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이탄광 81주기를 맞아 대한불교관음종(총무원장 법명 스님)이 2일 오후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에 위치한 조세이탄광 수몰 사고 희생자 추모광장에서 '조세이탄광 해저 수몰 81주기 희생자 위령재'를 봉행했다.
추모 위령제에는 대한불교관음종 종정 예하 홍파 스님, 총무원장 법명 스님을 비롯한 부원장 도각 스님, 총무부장 홍경 스님, 예경실장 법관 스님, 사서실장 법룡 스님, 수교부장 도문 스님과 영산작법연구회 소속 보상‧비호‧선암 스님, 양현 유족회장 등 유가족, 서울 낙산묘각사 및 창녕 법성사 신도로 구성된 66명의 추모단이 위령재에 함께했다. 또한 임시흥 주일 히로시마 총영사를 비롯한 재일교포, 이노우에 요우코 일본 '조세이탄광 수몰 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 공동대표 등이 참석했다.
관음종 총무원장 법명 스님은 추모사를 통해 "수몰사고가 일어난지 벌써 81년 전의 일이 됐습니다. 기억에서 차츰 멀어져 가고 있어 안타깝고 통탄할 일"이라며 "이제라도 일본정부와 한국정부, 탄광주는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를 떠나 유골 발굴을 위한 첫걸음 이라도 떼야 한다"고 지적했다.
관음종 종정 예하 홍파 스님도 법어를 통해 "183명의 고통스런 죽음에 일본당국은 여전히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일본당국은 인류의 지혜인 양심을 외면하지 말고 조선인은 물론 일본인의 희생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하는 한편 조세이탄광 수몰사고로 희생된 183명의 넋들을 위해 추선공양을 올리며 희생자의 극락왕생을 발원했다.
위령제에 참석한 임시흥 주히로시마 총영사는 "전쟁과 식민지배가 끝난 뒤에도 뿌리 깊은 차별의식과 적대감, 서로에 대한 오해가 조세이탄광 수몰 희생자를 어둠 속에 묻어두었다"며 "희생자들의 존재가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 이후로도 역사를 둘러싼 수많은 오해와 반목이 이어져 희생자를 생각하는 유족의 마음은 오히려 뒷전이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보다 많은 일본 시민이 자발적으로 조세이탄광 희생자들을 생각하게 되도록 민간의 노력이 이어지길 희망한다"며 해저속 유골이 햇빛을 볼 날이 오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노우에 요우코(장생탄광의 수비상을 역사에 새기는)공동대표는 "수몰사고 81주년을 맞았지만 아직도 바다 밑에 방치돼 있는 희생자분들의 유해를 고향 땅에 보내드리지 못해 유족분들께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며 "유골발굴 및 반환은 반드시 조선반도에 있는 분들의 한을 풀어주고 일본과의 평화‧우호의 길로 인도해 줄 것"이라며 희생자분들의 명복을 빌며 앞으로도 유족의 슬픔과 유골 발굴을 위해 함께 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현 한국 장생탄광 유족회 회장은 "얼마나 가족과 어머니를 그리워 했을까요? 또 얼마나 고향에 가고 싶었을까요? 또 얼마나 굶주림에 시달렸을까요? 생각하면 하수록 가슴이 메이고, 현재까지 유해발굴을 하지 않는 일본정부가 원망스럽다"며 "여러분들이 천도불사를 해주신 공덕과 부처님의 은덕으로 유족들의 염원이 이루어지도록 부처님께 기도드리겠다"고 했다.
이에 앞서 후지타 류-죠 일한불교교류 협의회 회장은 "수몰사고로부터 81년이 지난 지금도 해면에 솟은 2개의 피야는 과거 탄광산업이 행해졌다는 사실을 현재에 전하고 있다"며 "이 사고는 결코 잊혀지는 일 없이 차세대에 전해지도록 하지 않으면 안된다. 평화로운 미래를 위해 일본과 한국 양국이 손을 맞잡고 더욱 서로를 이해하고 우호 관계가 공고해지길 염원한다"고 말했다.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조세이탄광 수몰사고는 세계 2차대전이 한창이던 지난 1942년 2월3일 발생했다. 일본인들이 '조선탄광'이라고 부르던 이름에서 유래된 조세이탄광은 일본 야마구찌현 우베시에 위치한 해저탄광으로 이곳에서 일하던 이들의 대다수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이었다. 그런 만큼 갱도가 붕괴되면서 순식간에 수몰된 희생자 183명 가운데는 조선인이 136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들을 감독하던 일본인 47명도 수장됐다. 희생자는 현재까지 수몰된 갱도에 수장된 채 수습되지 못하고 있다.
일본 우베시=강연만 기자 kk7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