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방영된 드라마 ‘시그널’. 무전을 매개체로 연결된 현재와 과거의 형사들이 장기미제사건을 파헤치는 내용을 담아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극 중 형사 차수현(김혜수 분)은 DNA를 증거로 경찰서에 연행된 유괴·살인사건 용의자를 향해 이런 말을 합니다.
“윤수아씨 DNA를 어떻게 구했을지 궁금해요? 15년 전 맨홀, 기억나죠? 사용하는 물건 중에 그 사람의 DNA가 가장 많이 묻어 있는 게 뭔지 알아요? 가장 많은 시간을 접촉하는 물건, 안경이에요.…(중략) 나도 거짓말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주 작은 혈액이라도 묻어있기만 하면 10년, 20년, 100년이 지나도 DNA 검출은 가능해. 현대과학이 피해자에게 준 선물이지.”
현대과학이 피해자에게 준 선물, 우리도 최근에 목격했습니다. 강력범죄 사상 최악의 장기 미제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특정된 겁니다. 경찰은 지난 7월 사건 증거물 일부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DNA 분석을 의뢰했고, DNA는 현재 다른 범죄로 수감된 한 재소자를 지목했습니다. 그렇게 특정한 용의자는 1994년 청주 처제 성폭행·살인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이춘재(56)입니다.
눈부신 과학수사 기술의 발전도 괄목할만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사실 따로 있습니다. 사건 해결을 위한 경찰의 끈질긴 집념입니다. 경찰은 2006년 마지막 10차 사건의 공소시효가 만료된 후에도 관련 제보를 접수하고 보관된 증거를 분석하는 등 진범을 가리기 위한 수사를 계속해왔습니다. 전담팀 구성은 물론 DNA 기술 개발이 이뤄질 때마다 증거를 대조하는 작업도 꾸준히 진행했습니다. 이번 성과는 ‘반드시 잡는다’는 경찰 의지의 승리이기도 합니다.
경찰의 일념이 만든 쾌거는 또 있습니다. 이른바 ‘태완이 사건’ ‘포천 여중생 살인사건’ ‘전당포 노부부 살인사건’ 등 또 다른 장기 미제 사건에 많은 이가 관심을 갖게 됐다는 것입니다. 경찰은 현재 ‘개구리 소년 사건’ ‘이형호 유괴사건’을 재수사하고 있습니다. 미제 사건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소중한 이를 잃은 유가족들에게 전하는 경찰의 위로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죄를 저지른 범인은 반드시 잡힌다’는 메시지이기도 할 테죠.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공소시효는 끝났지만, 본격적인 경찰 수사는 이제 시작입니다.
민수미 기자 mi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