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조민규 기자] 임상시험 도중 사망자가 발생한 한미약품의 ‘올리타정’으로 인한 사회적 논란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규제완화 정책의 일환으로 제정을 추진하고 있는 ‘의약품의 개발지원 및 허가특례에 관한 법률’ 이 제2, 제3의 한미약품 사태를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윤소하 의원(정의당)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5월18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제5차 규제개혁장관회의를 개최해 ‘바이오헬스케어 규제혁신’을 발표했다.
당시 발표한 규제혁신의 주요내용은 ▲제품 연구개발 기간 단축으로 산업 경쟁력 강화 ▲공중보건에 필요한 치료제의 신속하고 안정적인 공급 ▲제품 허가 기간 단축으로 시장 출시 촉진 등이다.
문제는 한미약품의 ‘올리타정’과 같이 3상 임상시험을 완료하지 않은 치료제에 대해서도 조건부 허가를 하겠다는 규제완화 정책이다.
조건부 허가는 2상 임상자료로 심사 후 우선 허가하되 허가 후 3상 임상시험자료(대규모 환자를 대상으로 개발중인 의약품이 효능 및 안전성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시험), 사용성적 조사 자료 및 안전사용 조치(특정 의료기관내에서 사용 등) 등의 자료 제출을 조건으로 허가하는 제도이다.
현행 ‘약사법’과 ‘의약품의 품목허가·신고·심사 규정’은 신약의 허가를 위해서는 1상부터 3상까지의 임상시험 결과를 제출해야 한다. 다만, ‘올리타정’과 같은 항암제와 희귀의약품, 자가연골(피부) 세포치료제는 2상 임상시험 결과가 있으면, 3상 임상시험을 조건으로 허가할 수 있다.
임상시험은 1상에서 소수의 건강인 또는 환자 대상으로 안전성을 확인하고, 2상에서 환자 대상 최적 용량 확인하며, 3상에서 수백 또는 수천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안전성·유효성을 검증하게 된다.
이에 당시 정부는 알츠하이머, 뇌경색 등 질환에 사용하는 치료제에 대해서도 허가 후 사용성적 조사 실시 등을 조건으로 2상 임상시험 자료로만으로 조건부 허가를 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 또는 비가역적인 질환(한번 발생하면 그 증상이 쉽게 호전되지 않는 질환)에 사용하는 치료제를 조건부로 허용할 경우 시장진입을 2~3년 단축시킬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지만 신속처리 프로그램이 활성화된 미국에서조차도 알츠하이머, 뇌경색등의 유병율 높은 질환을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이나 비가역적 질환의 범주에 넣어 규제완화를 하지는 않는다.
특히 이러한 규제완화를 현실화하기 위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준비 중인 ‘의약품의 개발지원 및 허가특례에 관한 법률안’은 질병의 적용의 범위가 모호하고, 의약품의 선정이 주관적이 될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는 것이 윤 의원의 주장이다.
즉, 한미약품의 ‘올리타정’과 같이 사망과 같은 치명적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은 물론, 조건부 허가를 근거로 주가가 급등했다가 실패할 경우 주가가 폭락해 투자자들의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5월 26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입법예고한 ‘의약품의 개발지원 및 허가특례에 관한 법률안’을 보면 정부는 규제완화의 대상을 ‘중대한 또는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을 치료 또는 예방’하는 ‘획기적 의약품’(제2조제1호)과 ‘감염병, 생화학 무기로 인한 피해 등 공중보건에 심각한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질병’과 관련한 ‘공중보건 위기대응 의약품’(제2조제2호)으로 규정했다.
법률안에는 ‘중대한 또는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제2조제3호)을 ‘적절한 치료가 수반되지 않는 경우 사망할 가능성이 높은 질병으로 치료대안이 존재하지 않는 질병’으로 정의했다.
윤 의원에 따르면 문제는 ‘획기적 의약품’, ‘공중보건 위기대응 의약품’ 모두 제약사의 신청(제5조)을 받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지정(제6조)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즉, 정부가 ‘획기적 의약품’과 ‘공중보건 위기대응 의약품’을 임의적으로 선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지정에 관한 세부사항을 총리령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는 점도 결국 정부의 일방적 판단에 따라 주관적으로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증되지도 않은 의약품의 시판을 허가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더욱 문제는 ‘획기적 의약품’은 1상 임상시험에서만 효과가 나타났을 경우에도 지정(제6조제1항제2호)될 수 있고, 3상 임상시험 없이도 조건부 허가 될 수 있다(제17조제1항)고 지적했다. 2상 임상시험을 거치고 3상 임상시험을 조건으로 한 한미약품의 ‘올리타정’보다 규제가 더욱 완화되는 것이다.
또 ‘공중보건 위기대응 의약품’도 마찬가지로 ‘공중보건 위기대응 의약품’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없이 동물실험 결과만으로 도 조건부 허가(제18조제1항)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에 따르면 우리나라 의약품의 임상시험 단계별 성공률은 1상 임상시험에서 2상 임상시험으로의 진입 성공률이 약 60%이고, 2상에서 3상으로의 진입 성공율은 약 30%에 불과하다. 3상에 승인제출까지의 성공률도 약 60%에 불과하다.
조건부 허가가 활성화 된 미국에서 조차 2009년 1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조건부 허가제도인 ‘쾌속승인’(Accelerated Approval) 절차에 따라 허가된 25개 암 치료제의 경우 실제 치료효과 증가가 입증되지 않은 사례가 14개로 56%에 육박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온바 있다.
때문에 정부의 규제완화는 결국 임상시험의 실패 가능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시판부터 허가해 임상시험에 기업들이 지출해야 하는 비용을 국민들에게 전가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또 규제완화라는 이름으로 기업의 이윤을 위해 충분한 안정성평가가 되지 않은 약품을 시판해 국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윤소하 의원은 “한미약품의 ‘올리타정’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는 의약품에 대한 무조건적인 규제완화는 결국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것은 물론 시장질서를 유린할 수 있다”며 “정부는 기업의 이윤을 앞세울 것이 아니라 국민의 안전을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