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준범 기자] 수저는 있지만, 사다리는 없다.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흙수저, 혹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다. 하지만 신분을 상승시킬 수 있는 사다리는 찾을 수 없다. 오는 13일 첫 방송되는 SBS 창사특집 대기획 ‘수저와 사다리’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다큐멘터리다. 2016년 한국 사회는 일을 해서 돈을 버는 속도보다, 돈이 돈을 버는 속도가 더 빨라진 사회가 됐다. ‘수저와 사다리’는 불평등 그 자체가 아닌 불평등의 심화로 발생한 사회의 분열과 그 위험성에 주목했다.
누구나 문제의식에 공감하지만 접근하기 어려운 문제다. 뚜렷한 해결책이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아이들은 색깔이 다른 수저를 물고 자라날 것이고, 앞으로도 다른 계층으로 이동할 사다리는 찾기 힘들 가능성이 높다. 지금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수저와 사다리’ 제작진은 불평등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완벽한 대안을 찾지 못하더라도, 이야기의 장을 넓히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는 얘기다.
9일 오후 2시 서울 목동서로 SBS 사옥에서 열린 SBS 창사특집 대기획 ‘수저와 사다리’의 기자시사회에서 이동엽 PD는 “지난해부터 수저계급론과 관련된 얘기가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며 “이전부터 있었던 불평등이 어떻게 심화됐는지 언론을 통해 여기저기서 많이 다뤄지게 됐다. 창사특집 프로그램 소재를 찾던 중이라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고 기획 계기를 밝혔다.
이어 황채영 작가는 “총 3부작 중 1부는 땅, 2부는 임금, 3부는 기본 소득에 관한 이야기”라며 “조사하며 지금의 수저계급론이 갑자기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길게는 50년, 짧게는 20년 전부터 한국 역사에 있었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1950년대에도 임대료가 갑자기 상승해 두 달 동안 17명의 사람들이 자살을 하는 일도 있었다. 역사 속에서 되풀이 된 일이라면, 악순환이 계속되지 않도록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의도는 좋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특혜 의혹으로 다시 한 번 수저계급론이 대두된 지금 필요한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하지만 제작 과정은 쉽지 않았다. 아이템을 취재하며 제작진 사이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말도 ‘답이 없다’였다.
이에 대해 이 PD는 “알면 알수록 일개 방송사 PD나 작가가 답을 제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다고 느꼈다”며 “희망적이고 대안적인 얘기를 전달하고 싶었는데, 파면 팔수록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는 걸 알았다. 어디서 풀어야 할지 답이 안 보였다. 작지만 의미 있는 시도들을 해보자는 쪽으로 방향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대신 제작진은 주제를 풀어내는 방식에 주목했다. 이 PD는 “가능하면 재밌게 만들어보고 싶었다”며 “딱딱한 다큐멘터리가 아닌 시청자들에게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스토리텔링이 뭐가 있을까 고민했다. 1부는 드라마타이즈 형식, 2부는 관찰카메라 형식, 3부는 스튜디오 게임쇼 형식으로 구성했다. 딱딱한 인터뷰보다 현장에서 몸으로 겪어보거나, 게임에 몰입된 상태에서 찬반으로 나뉘어 토론하는 상황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제작진의 설명처럼 이날 상영된 ‘수저와 사다리’ 하이라이트 영상에는 회차에 따라 각기 다른 형식으로 제작된 내용이 담겼다. 개그맨 김기리가 등장해 강남 일대를 걸으며 전문가와 대화를 나누는 1부 ‘드림랜드, 네버랜드’를 시작으로, 2부 ‘닭 값과 달 값’에서는 한 치킨 프랜차이즈 사장과 미국 기업 그래비티 페이먼츠 CEO 댄 프라이스가 등장했다. 댄 프라이스는 110만 달러였던 자신의 연봉과 전 직원들의 연봉을 모두 7만 달러로 맞추는 파격적인 결단으로 유명해진 인물이다. 3부 ‘모두의 수저’에서는 국회의원 표창원, 이준석 전 위원장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인물들이 ‘부루수저’라는 게임을 펼친다.
최태환 CP는 “불평등 문제가 아주 예전부터 있었지만 심화된 건 최근”이라며 “‘수저와 사다리’에서도 지적하지만, 결국 정책적인 결정이 잘못됐기 때문에 이렇게 되지 않았나 싶다. 완전히 해소시킬 수는 없겠지만, 올바른 정책으로도 불평등이 심화되는 현상을 해소할 수 있다는 단초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관전 포인트”라고 전했다.
‘수저와 사다리’는 오는 13일 오후 11시10분 1부 ‘드림랜드, 네버랜드’ 편을 시작으로 3주 동안 방송된다.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