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영업남] '두니아'의 세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고독한 영업남] '두니아'의 세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기사승인 2018-06-17 07:00:00


초창기 MBC ‘무한도전’은 방송 시작을 알리며 항상 ‘리얼 버라이어티’라고 강조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대본에 따라 제작진의 계획대로 흘러가는 것이 예능의 정석이던 시절이었다. ‘무한도전’이 리얼 버라이어티의 개념을 가져온 건 파격이었다. 10년도 더 지난 지금 ‘무한도전’은 막을 내렸고 리얼 버라이어티는 새로운 예능의 정석이 됐다. 예능 대본의 존재는 극비 사항이 됐고, 제작진이 개입하지 않기 위해 카메라를 잔뜩 설치한 관찰 예능이 대세가 됐다.

그랬던 ‘무한도전’에서 조연출로 일을 시작한 박진경 PD가 갑자기 ‘언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을 내놨다. 지난 3일 첫 방송된 MBC ‘두니아~처음 만난 세계’(이하 두니아)다. 마치 ‘리얼 버라이어티’ 왕국에서 태어나 자란 성골이 지금까지와 완전히 다른 새로운 왕국을 세우겠다고 선언한 느낌이다.

문제는 방송을 보기 전까진 ‘언리얼 버라이어티’가 무엇을 뜻하는지 한 눈에 알기 힘들다는 것이다. 다시 대본이 존재했던 시대로 역행하는 느낌도 들고, 차별화를 위한 홍보 문구처럼도 보인다. 실제 상황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속아주던 시청자들에게 솔직하게 제작 과정을 보여주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거기에 게임회사 넥슨과 합작한 게임 예능이란 설명도 있다. 이들은 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첫 방송을 보고 모든 의문이 풀렸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파격적인 요소가 가득한 예능이었다. 지인들에게 ‘두니아’의 내용을 설명하려다가 포기했다. 차라리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는 게 낫겠다 싶어 휴대전화를 들었을 정도다.


‘두니아’를 ‘언리얼 버라이어티’로 설명하는 건 비효율적인 접근이다. 그보다는 ‘게임 예능’이라고 하는 것이 더 쉬운 설명이다. ‘두니아’는 지난 1월 출시된 모바일 게임 ‘야생의 땅: 듀랑고’를 예능으로 구현한 프로그램이다. 게임에 등장하는 오프닝과 세계관, 캐릭터, 아이템, 화면 구성, 효과음, CG 등을 모두 그대로 가져왔다. 평범하게 살던 주인공들이 아무 이유 없이 공룡이 사는 낯선 땅으로 워프(순간 이동)되는 것부터 그곳에서 생존하기 위해 요리부터 채집, 도구 제작 등 다양한 방법을 이용하는 것, K라는 의문의 존재와 무전기로 연락하는 것 등 모두 게임 속 설정 그대로다.

눈을 의심하게 하는 신선한 자막 사용과 실시간 시청자 투표를 도입한 점을 언급하는 것도 시청자들을 모으기 좋은 방법 중 하나다. ‘두니아’ 첫 회에는 등장인물의 모든 말과 효과음, 감탄사는 물론, 영상을 편집한 제작진의 마음까지 자막에 담았다. 온라인에서 개인이 만들어 배포한 자막 특유의 느낌을 서브 컬처 요소로 활용한 것이다. 매회 한 번씩 인물 중 한 명이 어떤 선택을 할지 시청자의 문자 투표로 결정하는 설정도 눈에 띈다. 시청자들의 선택이 '듀니아'의 이후 스토리에 영향을 미쳐 직접 만들어가는 느낌을 준다.

제작진이 ‘두니아’를 언리얼 버라이어티로 소개한 이유는 완전히 새로운 판을 짜는 것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인기를 끈 예능이 있으면 이름만 살짝 바꾼 후속작이 쏟아지는 것이 현실이다.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 수많은 예능 PD들도 음악 예능, 먹방 예능, 관찰 예능 같은 큰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박진경, 이재석 PD의 전작이었던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도 당시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그 또한 다수의 카메라를 스튜디오에 설치해 출연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관찰 예능의 범주 안에 있었다. 이것을 시작하게 만든 것이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거대한 개념이었다면 그것부터 뒤집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제작진은 예능의 룰을 바꿨다. 드라마처럼 대본이 있고 주어진 역할과 설정이 있다. 문제는 절반만 주어졌다는 데서 시작된다. 제작진은 그들의 리얼하지 않은 연기를 지켜보며 자막으로 시청자에게 말을 걸고, 대사가 끝난 이후의 어색한 리얼 상황에서 웃음을 찾아낸다. 유노윤호는 억지로 진지한 연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이 없음을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정혜성은 샘 오취리의 어설픈 행동을 보고 본능적으로 도망치려다 들키고 만다. 예능 경험이 많은 딘딘은 제작발표회에서 '두니아' 촬영 둘째날까지 프로그램 콘셉트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게임에서나 있을 법한 작위적인 설정(언리얼)을 어떻게든 소화하게 만든 현실(리얼)이 만들어낸 예능적인 풍경이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제작진은 1회에서 쓴 과감한 자막에 대한 호불호가 심하다는 반응을 받아들여 재방송용으로 순한맛 버전을 만들었다. 2회에서는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서브 컬처 요소를 상당 부분 걷어냈다. 1, 2회 시청률은 3.5%, 3.7%(닐슨코리아 기준)에 불과하다. 전 세대를 아우르는 것이 중요한 일요일 오후 시간대가 '두니아'와 맞지 않는다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방송된 건 겨우 2회다. ‘두니아’는 지금까지 10명의 인물들을 설명하는 데 투자했다. 스토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건 이제부터란 얘기다. 기존 예능의 틀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은 제작진들은 이제 무엇을 보여줄까. 그에 대한 기대감만으로도 ‘두니아’를 챙겨볼 이유는 충분하하지 않을까. 프로그램의 성패를 떠나서 ‘마이 리틀 텔레비전’ 제작진, 그리고 MBC가 완전히 새로운 예능을 탄생시켰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결국, 그들이 또 해냈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 사진=MBC 제공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