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을 돌아보면, 서구화된 식단과 운동부족으로 건강상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당장 심장에서 피를 보내고 받는 혈관 내에 스텐트라고 불리는 쇠로 된 그물망 형태의 지지대를 심는 경우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아버지 세대에서도 1~2개 정도는 스텐트를 박고 있어야 “나이 좀 들었다”는 소리를 듣는다니 그만큼 보편화됐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문득 의사들은 어떻게 보이지도 않는 얇은 혈관에 원통형의 쇠 그물을 넣고, 벌리고, 고정할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적어도 숙달이 되기 전에는 많은 경험과 연습이 필요할 텐데 어디서, 어떤 식으로 익숙해질까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의사들에게 물었다. 사람을 상대로 연습을 할 수는 없을 텐데 어떻게 하냐고.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은 동물이나 모형을 이용해 연습을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비용문제로 생물로는 연습을 하기 힘들다고 전했다. 모형조차 제대로 구할 수 없다는 답도 들었다.
안타까웠다. 심지어 두려웠다. '지원이 부족해 제대로 연습도 못하는 초년생 의사들이 사람을 상대하며 익숙해지는 모습이, 그리고 그들에게 대체가 불가능한 우리의 하나밖에 없는 몸을 맡겨야하는 상황이'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심정을 조금은 덜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글로벌 의료기기 업체들이 직접 의료술기 교육센터를 속속 개관하고 있다. 지난 25일 새롭게 문을 연 메드트로닉(Medtronic) 이노베이션 센터(Innovation Center, 이하 MIC)를 찾았다.
◇ ‘CCI’ 기능 계승한 ‘MIC’… 익숙함과 다름이 공존하는 공간
지난 25일 개관한 MIC는 4년여 전인 2013년 8월 충청북도 오송 충북경제자유구역 내 바이오메디컬지구에 자리 잡은 ‘코비디엔 이노베이션센터(Covidien Center of Innovation, CCI)’의 후신이다.
아일랜드에 본사를 두고 있는 글로벌 의료기기 업체인 메드트로닉은 2014년 코비디엔을 인수한 후 국내 최초로 의료진들이 직접 최소침습수술을 경험할 수 있는 술기교육과 제품개발 및 개량이 가능한 CCI의 기능을 계승ㆍ강화하는 형태로 새롭게 단장 했다.
그 때문인지 MIC는 과거 CCI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KTX를 타고 오송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식품의약품안전처를 지나 5분이 채 안 되는 거리에 위치한 MIC 입구를 들어서며 바라본 외관은 CCI 시절과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디귿(ㄷ)'자 형태의 지상 2층 건물은 6000㎡(약 1912평)의 대지에 건평 2650㎡(약 802평) 규모로 세워져있다. 여기에 회색 철제로 둘러진 듯한 외관까지 더해지자 단단함과 안정감, 넉넉함을 느끼게 했다. 외관과 같이 내부도 익숙하지만 다른 공간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건물의 중심부 바닥에는 얕은 개울을 형상화한 직사각형의 연못은 오송 단지의 삭막할 수 있는 풍경에 다양성과 평안을, 통유리로 이어진 1층 외벽의 전반부는 연결성과 개방성을 선사했다. 곳곳에 마련된 휴게공간과 나무로 이뤄진 실내 바닥은 여유와 포근함을 제공했다.
1층에 들어서면 CCI 시절부터 갖춰진 3차원(3D) 및 HD 디스플레이와 최신 음향시설을 갖춘 112석 규모의 대강당이 우측 정면으로 보인다. 대강당 앞 공간에는 메드트로닉이 생산하는 다양한 의료기기와 3D 영상으로 비춰지는 인체 장기와 기기들도 볼 수 있다.
강당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면 메드트로닉의 역사로 채워진 복도가 나오고 그 끝에는 ▶4개의 중ㆍ소규모 교육실과 ▶중역회의실이 좌우로 위치해있다. 여기서 강당에서 진행되는 행사를 실시간 영상으로 관람할 수 있다. 중역회의실 옆으로는 ▶기도실 겸 다용도실도 마련돼 있어 중동 출신 무슬림 의사들은 여기서 기도를 올릴 수 있다.
다시 강당이 있는 중앙 광장으로 나오면 나무로 된 계단과 투명한 유리로 사방이 둘러진 엘리베이터가 있어 2층과 연결돼있다. 올라가면 센터의 핵심인 ▶외과 연구실(Surgical Lab) ▶중환자 연구실(RMS Lab) ▶ VT랩(lab) ▶연구개발실(R&D lab) 등이 갖춰져 있다. 익숙하지만 새롭다.
◇ ‘MIC’로 의료인 술기 확산 기대… 의사에겐 ‘미소’, 환자에겐 ‘안전’을
메드트로닉은 “한국 의료발전의 조력자로서 그간의 성과를 바탕으로 더 많은 분야의 의료진, 전문가들과 협업을 도모하며 국내 의료계 발전과 환자 치료에 지속적으로 기여함으로써 ‘환자의 고통경감, 건강회복, 생명연장’이라는 메드트로닉의 사명을 실현해가고자 한다”고 전했다.
그 일환으로 새롭게 개관한 MIC를 통해 치료 분야를 확장함으로써 국내 의료진 및 전문가들과 보다 폭넓고 체계적인 상호협력을 전개하고, 변화하는 의료 환경에 대비해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또 한 번의 도약을 하겠다는 포부도 선포했다.
실제 대강당과 외과 연구실은 3차원 스크린 교육이 가능하며 영상장치를 통해 실시간으로 소통이 가능한 체계가 갖춰졌다. 여기에 심혈관, 재건을 비롯해 당뇨치료, 체외 임상시험으로 지원 분야를 넓히고 모의실험 장치, 심혈관 조영실, 가상현실 및 증강현실 등 관련 시설도 확충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대한외과학회,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 대한내시경복강경외과학회, 대한내비뇨기과학회와의 업무협약(MOU)에 이어 개관과 동시에 대한신경외과학회와도 술기교육센터 지정협약을 채결했다. 의료인 교육과 함께 학술대회 연계 교육프로그램, 미세침습술기 및 로봇술기 개발, 수술 및 수술 후 관리 통합 프로그램 운영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연계와 지원을 이어갈 방침이다.
허준 메드트로닉 대표이사는 “4년 전 8월, 코비디언에서 이노베이션 센터를 개관한 후 약 150억원을 투자하며 1000여건 이상의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운영, 외국인 의료인 1000명을 포함해 1만3000명 가량이 술기를 배웠다”며 “메드트로닉은 향후 50억원을 매년 투자해 그간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고, 국내 의료발전에 기여할 교육공간으로 꾸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 의료진의 손기술이 섬세하다. 평균 시술 수도 월등하다. 시설과 장비에 대한 피드백(경험담) 또한 굉장히 섬세하다”고 센터 개관의 배경을 설명하며 “향후 더 많은 분야의 의료진, 전문가들과 함께 폭넓고 체계적인 협업을 도모함으로써 국내 의료계 발전과 환자 치료를 위해 더욱 매진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CCI 시절 기획을 담당했던 김재필 메드트로닉 상무는 “교육훈련 방법이 최소침습에 한정돼 있어 교육장비에도 한계가 있었다”면서 “메드트로닉과 합병 후 다양한 술기를 교육할 수 있는 첨단 장비를 적극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외과 연구실을 비롯해 VT랩, 연구개발실 등 교육 핵심시설의 설비와 술기 훈련 장비들의 다수는 메드트로닉이 아닌 병원 현장에서 사용하고 있는 여러 회사 제품과 시스템들이 설치돼있었다. 이에 김 상무는 “교육을 위해 의료진의 선호를 물어 병원 시설을 본 따 타 회사 제품들도 다수 구입해 갖춰놓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심성보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 이사장(가톨릭대학 흉부외과 교수)은 “생명을 맡길 수 있는 훌륭한 의사로 자라도록 교육하고 훈련하는 것은 국민을 안심시키고 건강을 지키는 방안”이라며 “기업이 이윤을 남기는 목적이 아니라 기여하는 센터를 하고 있다. 국내 외과교육과 의학발전에 기여한 바가 크다. 정부가 하지 못하는 일들 하고 있다”고 평했다.
이어 “지난 9월 전공의 연구교육을 이곳에서 진행했다”며 “평소 일 때문에 잠도 못자며 불안에 떠는 환자 보호자와 분초를 다투는 환자를 관리하며 힘들어하던 이들이 좋은 선생과 좋은 시설, 풍요로운 물자에 오송으로 오는 길을 즐기고 들떠 센터에 들며 신이나 수술연습을 한다. 행복해한다”고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
센터가 없을 땐 의료인들의 수련은 동물과 모형에 의존해야했고, 모형이 없을 때는 상상에 의존해 연습해야했지만 술기교육시설을 통해 수술 등의 성공률이 놀라울 정도로 올라가고 부작용이 현저히 줄어드는 만큼 앞으로도 앞선 술기를 위해 지속적인 지원을 당부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에 허 대표이사는 “센터에 3D프린터를 들여 미세혈관모형을 복제해 동일한 전략을 세우고 연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이유”라며 “다국적 회사의 고도한 전략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매출과 바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훈련에 대한 요구가 굉장히 많았고, 트레이닝에 대한 시설과 기능을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기에 지원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 상무도 “첨단복합단지 특별법에 따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에 앞서 최신 슈퍼D 폐암 조기진단 장비를 국내에 가장 먼저 들여올 수 있었다”면서 “제도적인 제한점은 있지만 허가 이전에 장비를 다룰 수 있어 교육을 받는 입장에서 교육하는 입장으로의 전환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고 국내 의료진의 아시아 지역 술기교육의 선구적 역할 수행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