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김태구 기자] 국민행복기금이 가계부채 해결이라는 당초 설치 목적과 달리 과잉 추심 논란에 휩싸였다. 국가가 공적 기금을 조성해 싼 가격으로 채권을 매입한 후 소송과 같은 법적 수단을 동원해 채무자에게 채권매입비용의 10배 이상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와 관련 국민행복기금의 위탁사인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기금운용과정에서 발생한 오해라는 입장이다. 채권의 실질 회수율이 낮을 뿐더러 기금 운용에 따라 채무자의 추심 및 변제 압박이 줄었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국민행복기금은 박근혜 대통령의 가계부채 관련 대선공약 가운데 하나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12년 대선당시 18조 규모의 국민행복기금을 조성해 채무불이행자 322만명의 신용회복을 지원하겠다고 공약했다. 이에 따라 국민행복기금은 은행들이 출자한 6970억원을 주요 재원으로 2013년 출범했다. 조성된 자금은 자산관리공사(캠코)에 위탁운용을 통해 채무조정, 전환대출(바꿔드림론) 등의 재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부실채권 4~5만원에 사들여 최대 70만원에 되팔아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캠코 국정감사에서 부실채권매입과 채무조정과 관련한 국민행복기금 운용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부실 채권을 매입해 비싼 가격으로 채무자에게 되팔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불법과잉 추심 행위도 있었다는 것이 제윤경 의원(더불어민주당)의 주장이다.
국민행복기금의 가장 큰 사용처는 부실채권 매입이다. 캠코는 전체 금액 가운데 84.8%인 5912억원을 부실채권(액면가 10조6000억원) 매입에 사용했다. 채권 액면가의 5.6%의 가격으로 매입한 셈이다. 또한 신용회복기금, 희망모아, 한마음금융 등에서 무상으로 공적이관한 17조4000억원을 포함하면 채권 액면가는 2.1%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채무를 돌려받는 과정에서 캠코는 국민행복기금 신창자의 연령, 연체기간, 소득 등을 고려해 최소 30%에서 최대 70%까지 채무를 감면해 주고 최장 10년간 분할상환토록 하고 있다. 예컨대 100만원짜리 채권을 2만~5만정도에 사서 최대 70만원에 채무자에게 분할매각 셈이다. 이는 매입금의 최고 35배에 달하는 수치다.
또한 캠코는 채무를 독촉(추심)하는 과정에서 지급명령신청(18만6000건), 소액소송(16만2000건) 등 법적 소송도 적극적으로 진행했다. 이같은 추심과정에서 국민행복기금 관리 비용으로 6302억원을 사용했다. 이 비용 중에서는 채권 추심을 위해 위탁을 맺은 23개 업체(CA사)에 지급한 수수료만 1650억원에 이른다.
이와 관련 금융권 관계자는 “국민행복기금의 운용과정을 보면 민간 신용정보업체가 부실채권을 일괄매각한 후 추심업체와 위탁 계약을 맺고 빚 독촉을 일삼으면서 선심 쓰듯이 채무를 탕감해주는 구조와 다를 바 없다”면서 “신용회복기금, 한마음금융 등에서 국민행복기금으로 이름만 바꿨을 뿐이지 국가가 나서서 캠코를 대형 추심업체로 키운 것”이라고 말했다.
제윤경 의원도 “국민행복기금의 주요 재원은 부실채권정리기금 배분금으로 은행이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발생한 대량 금융소외자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조성한 사회적 환원금의 성격”이라면서 “2.1% 채권을 사와서 280%(2.8배)나 남기는 것은 ‘국민’행복기금이 아닌 ‘은행’행복기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추심압박으로 10명 중 1명이 겨우 채무에서 벗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돈이 한 푼도 들지 않고 이관 받은 10년도 넘은 178만 건 채권은 소각해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채권 소멸시효가 5년이라는 근거에서다.
◇ 억울한 국민행복기금
이같은 논란에 대해 캠코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부실채권의 회수율이 민간 업체를 능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형평성, 신뢰, 공공성 등의 이유로 채권소각이 어렵기 때문에 소송을 통해서 시효를 연장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캠코 관계자는 “국민행복기금 채무자 110만명 다 갚으면 (이같은 비판은) 말이 맞다. 하지만 110만이 다 갚지 않았다. 민간 금융사의 무담보채권 회수율이 1%정도 일 때 국민행복기금의 회수율은 4%로 상대적으로 높다”고 설명했다.
또한 “통상적으로 갚으라고 하면 없다고 하면서 갚지를 않는다.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전화해서 갚으라고 하면 돈을 갚지 않고 지급 명령신청이 가면 그제야 돈을 갚는다”면서 “우리로선 채무상환, 시효연장 등을 지급명령소송을 통해 어쩔 수 없이 진행할 수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소송비용이 많이 들어간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돈을 갚지 않는 사람을 방취하는 것이 최선책으로 보일 수 있지만 돈을 갚지 않으면 정상적인 금융생활을 할 수 없다”며 “국민행복기금의 목적은 회수가 아니라 신용회복이다. 정상적인 금융생활을 하기 위해서 빨리 갚으면 좋다는 취지에서 국민행복기금을 통한 신용회복을 안내하는 것이지 과도하게 채권을 추심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와 함께 “캠코는 소득 정보를 통해 상환 능력 수준으로 감면율을 적용해서 받으라고 안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금융위와 논의해 채무 원금을 최대 90%까지 감면해 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민행복기금이 부실채권정리기금의 배분금으로 조성됐다. 부실채권정기기금에 국가 예산이 투입된 부분이 있다”며 “공공적인 성격이 강해서 민간적인 사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강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채무조정을 통해 신용회복 지원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소각이라는 부분은 당장 빚의 독촉을 받지 않더라고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에 할부, 카드 발급 등 정상적인 금융 생활을 하기는 어렵다”면서 “국민행복기금을 통한 채무조정을 할 경우 2년 정도 성실히 상환하면 채무 불이행(신용불량) 정보가 없어진다”고 답했다.
그는 또 “전화를 걸어서 협박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다”며 “최고장을 날리는 것이 아니라 우편을 보내서 신용회복 제도가 있다는 안내장을 발송하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한편 국민행복기금을 통한 채무 감면 비율은 총 채권액 28조 가운데 1조6517억원으로 전체 5.8%다. 나머지 90% 넘는 채무자는 국민행복기금을 통한 채무 독촉에 여전히 시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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