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창원=강승우 기자] 박수근(49)씨는 올해도 우울한 연말을 맞고 있다.
박씨는 완성차업체에 납품하는 볼베어링을 제조하는 경남 창원의 (주)케이비알에서 20년 넘게 다녔다.
박씨는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감에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라고 했다.
이 불안감은 지난 5년 동안 박씨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박씨의 ‘불안’은 임금‧단체협상을 두고 노조와 갈등을 겪던 회사가 직장폐쇄와 폐업 등을 여러 차례 반복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다 올해 초 노사가 극적으로 합의하면서 박씨는 이제 사정이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희망은 산산조각 났다.
이달 초 회사에서 ‘희망퇴직자를 모집한다’는 통지서를 받으면서다.
박씨는 “사측의 불합리에 맞선 지난 5년 동안 생활고에 시달려 가족에게 늘 미안했는데 또 이런 상황에 놓여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지난달 말 장영진(35)씨도 다니던 회사에서 ‘근로관계가 종료됐다’는 연락을 받고 큰 충격을 받았다.
사실상 해고 통보였기 때문이다.
장씨는 2007년부터 한국지엠 창원공장의 한 사내하청업체에서 근무해왔다.
무기계약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에 6개월 쪼개기 계약에도 꿋꿋이 버텼다.
입사 6년 만인 2013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장씨는 “어렵게 무기계약직이 돼 고용불안에서 벗어나는가 싶었는데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았다”며 “겨울 한파보다 고용불안 한파가 더 무섭다”고 했다.
4곳 하청업체 근로자 360여 명도 같은날 근로관계 종료 통보를 받았다.
최근 사측이 신입사원 모집 공고를 내면서 고용승계 여부를 둘러싼 노사 갈등은 확산될 조짐이다.
한국산연 근로자 34명. 이들은 지난 10월 난데없이 해고 통보를 받았다.
창원시 마산회원구 자유무역지역 내 있는 이 회사는 일본 산켄전기의 자회사로 LED조명 등을 생산하는 100% 일본 자본의 투자기업이다.
한국산연 노사는 지난해 임금 교섭에 이어 올해 임금‧단체협상에서도 이견을 보이며 갈등을 빚어왔다.
결국 사측은 경영상의 이유를 들어 근로자들에 대해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일방적인 정리해고 통보에 뿔난 지역사회도 이들을 도왔다.
해고자들과 함께 일본 본사를 찾아가 일본 노동단체와 연대해 투쟁했다.
1년여의 투쟁 끝에 해고자들은 사측에 양보안을 제시했다.
생존을 택한 것이다.
때문에 이들의 최후통첩은 사실상 백기투항인 셈인데도 사측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해고자들은 오는 27일 경남지방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구제신청 사건의 심판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안타깝게도 어떤 결과가 나오든 해고자들은 우울할 수밖에 없다.
정영현 금속노조 경남지부 선전부장은 “우리나라는 노동법과 관련해 사실상 5심제로 지노위에서 승소해도 부당해고자들의 복직까지는 쉽지가 않고 시간도 상당히 오래 걸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삼성테크윈에서 한화테크윈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불거진 노사 갈등으로 윤종균 금속노조 삼성테크윈지회장 등 해고된 6명 가운데 4명이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사측이 이에 불복해 행정 소송을 제기, 이들의 복직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다.
정 부장은 “고용불안에 떨고 있는 노동자들의 겨울나기가 더 힘들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최영주 공인노무사는 “최근 지역에서 불거진 근로자 해고나 계약해지 문제에 대해 사측은 경영상의 이유를 들고 있지만 그것은 표면상의 이유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최 노무사는 “실제는 노조 혐오증에서 기인한 것으로 노동자들은 생존권뿐만 아니라 노동기본권마저 침해받고 있다”며 “노동법에 반(反)하는 사용자의 침해 행위가 사라지는 것을 시작으로 합리적인 노사 문화가 정착돼 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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