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들의 19년 숙원인 ‘간호법’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지난 8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간호법은 간호사 면허·자격 및 업무 범위, 권리·처우 개선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그 동안 음지에서 의사 업무를 대신하던 진료지원 간호사의 합법화를 위한 발판이 마련됐다.
간호법은 6개월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 6월21일부터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 유예기간에 들어가기까지 3개월이 남았지만 아직 세부사항은 정해진 것이 없다. 보건복지부는 제정안을 발표할 당시, 진료지원간호사 업무를 ‘의사의 일반적 지도와 위임에 근거한 업무’로 명시했다. 단, 구체적 업무 범위는 ‘임상 경력과 교육과정 이수 등을 고려해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한다’라고 정의했다. 세부 시행령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간호사에게 위임 가능한 의료행위를 보다 유연하게 논의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최수정 한국전문간호사협회 회장은 의료 현장마다 진료지원 간호사에게 요구하는 역할이 다른 만큼 법적으로 그들의 업무 범위와 자격을 명시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 회장은 지난 8일 쿠키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처방을 대신 입력하고, 상처를 소독하고 드레싱하는 일부터 정맥주사용 카테터를 삽입하거나 채혈을 하는 등 수많은 의사 업무를 간호사가 대신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의사 업무 일부를 대신 수행하는 진료지원 간호사의 자격은 명확해야 할 필요가 있지만, 업무 범위나 경력이 의료현장에 따라 천차만별인 상황”이라고 짚었다.
복지부가 시행한 ‘진료지원 인력 실태조사 및 정책방안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의료기관 41곳 가운데 진료지원 인력 관리를 위한 별도 규정(지침)을 두지 않은 곳의 비율이 68%에 이른다. 또한 진료지원 인력 363명 가운데 125명(34.4%)은 환자의 생명을 직접 다루는 수술실(104명), 중환자실(15명), 응급실(6명)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 중에는 자신이 소지한 면허의 범위를 넘어서는 업무를 하고 있다고 응답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최 회장은 “전공의, 전문의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는 작은 규모의 병원에선 전공의 업무를 간호사에게 모두 맡기기도 하며, 심지어 의료현장 경력이 전혀 없는 신규 간호사나 비의료인에게 의사 업무를 하도록 지시하기도 한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어떤 자격을 갖고 임하는지 말할 수 있겠나”라고 지적했다.
그는 진료지원 간호사의 역할을 규정하기에 앞서 두 가지 의문점을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의사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업무들은 반드시 의사가 해야 하는 일인지 △간호사에게 의사 업무를 위임한다면 자격은 어느 정도가 돼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 회장은 “간호사가 수행하던 많은 업무 중 의료법에 묶여 불법으로 치부되던 행위, 즉 직역 간 중복될 수 있는 업무를 합법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의사는 적어도 250학점 이상의 6년제 의대 교육을 이수한다. 전문적인 판단이 필요하거나 난이도가 높은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심화교육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업무 난이도에 따라 일반 간호사와 전문 간호사에게 위임할 수 있는 업무를 나눠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전문 간호사 과정은 임상 간호사 경력 3년 이상인 자에 한해 입학 허가를 준다. 또 2년 이상 석사 교육과정을 통해 33학점(실습 300시간 이상) 이상을 이수하고 국가자격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따라서 의사가 위임 가능한 난이도 높은 업무에 대해서는 적어도 전문 간호사 수준의 교육이 필요하다는 게 최 회장의 설명이다. 미국의 경우 전문 간호사, 진료지원 간호사 모두 석사 이상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
최 회장은 “환자의 안전을 확보하면서 합리적 의료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진료지원 업무를 수행하는 간호사와 전문 간호사의 자격, 업무, 범위 등이 의료계 내부에서 충분히 논의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전문 간호사를 진료지원 업무에 배치하려면 의료기관 평가 기준 개정, 수가 차등 보상 등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