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결산] 가요 시상식에서 지워진 음원 강자들

[2019 결산] 가요 시상식에서 지워진 음원 강자들

가요 시상식에서 지워진 음원 강자들

기사승인 2019-12-21 08:00:00

올해 국내 가요 시장에서 가장 많이 재생된 노래는 무엇일까. 세계무대를 호령한 아이돌 가수의 노래가 아니다. 정답은 미국 팝가수 앤 마리의 ‘2002’. 가온차트가 지난 19일 발표한 올해(1월1일~12월14일) 음원 소비 누적 데이터에 따르면 ‘2002’는 디지털 종합 차트(스트리밍·다운로드·BGM 판매량 합산)와 스트리밍 차트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음반 차트 상위권을 휩쓴 그룹 방탄소년단, 세븐틴, 엑소, 엑스원 등 아이돌 가수들의 노래는 디지털 종합 차트 5위권 안에서 찾아볼 수 없다. 이들 중 디지털 종합 차트 10위권 안에 든 가수는 ‘작은 것들을 위한 시’(Boy With Luv)로 6위에 오른 방탄소년단 뿐이다.

올해 음원 차트는 ‘발라드 천하’였다. 임재현(2위), 폴킴(3위), 케이시(4위), 엠씨더맥스(5위)이 가온 차트가 집계한 디지털 종합 차트의 상위권을 휩쓸었다. 하지만 임재현과 케이시는 앞서 열린 멜론뮤직어워즈(MMA)나 엠넷아시안뮤직어워즈(MAMA) 등 주요 가요 시상식에서 아무 상도 받지 못했다. 범위를 20위까지로 넓히면 총 7팀(임재현, 케이시, 송하예, 장혜진&윤민수, 마크툽, 우디, 벤)이 가요 시상식에서 ‘무관’에 그쳤다. 이들 가요 시상식이 음원 이용량만으로 수상자를 가리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음악 시장이 디지털 음원 중심으로 재편된 지 이미 오래인 상태에서, 시상식과 음원 차트 사이의 괴리는 양쪽의 신뢰도를 손상시킨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앞서 언급한 7팀 중 3팀이 ‘음원 사재기’ 의혹과 함께 가수 박경의 SNS에 거론됐다. 터놓고 말하면 이렇다. 대중은 차트에 오른 많은 가수들이 음원 사재기를 했다고 의심한다. 가요 시상식을 개최하는 음악서비스 사업자들은 의심을 받는 가수들을 시상식에서 지운다. 그 결과, 한쪽은 ‘기계 픽(Pick)’이라고 조롱당하고, 다른 한쪽은 ‘그들만의 축제’라며 외면 받는다. 

사재기 의혹을 받는 발라드 가수들 대부분은 페이스북과 노래방을 마케팅 창구로 삼고 있다. 윤동환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 부회장은 최근 열린 한국콘텐츠진흥원 주관 세미나에서 바이럴 업체 네 곳을 언급하며, 이들이 페이스북 페이지에 홍보한 가수들의 음원 차트 순위가 높게 올랐다고 말했다. 한편 가온차트 김진우 수석연구원이 분석한 올해 노래방 차트 1~20위 노래들을 살펴보면 임재현 ‘사랑에 연습이 있었다면’, 황인욱 ‘포장마차’, 하은 ‘신용재’ 등 발라드곡이 대부분이다. 이들 노래는 가온차트의 디지털 종합차트에서도 상위권에 있다.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한 바이럴 마케팅이 주효하며, 이런 인기가 노래방 차트에서 확인된다고 분석될 수 있다.

문제는 대중이 이 노래들의 인기에 공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윤 부회장에 따르면 바이럴 업체가 홍보해 차트에 오른 가수들은 그러나 대중에게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멜론 별점 5개 만점 중 2개 이하) 최광호 한국음악콘텐츠 협회 사무국장도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음원 사재기에 대한) 대중의 의심은 합리적이라고 보인다”고 말했다. 히트곡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등 뉴미디어의 역할이 커졌다고 볼 수도 있지만, 가수의 인지도나 노래의 흥행 속도 등을 고려하면 신인 혹은 무명 발라드 가수들의 차트 선전이 음원 사재기로 의심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가요 시상식들이 이런 발라드 가수들에게 트로피를 안기지 못하는 속사정도 여기에 있다. 음원 성적을 기반으로 상을 주자니 사재기 논란으로 인한 반발이 걱정되고, 주지 않았더니 “그분들은 왜 상 안 줬어요”(MMA 삼행시 이벤트 응모작 中)같은 조롱이 따른다. 최 사무국장은 “시상식이 비판 받는 데엔 수상 기준을 일관성 있게 유지했느냐의 문제가 있다. 한쪽에선 ‘사재기 음원에는 상을 주지 않는 것이 옳다’고 하고, 다른 한쪽에선 ‘(사재기 의혹에 대한) 사실관계가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수상 기준을 바꿔 그 가수들을 부르지 않는 게 옳느냐’고 주장한다”면서 “아직 사재기 의혹에 대한 진위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내년 1월 열릴 가온차트 시상식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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