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의 대자연과 한국인의 선비정신

지리산의 대자연과 한국인의 선비정신

기사승인 2020-06-01 08:32:10

경남 산청군(山淸郡)에 있는 지리산(智異山) 자락을 여행했다.

이곳의 산세(山勢)는 드높고 지세(地勢)는 가파랐다. 산맥과 산능선은 한국인의 힘줄처럼 부드러워 보이지만 억세고 장엄했다. 과연 한국의 최대 산맥임에 틀림없다. 그래서였을까?

이태(李泰)의 <남부군>에 나와 있는 것처럼 이곳은 한때 지리산내 최대 빨치산 격전지 였다. 그러나 지리산의 풍광(風光)은 스위스 알프스산을 뺨칠 정도로 아름답고, 수목(樹木)은 비무장지대 (DMZ)를 능가할만큼 울울창창(鬱鬱蒼蒼)했다. 산길에는 청설모가 쉽게 눈에 띄었고, 숲속의 맑은 계곡에는 일급 청정수가 쉬지않고 흘러내렸다.

아름다운 계곡의 장관(壯觀)을 이루는 대자연의 주역은 계곡의 바위들이었다. 이 바위들과 암반(巖盤)들의 절묘한 조화는 마치 신이 꾸며놓은 돌의 정원같았다. 그 바위 주변을 감싸고 있는 노송(老松)들과의 절묘한 조화는 마치 한폭의 수채화처럼 느껴졌다.

지리산에 들어가기 전에 산청군 시천면에 있는 덕천서원(德川書院)에 들렀다. 덕천서원은 조선 중기 산림처사(山林處士)로 널리 알려진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의 학덕(學德)을 기리는 서원이다.

남명 조식 선생은 천자(天子)도 신하를 삼을수 없다는 '선비의식'으로 백성의 편에서 왕실(王室)과 조정(朝廷)을 비판할만큼 꼿꼿한 선비였다고 한다. 특히 조식 선생은 '선비는 인생의 꽃이요, 국가의 원기(元氣)이며, 민족의 마지막 보루'라고 자임(自任)하며 임진왜란(壬辰倭亂)당시 많은 제자들을 의병장(義兵將)으로 키워낸 조선 최고의 교육자로 평가되는 지조(志操)있는 선비로 전해진다. 그래서인지 덕산(德山)에는 그의 선비 문화를 기리는 '한국선비문화원'(원장 최구식)이 있었다.

놀라운 발견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국난극복(國難克服)을 위해 문(文)의 대가였던 선비들이 어떻게 무(武)의 용기와 의지로 위기에 처한 조선을 구하고자 몸과 마음을 던졌는지를 알게된 좋은 기회였다.

지리산 맑은 계곡물에는 1급수에서만 산다는 산천어(山川魚)가 유영(游泳)하며 노니는 모습이 쉽게 눈에 띄었다. 그리고 지리산 자락을 따라 펼쳐지는 약 21만평에 달하는 산속 대나무숲은 또다른 별천지로 대장관(大壯觀)을 이뤘다.

꼿꼿한 선비정신은 사군자(四君子) 중 하나인 대나무의 기상(氣像)으로부터 온 것이고, 명경지수(明鏡止水)처럼 깨끗한 선비정신은 지리산 맑은 계곡물에서 연유(緣由)한 것일까?

돌아오는 길에 지리산 해발 800미터에 위치한 ‘하늘아래 첫 마을’이라는 ‘조개골 산장’을 찾았다. 아마 조선시대에는 화전민(火田民)들이 살았던 산속 마을이었던것 같고, 한국전쟁 전후에는 빨치산들이 드나들었던 아지트였을 것이다.

지금은 지리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산장식당과 게스트 하우스들로 단장되어 많은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은 명소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이곳도 최근 코로나 영향 탓인지 여행객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고 한다. 지리산 깊은 숲속에도 문명의 발자국 소리는 들렸으며 '사피엔스'(sapiens)의 흔적은 발견되었다.

나뭇가지 위로 재빠르게 뛰어다니는 청설모를 보면서, 그리고 건너편 또다른 지리산 깊은 계곡으로부터 들려오는 뻐꾸기 울음 소리를 뒤로한 채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모처럼만에 자연과 역사의 숨소리를 함께 만끽한 1박2일간의 즐거운 지리산 여행이었다. 산청의 지리산, 그곳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오직 한국의 지리산만이 지닌 독특한 녹색생명의 숨은 진주(pearl)이며, 한국인 정신문화의 젖줄이라 할 수 있는 위대한 선비정신의 보고(寶庫)이다.
장성민 세계와동북아평화포럼 이사장

이영수 기자
juny@kukinews.com
이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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