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이병헌 “내가 연기를 정말 잘하나?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쿠키인터뷰] 이병헌 “내가 연기를 정말 잘하나?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기사승인 2016-12-15 22:44:37

[쿠키뉴스=인세현] 배우 이병헌의 연기력을 의심하는 관객은 드물다. 믿고 보는 배우의 범주에서 그는 늘 상위권에 속한다. 어떤 역할을 맡아도 매끄럽고 훌륭하게 표현하는 이병헌이 이번에는 희대의 사기꾼으로 변신했다. 개봉을 앞둔 영화 ‘마스터’(감독 조의석)에서 이병헌은 조 단위의 사기를 치는 진회장 역을 맡아 서늘한 열연을 펼쳤다.

최근 서울 팔판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병헌은 ‘마스터’의 첫 장면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병헌이 언급한 장면은 진회장이 다단계 투자 업체 회원들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 연설을 하는 것이다. 그는 이 장면을 통해 영화 초반부터 스크린 밖의 관객을 설득하는 것에 성공한다.

“처음부터 사기꾼인 진회장이 회원들의 마음과 지갑을 훔치는 장면이 나오죠. 저는 그 장면을 통해 진회장이 어떤 인물인지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모두의 마음을 흔들어서 돈을 빼앗을 수 있는 인물인 거죠. 사기를 당하는 사람들이 바보가 아니라는 공감이 있어야, 설득력이 생기고 관객이 피해자와 나를 쫓는 김재명(강동원)의 입장에서 영화에 몰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연설문 자체도 한 달에 걸쳐 수정을 반복했죠.”

이병헌은 이처럼 극 중에서 수 만 명의 사람을 단숨에 홀리는 사기의 귀재다. 이병헌은 이 역할의 매력이 “배우가 가진 습성과 비슷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새로운 역할을 맡고 그에 걸맞는 모습으로 변화하고자 하는 진회장의 행동이 배우의 욕망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마스터’의 진회장은 상황에 따라 상대에 따라 눈빛과 말투, 심지어 감정까지 변화하는 인물이다. 이병헌은 “이런 부분에 매력을 느껴, 대부분의 배우가 한 번쯤은 이런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소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본인 또한 이 점에 매력을 느껴 ‘마스터’의 진회장을 연기하기로 결심했다고 털어놨다. 극 중 상대에 따라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가 이번 영화 연기의 핵심이자 매력이었던 셈. 

하지만, 이병헌은 이 역할을 이해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쏟아야 했다. 밑도 끝도 없이 나쁜 진회장이라는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이병헌 스스로 이 역할에 설득당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시나리오를 정말 재미있게 읽었는데 막상 연기하려고 하니 어려웠어요. 어떤 악역이라도 명분이나 과거가 있는데, 진회장이라는 인물은 악행을 합리화시킬 구석이 없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밑도 끝도 없이 나쁜 역할이죠. 그래서 나쁜 행동을 한 뒤에 잠시 죄책감을 느끼다가도, 금세 ‘그래서 뭐?’라고 말할 수 있는 인물로 표현했어요. 순간적으로 죄책감을 느끼지만, 순식간에 자신의 악행을 내면에서 합리화시키는 인물인 거죠. 이렇게 생각하니, 인물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감이 오더라고요.”

이병헌은 이번 영화 작업을 하며 진회장을 입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했다. 진회장과 김엄마(진경), 박장군(김우빈) 세 사람이 손을 잡고 독특한 화해 의식을 치르는 것도 이병헌의 아이디어다. 마지막 진회장이 곤경에 처하는 장면을 촬영할 때에도 다양한 대사를 준비했다. 후반 필리핀에서 현지인에게 사용하는 필리핀식 영어도 마찬가지다. 이병헌은 필리핀 출신 배우 3명에게 대사 리딩을 부탁했다. 그 과정에서 발음의 공통점과 특징을 찾아내 연기를 준비했다. 

“평소 장면의 목적에 맞지 않는 애드립을 경계하지만, 이번 영화와 캐릭터는 적당한 애드립이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조의석 감독은 촬영 전 배우에게 장면에 관한 의견을 묻는 스타일이에요. 배우의 의견 중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으면 선택해서 함께 만들어 가는 방식이죠.”

이병헌은 지난해 연말 ‘내부자들’로 시작해, ‘미스컨덕트’(시모사와 신타로), ‘밀정’(감독 김지운), ‘매그니피센트7’(감독 안톤 후쿠아)에 출연하며 쉴 틈 없는 1년을 보냈다. 청룡영화제를 비롯한 국내 다수의 영화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휩쓸었고, 해외 트로피도 받았다. 이병헌의 연기력에 관한 관객의 신뢰는 점점 공고해졌다. 그렇다면, 이병헌은 자신의 연기를 얼마만큼 믿을까.

“연기를 잘한다는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죠. 하지만, 그런 말을 듣고 나면 늘 저 자신에게 물어보게 돼요. ‘내가 정말 잘하나?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이런 물음의 반복이죠. 자신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늘 의심하게 돼요. 때때로 관객은 나를 잘하는 배우로 알고 있다는 것이 부담으로 다가올 때도 있어요. ‘조금 못하면 어때, 자유롭게 놀면 되는 거지’라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부담을 떨치기 위해 노력해요. 어깨에 힘을 빼는 거죠.”

inout@kukinews.com

인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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