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스토브 리그에는 대부분의 롤챔스 팀이 ‘모험’보다 ‘한 번 더’를 택하는 추세다.
“저흰 서머 시즌 종료 직후부터 전원 재계약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최근 주전 멤버 다수를 잔류시키는 데 성공한 A 게임단 관계자의 말이다. 이번 스토브 리그 수월하게 재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던 이유를 묻자 그는 그렇게 답했다.
지난 20일 기점으로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롤챔스) 스토브 리그가 시작됐다. 곧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우승팀 삼성 갤럭시를 시작으로 롱주 게이밍, 엠브이피, kt 롤스터가 주전 멤버 전원 잔류를 선언했다.
아프리카 프릭스, bbq 올리버스, 콩두 몬스터 역시 1명을 제외한 모두와 재계약을 체결했다. 오직 진에어 그린윙스만이 주전 중 3인과 재계약을 체결했으며, 락스 타이거즈와 SK텔레콤 T1은 아직 재계약 현황을 발표하지 않았다.
지난 2016년 스토브 리그와 사뭇 대조되는 양상이다. 당시에는 아프리카 프릭스, 락스 타이거즈, kt 롤스터, 롱주 게이밍 등이 기존 멤버 전원 또는 대다수와 계약을 해지하고 완전히 새로운 팀을 꾸렸다. 진에어 그린윙스도 ‘소환’ 김준영과 ‘쿠잔’ 이성혁을 제외한 나머지 포지션을 모두 새 얼굴로 교체한 바 있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이른바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하면서 전체적으로 ‘조금만 더 가다듬으면 대권에 도전해볼 만하다’는 분위기다. 실제로 스프링·서머 스플릿과 롤드컵 트로피 주인이 모두 다른 건 지난 2014년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A 게임단 관계자는 “어렵게 모인 멤버들인 만큼 서머 시즌 종료 직후부터 한 번 더 뭉쳐보자는 얘기가 나왔다”고 밝혔다. 그는 “공식적으로 다른 팀 접촉이 허가되는 11월20일 전에 프런트와 선수단 간 뜻이 모아져 수월하게 재계약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귀띔했다.
다른 게임단도 상황이 비슷하다. 주전 대부분과 재계약을 맺은 B 게임단 관계자는 “해외 팀이 선수들에게 고액 연봉을 제시한 건 사실”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돈보다 롤드컵 진출 또는 리그 우승을 우선 가치로 두는 선수들이 많은데 그런 선수들은 한국에서 활동하길 원한다”며 “우리가 제시한 비전을 믿고 계약서에 서명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과 같이 최근 선수들 사이에서는 한국 리그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유럽·북미 등으로 대거 진출했던 최상위 실력자들 또한 지난해를 기점 삼아 하나둘씩 복귀를 희망하고 있다. 실제 고액 연봉을 받는 건 극소수에 불과할뿐더러, 언어·식습관 등의 차이로 인해 현지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해외 팀 스카우팅 열기도 예년만 못하다. C 게임단 관계자는 “예전엔 북미·중국 지역에서 한국 선수면 무조건 데려가고 봤지만, 올해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는 ‘피를 본’ 해외 팀들이 롤챔스에서 1~2년 넘게 활동하면서 검증된 선수만 데려가려고 하는 추세”라며 “선수 입장에서 선택의 폭이 좁아진 것도 대형 이적이 발생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선수 개개인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라도 한국 잔류가 더 낫다는 평이다. 지난 시즌 타 지역에서 활동한 D 선수는 “롤드컵은 당연히 한국 또는 중국이 우승할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겪어보니 연습량이 너무 차이 났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평균 연습량은 롤챔스 팀이 소화하는 양의 2/3 또는 절반 정도에 불과했으며, 팀 분위기가 좋지 않으면 그마저도 제대로 참여하지 않았다. 작년에는 1위 팀과 타 팀 간 전력 차이가 심해 대부분의 스크림이 15분 내로 끝나기도 했다.
반면 롤챔스는 무한 경쟁의 장이다. 조금이라도 게으르면 도태된다. 지난 시즌 몇몇 팀은 새벽까지 추가로 스크림을 진행하면서 경쟁력을 키웠다. 연습량이 많기로 소문난 E 게임단 선수는 과한 연습량으로 인한 어려움이 없는지 묻는 말에 “힘이 들지만 거부감은 없다”면서 “고생한 만큼 달콤한 열매를 먹을 수 있다”고 답했다. 그 정도 프로 의식을 가진 최상위 선수들이 롤챔스로 모인다.
롤드컵 우승 상금이 늘어난 것도 선수 입장에선 잔류를 선택하게 되는 옵션 중 하나다. 삼성 갤럭시는 이번 우승으로 약 20억 원 상금을 확보했다. 준우승을 차지한 SK텔레콤 T1 역시 7억 원가량을 받는다.
게임단 입장에서도 올해는 재계약 쪽으로 무게 추가 기운다. 올해는 예년과 달리 한국 복귀를 선언한 선수 중 ‘빅네임’이라 부를 만한 선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폰’ 허원석, ‘데프트’ 김혁규, ‘마타’ 조세형과 ‘마린’ 장경환 등 중국 리그에서 활동했던 최고 수준 선수들이 국내 복귀를 타진한 바 있다. 락스 타이거즈가 리빌딩을 선언하면서 ‘스멥’ 송경호, ‘프레이’ 김종인 등 초대형 FA들도 이적 시장에 나왔다. 그러나 올해 한국 복귀를 선언한 선수 중에는 그들만큼 경쟁력을 지닌 이는 없다는 평이다.
해외 무대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선수들도 있지만, 이들은 대체적으로 해외 리그 잔류를 더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리그 출신 G 선수는 차기 행선지로 선호하는 지역을 묻자 주저 없이 북미를 꼽았다. “금전적 보상이 크고, 음식이나 교통에서도 나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처럼 선수와 게임단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전방위적으로 재계약이 성사되는 분위기다. 한 게임단 관계자는 이런 현상과 관련해 “스토브 리그 시작에 앞서 선수들 사이에서는 최상위권 팀이 기존 스쿼드를 유지할 것이란 묘한 기류가 돌았다”며 “선수 입장에서는 FA 시장 진출이라는 큰 리스크를 감수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윤민섭 기자 yoonminseop@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