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양미 300석. 심 봉사가 덜컥 시주를 약속했을 때, 딸 심청의 마음은 어땠을까. 인당수에 뛰어들기 위해 뱃머리에 선 심청. 몸을 던지는 순간까지도 어쩌면 아버지 부탁을 거절하고 싶지 않았을까. 부모의 빚을 대신 갚는 청년은 2024년에도 존재한다. 적금을 깨 생활비를 보태고, 대출을 받아 부모 빚을 메운다. 부모 자녀 간 모든 금전 거래가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부탁은 자녀의 경제 기반을 부수고 회복 불가능하게 만든다. 쿠키뉴스는 지난해 하반기 부모의 금전 요구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을 취재했다. 돈을 주지 않으면 협박을 듣거나 폭력에 시달린다. 신용불량에 빠져 빚에 허덕이고, 때로는 죽음까지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가정사로 축소돼 드러나지 못했던 이야기다. [편집자주]
해외에서는 경제적 학대 인식 제고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법을 제정하고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해 피해자를 돕는다.
영국, 미국, 호주 등 해외 113개 국가에서는 경제적 학대 가해자를 처벌하고 있다. 경제적 학대 피해자는 언제라도 경찰에 가해자를 신고할 수 있다. 은행 거래 내역, 주변 증언, 학대 정황이 담긴 기록 등으로 피해 사실을 입증하면 된다. SNS도 증거가 된다.
영국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는 경제적 학대에 대한 법을 제정했다. 미국 뉴욕주에서도 지난 2021년 개인의 자산을 통제·방해·간섭하는 행위를 경제적 학대로 보는 조례안을 만들었다. 물리적 폭력이 없더라도 경제 자유가 구속되면 학대라는 것이다.
보다 실질적 지원책도 있다. 정부 차원에서 경제적 학대 피해자에게 금융 지원을 제공한다. 영국에서는 경제적 학대 피해자에게 최대 1000파운드(약 167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이때 영국 정부는 피해자에게 학대 증거를 요구하지 않는다. 호주연방은행은 경제적 학대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해 3000만 달러(약 389억원) 이상을 투자했다.
피해자 부채 정보를 확인하고, 억울하게 채무가 생긴 경우 탕감·면제 받도록 돕기도 한다. 미국은 신용조합재단과 파트너십을 맺고 금융 교육 프로그램을 수강하는 학대 피해자에게 부채 면제 혜택을 제공한다.
해외 금융기관도 피해 지원에 적극적이다. 영국 로이드 금융그룹은 경제적 학대 피해자를 돕는 비영리단체 ‘경제적 학대에서 살아남기(SEA·Surviving Economic Abuse)’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피해자에게 전문 상담원을 연결해 경제적으로 재기할 수 있도록 돕는다. 전문 상담원은 피해자 계좌에서 가해자가 돈을 인출할 수 없게 한다. 약관을 변경해 피해자와 가해자의 공동 계좌를 해지한다. 피해자가 부채를 탕감받도록 채권자에게 연락을 하기도 한다. 뉴질랜드의 한 금융기관에서는 지난 2020년 6월 가정 및 경제적 학대 전담 금융팀을 출범했다. 이들은 피해자와 가해자 간 거래 패턴을 파악·분석한다.
피해자의 경제적 안정과 자립을 위한 사회단체 활동 역시 활발하다. SEA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운영해 경제적 학대 피해자들이 자기 경험을 털어놓을 수 있도록 한다. 피해자들의 사회 고립을 막기 위해서다. 기금을 조성해 자립을 돕기도 한다. 기금을 받은 피해자는 지난 2022년에만 450명에 달한다. 또한 피해자에게 적절한 법률 조언을 제공할 수 있는 전문가 1000명을 교육해 지원에 힘쓰고 있다.
SEA 설립자 니콜라 샤프 제프는 “경제적 학대 피해자들은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없다.”면서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가해자로부터 탈출하거나, 삶을 재건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때문에 피해자들에게 안전망이 되어 줄 복지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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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비 기자 silver_b@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