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는 일은 그 자체로 위험이 따릅니다. 의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한 산부인과 의사의 말이다. 그는 “우리 사회가 출산의 고통과 희생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며 이같이 말했다.
최근 분만 산부인과 의사에 대한 구속 판결이 논란이 된 가운데 의료계에서는 임신과 분만도 여타 질병과 마찬가지로 위험이 따른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한 해에 아이를 출산하는 우리나라 산모 중 28명가량은 사망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국내 출생아 10만 명당 모성사망비는 7.8명으로 나타났다. 모성사망비는 임신 또는 분만 후 42일 이내에 숨진 여성을 해당 연도의 출생아 수로 나눈 수치다.
올해 기준 한국의 연간 출생아 수는 35만 7771명. 모성사망비 7.8명을 대입해보면, 한 해에 28명은 임신 또는 분만 과정에서 사망하는 셈이다. 2017년 통계에서도 28명이 임신 및 분만과 관련한 질환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 산과적 색전증, 분만 출혈 등 분만 과정에서 사망한 사람은 22명이었다.
국내 모성사망비는 2009년 13.5명에서 2011년 17.2명으로 치솟았다가 2013년 11.5명, 2014년 11.0명, 2015년 8.7명 2016년 8.4명, 2017년 7.8명으로 서서히 개선됐다. OECD 국가 평균(8.2명)보다 낮을 정도로 우수한 편이다.
그러나 이는 감염병의 일종인 패혈증 사망률(10만 명 당 7.8명)과 같은 수치이며, 운수사고로 인한 사망률(10만 명당 9.8명)보다는 낮고, 유방암 사망률(10만 명당 4.9명)보다는 다소 높은 수준이다. 과거보다 나아졌지만 임신과 분만 자체의 위험성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모성사망은 분만 과정에서 많이 발생한다. 대한주산의학회에 보고된 '한국의 모성사망 원인과 경향분석(2009~2014)' 연구에 따르면, 모성사망의 66.2%는 유산의 합병증, 임신 중 출혈 등 직접모성사망에 해당됐으며, 그 외 간접모성사망은 29.9%를 차지했다. 모성사망의 3대 원인은 '산과적 색전증(24.4%), 산후출혈(18.3%), 임신 중 고혈압성 질환(5.5%)으로 나타났다.
의료계는 의학의 발전에도 모성사망 문제에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또한 최근 35세 이상 고령 임신이 늘고, 분만인프라의 지역 간 편차가 점차 심해지고 있어 향후 출산으로 인해 사망하는 산모의 수가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윤하 대한모체태아의학회 회장(전남대병원 산부인과)은 “산부인과 의사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예측할 수 없는 사망일 정도로 분만 과정에는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이 발생한다”며 “때문에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들은 분만에 있어 불가피한 의료사고를 인정하고, 나라가 대부분의 배상 책임에 대한 부담을 지고 있는데, 우리는 의사들의 책임과 부담이 너무나 높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희생에 비해 책임과 부담이 높아지니 젊은 전공의들은 오지 않으려 한다”며 “올해 처음으로 우리 병원에 산부인과 전공의가 단 한 명도 들어오지 않았다. 호남지역 4개 대학병원을 통틀어 새로 들어온 산부인과 전공의는 1명뿐”이라고 토로했다.
김동석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화재 현장의 소방관이 불을 끄지 못했다고 처벌하지 않듯 두 생명을 살리기 위해 밤샘하며 분만현장을 지키는 산부인과 의사의 직업적 특수성을 인정해주어야 한다”며 “분만 산부인과에서 산모사망이 발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데도 의사를 구속하고 가혹한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이미 산부인과 의사들이 분만을 포기하고, 전공의들이 산부인과에 오지 않으려 하는 문제가 나타난다. 분만인프라는 붕괴되면, 모성사망은 되레 늘어나는 악순환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달 27일 대구지방법원은 사산아 분만 중 갑작스러운 태반조기박리에 의한 과다출혈로 인한 산모 사망 사건과 관련 의료진이 부주의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고 판결하고, 해당 산부인과 의사에 금고 8개월 법정 구속을, 분만 담당간호사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해당 판결을 두고 산부인과 의료계는 “분만을 하는 산부인과 의사라면 태반조기박리는 언제든지 갑자기 발생할 수 있고, 태반과 자궁벽 사이에 피가 고이는 은폐형 태반조기박리 출혈은 피고인이나 분만 경험이 많은 의사도 진단하기가 어렵다”며 반발, 오는 20일 서울역 광장에서 규탄 집회를 예고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