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양미 300석. 심 봉사가 덜컥 시주를 약속했을 때, 딸 심청의 마음은 어땠을까. 인당수에 뛰어들기 위해 뱃머리에 선 심청. 몸을 던지는 순간까지도 어쩌면 아버지 부탁을 거절하고 싶지 않았을까.
부모의 빚을 대신 갚는 청년은 2024년에도 존재한다. 적금을 깨 생활비를 보태고, 대출을 받아 부모 빚을 메운다. 부모 자녀 간 모든 금전 거래가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부탁은 자녀의 경제 기반을 부수고 회복 불가능하게 만든다. 쿠키뉴스는 지난해 하반기 부모의 금전 요구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을 취재했다. 돈을 주지 않으면 협박을 듣거나 폭력에 시달린다. 신용불량에 빠져 빚에 허덕이고, 때로는 죽음까지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가정사로 축소돼 드러나지 못했던 이야기다. [편집자주]
모두가 악당은 아니다. 자녀 명의로 대출을 한 부모에게도 사정은 있다.
쿠키뉴스는 부모의 금전 요구로 어려움을 겪은 청년들을 지난해 8월부터 10월까지 심층 인터뷰했다. 6명 중 1명을 제외한 모든 청년의 부모는 신용불량자였다. 1명은 부모와 긴 시간을 떨어져 보낸 자립준비청년이다. 부모의 재무상태를 알지 못했다.
김지연(26·여·가명)씨는 부모의 마지막 동아줄이었다. 김씨의 부모는 사업이 어려워지자 대출을 갚지 못했고 신용불량자가 됐다. 이후 지인에게 돈을 빌리다 못해 사채에도 손을 댔다. 돈이 나올 구멍이라고는 김씨의 학자금 대출뿐이었다. 1%대의 낮은 금리, 취업 후라는 넉넉한 상환 기간. 대출을 받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김씨는 매학기 한국장학재단의 생활비 대출을 150만원씩 받아 부모에게 전달했다. 4년간 모두 1200만원이다. 부모는 김씨에게 “이 정도는 금방 갚을 수 있다.”고 했다.
급한 불은 꺼지는 법이 없었다. 이번에는 사채업자가 대문을 두드렸다. 부모는 갓 취업한 김씨에게 은행에서 돈을 빌려오라고 했다. 간곡한 호소에 김씨는 다시 도장을 찍었다. 요구는 끝나지 않았다. 김씨의 월급, 인센티브, 신용카드 등에도 부모는 손을 벌렸다. 거절도 해봤다. 부모는 “가족이 다 같이 뭉쳐야 일어설 수 있다. 왜 혼자 살 생각만 하느냐.”고 타박했다. 사업을 정상궤도에 올리기 위해서는 돈이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넘쳐흐른 부모의 빚은 결국 김씨 턱 밑까지 차올랐다.
왜 부모는 빚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했을까. 5060세대는 사회·경제적 기반을 갖춘 연령대로 여겨진다. 젊은 시절부터 쌓아온 직업 경력은 높은 소득과 자산으로 이어진다. 사회에 막 발을 디딘 20대나 기반이 필요한 30대 등과는 다르게 정부나 사회의 지원을 받기 어렵다. 안전망이 약해 한 번 무너지면 다시 일어서기 어려운 현실이다.
5060세대를 위한 금융지원책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저렴한 이자와 정책 혜택 대다수는 청년에 쏠려있다. 서민금융대출 생계자금 지원책 중 근로자햇살론의 금리는 연 10.5% 내외다. 반면 만 34세 이하 청년 대상 햇살론의 금리는 연 3.5%다. 주택 자금 또한 마찬가지다. 부부합산 연 소득 5000만원 이하의 무주택 세대주를 위한 ‘버팀목 전세자금’의 금리는 연 2.1%~2.9%다. 대출 한도는 수도권 1억2000만원, 수도권 외 8000만원 이내다. 청년(만 19세 이상~만 34세 이하)이 단서로 붙은 ‘청년전용 버팀목’의 금리는 연 1.8%~2.7%다. 대출 한도는 최대 2억원 이내(임차보증금의 80% 이내)다.
신용을 회복하고 다시 일어서기 위한 개인회생 등의 절차에서도 부모 세대는 혜택을 누리기 어렵다. 서울회생법원은 지난 2021년 8월부터 만 30세 미만 청년과 장애인, 한부모가족, 만 65세 이상 고령자 등에게 변제기간을 3년 미만으로 허용하도록 하는 실무준칙을 시행했다. 빠른 사회복귀를 위해 예외를 둔 것이다. 개인회생보다 간편한 신용회복위원회의 신속채무조정(연체 전 채무조정)도 만 34세 이하 청년층을 대상으로 시작됐다. 다음 달까지만 한시적으로 전 연령층으로 확대 운영되고 있다. 특정 연령과 집단에 선별적으로 혜택을 주는 상황이다.
정책 혜택에서 배제되고 신용도 낮은 부모들에게 선택지는 없다. 각종 지원과 혜택을 이용할 수 있는 자녀가 부모의 마지막 기댈 곳이 된 것이다.
쿠키뉴스는 채무조정을 지원하는 시민단체 롤링주빌리를 통해 부모의 금전 요구로 어려움에 처하게 된 청년들의 사례를 수집했다. 이들의 부모는 자녀의 장애를 이용해 대출을 받거나 청년사업자 혜택을 누렸다. 30대 지적장애 남성 A씨는 초등학교 5학년이던 지난 1999년 그의 이름으로 된 차가 생겼다. 차 구매를 위한 대출 1200만원도 딸려 왔다. 당시 부모가 장애인 혜택을 누리기 위해 A씨의 이름으로 차를 샀기 때문이다. 수십 년이 흐른 뒤에도 이는 A씨의 빚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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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