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자신의 당을 비판하는 칼럼을 경향신문에 기고한 고려대 임미리 교수에 대한 고발을 취하하면서 아래와 같은 말을 남겼다. 민주당 공보국은 14일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임미리 교수는 안철수의 씽크탱크 ‘내일’의 실행위원 출신으로서 경향신문에 게재한 칼럼이 단순한 의견 개진을 넘어 분명한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것으로 판단해 고발을 진행하게 되었던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잠꼬대인지 헛소리인지 도무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이다.
지금 이 나라는 온통 기생충으로 들끓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목도(目睹)하고 있는 기생충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이 땅에 표현의 자유를 꽃피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고, 다른 하나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탄압하는 ‘민주주의의 기생충’이다. 한국 사회의 불평등 문제를 다룬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작품상을 포함한 무려 4개 부문에서 헐리우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하면서 전 국민으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된 반면에, 한 지식인의 정치적 비판에 재갈을 물리려 했던 민주주의의 ‘기생충’은 국민들로부터 혹독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게 된 의미를 전 인류가 안고 있는 심각한 불평등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찾고 있다. 그런 점에서 영화 ‘기생충’은 기록에 남을만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공익적 기여를 했다고 평가한다. 특히,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을 더욱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특별한 이유는 이 영화를 통하여 우리나라가 그만큼 ‘창작의 자유’, ‘예술적 상상력’, ‘영혼의 다양성’을 넘어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고 꽃피우는 나라라는 점을 전 세계에 자랑스럽게 알릴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인간의 자유권적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가 유감없이 발현되고 있는 그런 자유로운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라는 점을 전 세계인들에게 알릴 수 있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자유의 창작물’이다.
자유라는 가치 위에 세워진 국가라는 공동체 내에서 우리 국민이 이룩한 참으로 대단한 문화적 성취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의 ‘기생충’과 같은 대단한 예술작품의 탄생은 지난 백 수십여 년에 걸쳐 이름 모를 수많은 사람들의 ‘자유를 위한 투쟁과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봉준호 감독의 사회적 문제의식에 기반한 창조적 비판력과 예술적 상상력을 영화라는 창작물을 통해 자유스럽게 형상화시킬 수 있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았다면, ‘기생충’은 어쩌면 영원히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자유와 민주주의의 개가(凱歌)’를 이룩한 대한민국에 자유민주주의를 갉아먹는 ‘민주주의의 기생충’이 출몰했다. 그리고 이 나라 건국의 주춧돌이라 할 수 있는 ‘국민의 말할 자유’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표현의 자유’를 봉쇄하기 시작했다.
그런 민주주의의 기생충이 기생하는 곳은 어디일까? 과거 한때 이 땅의 민주화 운동을 주도해 왔다고 자부하던 정치세력들의 서식지인 더불어민주당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민주당이라는 당명을 내걸고 독재정권에서나 자행되었던 공수처법 날치기 통과의 주역(主役)을 담당했다. 민주화의 영령들이 통곡할 만행(蠻行)이다. 그리고 이제 국민의 알 권리를 탄압하고 지식인의 비판에 재갈을 물리려고 시도했다가 여론 폭탄을 맞고 후퇴했다. 이들이 민주화 세력이라는 것이 수치스럽고 부끄럽기 그지없다. 민주화 영혼들이 통탄할 악행(惡行)이다. 지금 이들의 정치적 폭정(暴政)에는 부끄러움도, 윤리도, 양심도, 일말의 예의염치(禮義廉恥)도 보이지 않는다. 일찍이 한국 정치사에서 이렇게 정신적으로 타락한 정치적 파탄자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 우리 사회에 기승을 부리고 있는 민주주의의 기생충은 과거 독재정권과의 피눈물 나는 투쟁 속에서 쌓아 올린 이 땅의 민주주의 금자탑을 한순간에 무너뜨리고 있다. 민주주의의 기생충들에게는 민주주의에 대한 그 어떤 가치, 철학, 사상, 이념, 신념체계도 찾아볼 수 없다. 이들에게 민주화와 민주주의는 오직 권력투쟁을 위한 정치적 선전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은 한 마디로 민주주의를 좀먹는 민주주의의 기생충들일 뿐이다. 이 민주주의 기생충들이 탄핵을 통해 국가권력을 공짜로 줍다시피 해서 얻은 행운의 국정 운영권은 그 이면에 거짓 여론조작과 국민선동이라는 드루킹 불법 댓글 여론조작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지방 권력 쟁취를 위해 자행한 송철호 울산시장 부정선거와 같은 천인공노(天人共怒)할 불법, 부정선거행위가 있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제도적으로 보장된 삼권분립의 민주주의 체제를 완전히 파괴하고 국가공권력을 사유화하여 자신들의 권력 남용과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 법치주의를 무력화시키고 정상적인 민주주의의 작동을 불발시키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한마디로 이들은 민주주의의 기생충이라는 말 이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문재인 정권을 촛불 정권이 아닌 민주주의의 기생충 정권으로 부를 수 있는 근거는 헤아리기조차 힘들 지경이다.
그래서였을까 지난 1월 29일자 <경향신문> 31면에 실린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의 ‘민주당만 빼고’라는 제하의 칼럼이 민주주의의 기생충 세력에 의해 고발당했다. 고발자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이고 혐의는 공직선거법의 사전선거 운동 및 투표참여 권유활동 금지 위반이다. 자유의 가치를 들꽃처럼 피워야 할 ‘민주’라는 간판을 내건 바로 그 정당에서 한 지식인의 ‘표현의 자유’를 탄압한 것이다. 국민의 신성한 권리를 억압하고 빼앗은 것이다. 그리고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존재하는 ‘언론의 자유’에 재갈을 물린 것이다. 이 모든 반민주적, 비민주적인 민주주의 탄압행위가 과거 한때나마 민주화 운동을 주도해 왔다고 자부하는 나쁜 민주화 세력들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름하여 민주주의의 기생충들이다. 이 민주주의의 기생충들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 ‘국민의 알 권리’, ‘언론의 자유’를 자신들이 누릴 수 있는 ‘억압의 자유’를 통해 통째로 빼앗고 틀어막으려 했다. 이는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에 대한 테러 행위요, 린치 행위이다. 이들은 독재자들의 전유물인 억압과 통제행위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행했다. 그리고 자신들 스스로를 국민들의 자유를 빼앗고 민주주의를 짓밟는 ‘자유의 적’, ‘민주주의의 적’으로 규정했다. 이들의 반민주적이고 야만적 행태는 자신들이 민주주의자들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기생충들임을 명징(明徵)하게 드러내 준다. 이들의 국정운영 방식 또한 모든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민주주의 파괴 방식이다. 이제 민주당은 국민의 비판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중국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상황이 종료되면 벗게 될 마스크를 대신해서 다시 5천 2백만 국민에게 강제로 마스크를 씌울 작정인가? 차라리 더불어민주당이란 당명을 나홀로 독재당으로 바꾸면 어떨까?
우리의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왜 우리 헌법은 대한민국을 '전제군주국’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민주공화국’으로 천명했을까? 대한민국은 왜 임시정부의 임시헌장에서부터 ‘민주공화국’이라는 단어를 헌법에 명기했을까? 결론은 간단하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독립운동을 통해 제국의 지배로부터 벗어나서 완전한 해방과 자주독립을 맞이하기 전까지는 단 한 번도 진정한 자유를 누려 본 적이 없는 통곡의 민족이요 통한(痛恨)의 역사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우리나라의 국호(國號)가 대한제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되었을까? 해방 이후 세워질 새로운 나라는 힘없는 주변국들을 침탈하는 일본 제국주의와 같은 나라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건국자(建國者)들의 신념과 결의가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주주의의 기생충들은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을 전제군주국으로 되돌리려는 착각이 들 정도의 난동을 피우고 있다. 그것도 헌법을 초월한 존재로서 헌법의 존립 근거인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사실상 전제자(專制者)가 권력을 임의적으로, 아니 무제한적으로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는 전제정(專制政)으로 이 나라를 되돌리려는 몸부림을 치고 있다. 민주공화국은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와 헌법의 존립 근거는 국민이며 자유와 민주주의이다. 하지만 전제정(專制政)의 전제자는 헌법을 초월한 존재이다. 법치의 지배도 받지 않는다. 국민의 신성한 권리도 생각할 여지가 없다. 오직 절대 권력자 1인, 전제자 단 한 명의 자유만 보장된다. 그래서 전제정(專制政)의 국가에서 국가와 헌법의 존립 근거는 전제자의 절대적 권위에 기반한다. 전제정(專制政) 하에서 정부 관료와 사법 재판관들은 아무런 쓸모도 없다. 그리고 전제자의 측근들은 무절제하고 무계획적으로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전제권력을 휘두른다. 그래서 전제정(專制政) 하에서는 죄인을 처벌하는 법률은 애매모호하다. 그리고 법률조항이 수시로 바뀐다. 그래서 재판관은 어떤 규정을 근거로 재판해야 할지 알 수 없으며 때로는 전제자의 봉인(封印)을 가져온 측근이 재판을 무효화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이런 상태에서는 전제자 또한 너무나 쉽게 자신의 과거 결정을 뒤집어 버린다.
지금 우리나라에 민주주의라는 탈을 쓰고 이런 폭정, 전제정(專制政)을 자행하는 정치 패거리들이 있다. 이들이 바로 오늘의 민주주의의 기생충들이다.
국민의 신성한 자유권적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빼앗으려는 민주주의의 기생충들을 제거하는 것이 나라다운 나라, 국민다운 국민이 되는 지름길이다. 그것이 국가적 차원의 대혁신이고 대개혁이며 진정한 적폐청산이자 건국의 주춧돌과 기둥인 자유와 민주주의를 공고화시키는 대역사(大歷史)이다. 그 길만이 이 나라를 영원한 자유의 성지, 민주주의의 성터로 만들어 영화 ‘기생충’과 같은 자유의 창작물이 넘쳐나고 평화와 번영의 꽃이 활짝 피어나는 첩경이다.
지금 나쁜 과거 민주화 세력은 돌연변이를 일으켜 독재의 괴물로 변했고 민주주의의 기생충으로 타락했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역사에서 문재인 정권의 족보는 민주주의의 기생충으로 기록되거나 아니면 아예 삭제되어야 할 것이다. 4월 15일에 한번 두고 보자. ‘민주당만 빼고’ 찍을 것인지 아니면 ‘민주주의의 기생충인 민주당’을 찍을 것인지. 이게 나라냐?
장성민 세계와동북아평화포럼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