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준범 기자] 무엇이 그렇게 감사할까. 27일 오후 서울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박보검을 지켜보면서 든 생각이다. 박보검은 ‘감사보검’이라고 불릴 정도로 감사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박보검은 인터뷰 내내 모든 답변에 감사하다거나 누군가를 칭찬하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잘못하면 진심이 담기지 않은 입바른 말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박보검은 자신이 무엇을, 왜 감사해하는지에 대해 하나씩 빠르게 설명했다.
KBS2 월화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은 박보검에게 고마운 작품이다. tvN ‘응답하라 1998’이 박보검의 스타성을 발견하게 해줬다면, ‘구르미 그린 달빛’은 그를 슈퍼스타로 만들어줬다. 잘생긴 외모와 평소의 모범생 같은 이미지에 안정된 연기력, 작품의 흥행을 책임지는 배우라는 타이틀이 더해진 것이다. 하지만 박보검의 입장은 달랐다. 그에게 ‘구르미 그린 달빛’은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게 해준 작품이었다.
“‘구르미 그린 달빛’은 제 부족함을 참 많이 느끼게 해준 작품이에요. 만약 사극에 대한 기반이 탄탄하게 잘 다져져 있었다면, 이번 드라마에서 표현한 이영보다 더 나은 이영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어요. 사전제작이었으면 드라마의 끝을 알고 연기해서 조금 더 나을 수 있었겠죠. 저 뿐 아니라 감독님도 더 예쁜 구도로 찍으셨을 거고, 배우들도 캐릭터를 연구할 시간이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 놓치는 부분들이 많았던 것 같아.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장면에서도 '왜 이런 감정으로 했지' 싶은 거죠. 세세한 감정 표현이나 사극에 맞는 발성이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구르미 그린 달빛’은 박보검이 처음 도전한 사극이다. 사극에 대한 욕심과 왕세자 이영의 캐릭터가 박보검을 사로잡았다. 이영은 기존 드라마에서 표현했던 왕세자와 조금 다른 인물이다. 무게감 있게 모두를 아우르는 왕세자가 아닌, 천방지축 날라리에 다른 사람들이 모두 기피하는 왕세자다. 그런 왕세자를 연기해보고 싶어 부담 없이 도전한 작품이지만, 쉽지 않았다.
“전부터 사극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처음엔 부담감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영을 연기하면 할수록 입술로, 행동으로 표현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저 다음에 김유정, 곽동연. 진영, 대선배님들이 한 분씩 캐스팅됐어요. 저희끼리 '어벤저스' 급이라고 표현할 만큼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죠. 그렇다보니 내가 이렇게 좋은 분들과 대선배님들에게 피해를 끼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에게 관심이 집중될수록 부담감도 커지고, 연기에 대한 확신도 들지 않았죠. 그 때 선배님들이 저를 잡아줘서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어요. 제가 모르는 것들을 많이 알려주셔서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었거든요. 한 장면에서 한 대사를 가지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 요리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한 것 같아요. 100%는 아니지만, 이 장면에 어떤 점이 포인트고, 어떤 메시지가 중요한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도 배웠어요.”
힘들게 촬영한 만큼 벅찬 순간도 찾아왔다. 마지막회에서 왕이 된 이영을 연기할 때 박보검은 그동안의 감정들이 순간 다 스쳐지나갔다고 털어놨다. 그동안 이영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중심이 흔들린 순간, 외롭게 길을 걸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주상전하 납시오’라는 대사를 듣고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박보검이 그렇게 힘든 순간들을 버틸 수 있었던 데에는 가족의 힘이 컸다.
“스트레스를 푸는 저만의 방법은 가족들과 이야기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거예요. 힘들 때마다 가족에게 전화를 많이 해요. 이번 드라마에서도 더워서 지치거나 대사가 안 외워져서 힘들 때마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어요. 그랬더니 아버지께서 '네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고, 그렇게 원했던 일인데 감사한 것 아니냐'고 하셨죠. 그 말을 듣는 순간 힘들었던 마음이 사라지고, '나는 참 복 받았다'는 생각이 들어 열심히 할 수 있었어요.”
박보검은 욕심이 많은 배우다. 배우를 하길 잘했다고 느끼는 이유도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어서다. 자신이 살아보지 못한 삶을 살 수 있고, 그렇게 하고 싶었던 OST 작업도 참여할 수 있었다. 승마와 액션 연기, 거문고도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다음 작품에서는 영화 ‘나의 소녀시대’나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처럼 풋풋한 청춘들의 이야기를 현대극에서 해보고 싶다는 욕심도 숨기지 않았다. 박보검이 드라마를 촬영하며 인터뷰할 때 꼭 얘기해야겠다고 느낀 이야기 역시 새로운 욕심에 관한 것이었다.
“‘구르미 그린 달빛’ 촬영 현장은 너무 즐거웠어요. 제가 이렇게 사랑받아도 되나 싶을 정도였죠. 제 얼굴에 뾰루지가 나면 조명 감독님이 가려주시거나, 메이크업 팀에서 물광 메이크업을 해주세요. 아니면 CG팀에서 뾰루지를 다 지워주시거나, 아예 뾰루지 없는 각도로 찍어주려고도 하셨어요. 서로를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좋은 분들과 함께 해서 기뻤죠. 만약 인터뷰에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어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꼭 말씀드리고 싶었던 게 있어요. 또 한 번 같이 작업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거예요. 제가 저를 따뜻하게 아껴주신 스태프들을 ‘또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듯이, 다른 누군가가 ‘박보검이랑 같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bluebell@kukinews.com / 사진=박효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