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를 향해 주먹이 날아오고, 간호사는 따귀를 맞는 의료현장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노출됐다. 익산의 모 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지난 1일 진료 중 환자가 휘두른 팔꿈치와 주먹, 발길질에 코뼈가 부러져 전치 3주 진단을 받았다.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치료도 받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이대목동병원에서 발생한 신생아 연쇄사망의 책임을 져야한다며 현장에서 아이들의 생명을 끝까지 지키려했던 의료진들에게 쇠고랑이 채워졌다. 의료현장에서 발생하는 모든 행위에 대한 관리책임이 의사에게 있다는 이유에서다.
심지어 병원에서 전문의로 거듭나기 위해 일주일에 80시간 이상을 근무하며 틈틈이 공부와 실력향상을 위해 수련하고 있는 전공의들의 신체는 상급자와 교수들에 의해 피멍이 들고, 녹초가 되고 있다.
이에 전문의 자격을 따고 응급실 혹은 중환자실에서 환자를 치료해야하는 전공의들이 두려움과 분노에 몸을 떨고 있다. 전공의들이 정부와 사회에 목소리를 내고자 모인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회장 안치현)는 수차례 성명을 통해 의료현장에서의 현실과 전공의들의 심정을 토로했다.
대전협은 5일 익산 의사폭행 사건을 두고 “진료현장에서 폭력은 근절돼야한다”면서 정부와 사법당국의 엄정한 대처와 올바른 판단, 적극적인 대처를 촉구했다. 사건을 무마하려하거나 법익에 부합하지 못한 판결을 내려서는 안 되며, 재발방지 등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경찰은 진료현장에서의 폭력사건에 즉각적이고 적절하게 대응해야하며 법원은 법률에서 보호하고자 하는 법익에 입각해 폭력 가해자를 가중처벌해 유사사건의 재발을 줄일 수 있도록 올바른 결정을 내려야한다고 제안했다.
나아가 진료현장에서 벌어지는 폭력사건에 대한 처벌을 피해자가 바라지 않을 경우 처벌을 하지 않는 ‘반의사불법죄’로 규정한 현행 법률은 합의를 종용하도록 부추기는 조항이므로 복지부와 국회는 이를 폐지하고, 운전자 폭행과 같이 징벌의 하한선을 명확히 하며 가해자를 즉각 현장에서 분리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라고 요구했다.
앞선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연쇄사망사건에 대해서 대전협은 “잘못된 관행으로 이득을 보고, 상황을 방치했던 이들은 입을 닫고 있다. 환자를 지키려던 의료진만 범죄자로 몰렸다”면서 “비현실적 의무를 강요하고 매도하는 현실에 좌절했다. 이대로라면 수많은 관행은 고쳐지지 않고 환자가 위험에 빠지면 전공의는 불가능한 혐의로 다시 범죄자로 몰릴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신적인 존재와 비교되는 지도교수에게 대항하고 맞설 수 없어 매 맞는 전공의들의 문제에 대해서도 “의사이며 동시에 학생인 이중적 지위로 인해 의사로서의 전문성과 실수를 용납받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과도한 업무와 지도교수에 대한 절대적 복종과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며 전공의들의 수련환경 개선과 지위향상을 촉구하기도 했다.
대전협의 이 같은 주장과 성명들을 종합하면 의료현장에서 폭행이나 욕설 등 신체적, 정신적 고통에 그대로 노출된 전공의들이 더 이상은 두려움에 떨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며 동시에 주위에 도움의 손길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한 전공의는 “진료에 대한 모든 책임을 부과하고 폭행과 폭력, 폭언에 시달리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응급실이나 중환자실과 같은 사고가 다수 발생할 수 있는 진료과에 대한 전공의들의 기피현상은 점차 심화될 것”이라며 “환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서라도 전공의들의 지위와 역할, 임상현장에서의 안전은 확보돼야한다”고 말했다.
한편, 대전협 또한 5일 성명에서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 될 수 없으며 그 누구도 폭력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 그러나 여전히 응급실을 포함한 진료현장에서 의료진이 환자나 보호자에게 폭행을 당하는 사건은 너무나도 흔하다”면서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 “안전한 의료현장에서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도 지킬 수 있다”며 “응급실을 방문한 환자들은 어떤 이유로든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큰 위험에 노출된다. 환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놓기 위해 정부는 사안의 중요성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해결에 적극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