4~6시간 촬영을 진행하는 동안 식사 대용으로 필요한 스태프들의 간식을 예비부부가 챙기는 문화가 형성됐다. 최씨는 웨딩 촬영 현장에서 자신들을 포함해 촬영 작가, 보조작가, 드레스숍 헬퍼, 플래너까지 6명의 커피와 마카롱‧휘낭시에 등 간식을 주문했다. 간식값만 9만원이 들었다. 최은비씨는 “웨딩업계가 강남에 몰려있어 커피와 간식만 주문해도 기본 단가가 높아 부담이 컸다”라고 토로했다.

대부분 스튜디오가 촬영을 마친 뒤 ‘원본 비용’ 약 33만원을 필수로 받는다. 선택 가능해도 모바일 청첩장 등으로 활용하고 컴퓨터와 휴대전화 등에 보관을 위해 추가금을 내고 구매해야 한다. 또 기본 앨범은 20페이지에 불과해 원하는 사진을 추가하려면 1장당 약 3만3000원~4만4000원의 추가금을 내야 한다. 골동품 느낌이 나는 기본 액자 대신 다른 액자를 선택하려 해도 추가금이 필요하다. 지난해 결혼한 A(30대)씨는 “원본을 안 사면 수정본도 받을 수 없고 결과물도 없이 촬영만 한 상황이 돼서 살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배모씨도 “계약 시 촬영 비용을 내는데 왜 원본 비용을 또 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돼도 필수라고 안내받아 내야했다”라고 말했다.

웨딩 플래너에게 스튜디오 촬영용 간식과 헬퍼 수고비 등을 요청 받은 메시지 내용. 독자 제공 

‘내돈내산’이지만 “잘 부탁드려요”

대부분 예비부부는 이해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추가금을 내는 일이 많다. 혹시 결혼 준비 과정에서 피해를 볼까 싶어서다. 최은비씨는 “내 돈을 내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거지만, 괜히 사진을 잘 안 찍어주면 어떻게 하지란 걱정에 간식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라며 “돈을 내고도 눈치 보이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9월 스튜디오 촬영을 한 박모(30)씨도 카페 음료 6잔과 초콜릿, 샌드위치 등 4만원 가량을 들여 스태프 간식을 준비했다. 박씨는 “웨딩플래너에게 ‘촬영 작가와 드레스 헬퍼 등 간식을 준비하라’는 연락을 받았다”라며 “남편이 내 돈 내고 이용하는 건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했지만, SNS를 보면 다들 준비하는 것 같아 안 할 수 없었다”라고 밝혔다.

관계자들이 추가금을 유도하기도 한다. 배씨는 “스튜디오에서 찍은 사진을 고르러 갈 때, 직원들이 ‘20페이지로 해도 되지만 얇아서 안 예쁘다’거나 ‘나중에 추가 못 해서 후회한다’ 등 추가금 결제를 유도한다”라고 밝혔다. 주은혜(27)씨도 스튜디오 앨범과 액자 추가금으로만 150만원을 지불했다. 주씨는 “찍은 사진이 많아서 100장대로 추린 후 또 골랐다”라며 “추가비가 발생한다는 걸 알았지만, 기본 액자 대신 예쁜 액자로 유도해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토로했다.

정보 비대칭이 만든 허례허식 문화

전문가들은 결혼 시장에서 정보의 비대칭이 이 같은 허례허식 문화를 만들었다고 진단했다. 이수진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결혼은 일생에 한 번 할까 말까 하는 문화로 정보 비대칭이 높다”라며 “공급자(웨딩업계)가 ‘원래 그래요’라고 말하면, 소비자(결혼하는 사람)들은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SNS를 통한 과시욕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청년들에게 SNS의 영향이 아주 크다”라며 “SNS는 보여주는 가치가 크다. 프로필 사진 하나로도 단순히 외적인 것뿐만 아닌 성실하다, 재능있다, 건강하다 등의 외모 가치까지 확장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청년들은 다른 사람들이 하는 촬영 간식, 피팅 봉투 등 문화를 보면 따라갈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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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ju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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