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준범 기자] 처음부터 끝까지 배우 전도연을 위한 드라마였다. 지난 27일 종영된 tvN 금토드라마 ‘굿 와이프’ 얘기다. 전도연의 출연 결정은 드라마 제작 전 캐스팅 단계부터 영향을 미쳤다. 제작진은 전도연 덕분에 처음 지목했던 배우들을 모두 캐스팅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함께 출연한 유지태와 윤계상이 제작발표회에서 출연을 결심한 계기로 전도연을 언급했다. 전도연은 ‘굿 와이프’에 쏟아진 연기력 호평의 중심에 서 있기도 했다. 또 전체 분량의 90%를 차지할 정도로 출연 비중이 높았고 대사량도 많았지만, 그녀는 잠을 줄여가면서까지 자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그만큼 부담도 크고 힘들었기 때문일까. 지난 29일 오후 2시 서울 논현로 한 웨딩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전도연은 눈물을 두 번이나 흘렸다. 단순한 슬픔, 기쁨의 눈물이 아닌 복잡한 심경에서 흘러나온 눈물이었다. 진짜 감정이 느껴지는 그녀의 눈물은 11년 만에 복귀를 알린 드라마 ‘굿 와이프’의 아름다운 피날레, 그 자체였다.
Q. ‘굿 와이프’를 종영한 소감이 어떠신가요.
“잘 마쳤어요. 오랜만에 출연한 드라마였는데 대사량도 많아서 버겁다고 생각했어요. 매일 도망치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막상 끝내고나니까 도망치고 싶던 마음보다 현장에서 배우, 스태프와 즐거웠던 시간이 훨씬 크게 느껴지더라고요. 혼자 힘으로 해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울었어요. 끝나고 눈물 한 방울 안 흘리고 집에 가면 어쩌나 걱정도 했는데 말이죠. 많은 관심과 사랑 속에서 잘 끝낸 것 같아요.”
Q. 다른 배우들보다 출연 분량과 대사량이 많아서 힘드셨을 것 같아요.
“저 스스로가 기특하게 느껴지고,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처음에 대본을 4부까지 받았는데 전체 분량의 90%라고 할 정도로 제 분량이 많았어요. 하루에 5~6개 장면을 찍었을 정도예요. 변호사라 전문적인 대사도 많아서 못할 거라고 생각했죠. 부담스러워서 감독, 작가님에게 “이걸 16부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작가님은 줄여주겠다고 하셨고, 감독님은 대사를 못 외우면 현장에서 끊어가겠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나 때문에 현장이 지연되는 건 없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겼죠. 그래서 집에 와서 잘 수 있는 시간이 2~3시간 있으면 대사를 외웠어요. 잠은 드라마 끝나고도 잘 수 있으니까요. 못 자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기보다 대사를 집중해서 잘 외우자고 생각했죠. 갈수록 대사 외우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어서 다행이었어요.”
Q. 혜경과 태준이 '쇼윈도 부부'가 되는 결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셨어요.
“어느 순간 태준의 욕망과 야망을 이해하게 됐어요. 15년을 살면서 고운 정, 미운 정이 쌓여서인지 그의 어깨가 작아 보이는 순간이 있었죠. 그런 그를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은 혜경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헤경을 볼 때, 남자를 이겨야만 하는 여성이 아닌 포용하는 여자로 봤거든요. 태준을 포용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혜경이 아닐까 싶었죠. 그래서 엔딩에서 혜경이 기자회견장에 가면 좋겠다고 의견을 냈죠. 처음 대본에는 혜경이 태준의 기자회견하는 걸 안다는 내용으로 적혀있었거든요. 결론을 쇼윈도 부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전 어느 누구와의 관계도 결론지어진 결말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Q. 연극의 커튼콜(연극의 막이 내린 후 배우들이 다시 무대 위로 등장하는 것) 방식의 결말이 화제를 모았어요.
“그 장면은 ‘법정에 모여 있다’라고 대본에 적혀 있었어요. 감독님에게 물어봤더니 인물들이 갖고 있던 이미지를 깨고 싶어서 커튼콜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하셨죠. 태준은 악역, 혜경은 나쁜 여자, 중원은 불륜 같은 안 좋은 이미지가 있었잖아요. 그렇게까지는 생각도 못했는데 너무 감사했고 감동스러웠죠. 내가 이 사람들과 같이 연기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Q. 6회에서 혜경이 중원과 키스를 하고 태준과 관계를 갖는 장면이 있었어요. 그 감정을 어떻게 이해하고 연기하셨나요.
“촬영 전에는 혜경의 욕망이라고 생각했어요. 여자도 욕망이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 장면을 찍고 나서는 욕망이 아니라, 혜경이 현실을 받아들이는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엔 ‘흔들리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태준에게 간 건데, ‘그럼 나는 누가 받아주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아요. 만약 혜경의 욕망이었다면, 그 대상은 중원이어야 하지 태준은 아니었을 거예요. 그래서 김혜경이 너무 불쌍하고 안쓰럽게 느껴졌던 장면이에요.”
Q. 첫 연기에 도전한 나나씨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어요.
“촬영 전에 감독님에게 나나씨 얘기를 들었어요. 오디션에서 나나가 가진 에너지가 좋았다고 하셨죠. 직접 보고는 깜짝 놀랐어요. 연기도 나쁘지 않았어요. 모든 면에서 생각보다 조금씩 뛰어났던 친구예요. 드라마 끝나고 눈빛이 좋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어요. 사실 김혜경은 서중원이 아닌 김단에게 진짜 위로를 받았다고 생각해요. 나나 스스로도 편견과 선입견을 깨면서 괴로웠을 거라고 생각해요. 박수쳐주고 싶고 응원해주고 싶었어요.”
Q. 유지태씨가 인터뷰에서 진짜 감정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전도연씨의 모습에 놀랐다고 말했어요.
“집착하는 건 아니지만, 진짜 감정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연기는 가짜죠. 어떻게 보면 흉내 내거나 연기를 위한 연기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대본을 외울 때는 진짜 감정이 아닐 수 있지만 다른 배우와 호흡을 맞출 때는 달라요. 상대의 감정을 받고, 또 주면서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때 받는 에너지가 제가 할 수 없던 것들을 가능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Q. ‘굿 와이프’ 시즌 2가 제작된다면 출연할 의사가 있으신가요.
“시즌 2를 한대요? 저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초반에는 체력이 다 돼서 쓰러지는 걸 나도 한 번 해보는구나 생각했죠. 원래 약을 잘 챙겨먹는 스타일이 아닌데, 촬영하면서 남이 좋다고 하는 약은 다 챙겨먹었어요. 땅에 떨어진 것도 주워 먹는다고 할 정도였죠. 뭐라도 힘을 얻고 싶었거든요.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힘들면서도 마약처럼 적응되는 것 같았어요. 감독님이 드라마에 중독성이 있다고 하셨는데 진짜 그런 것 같아요. 드라마에서 얻은 것도 많다고 생각해요. 언제가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절대 드라마를 안 할 거예요’는 아니에요. 아주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