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2년 전 유튜브에 공개한 가수 이석훈의 ‘그대를 사랑하는 10가지 이유’ 라이브 영상이 뜻밖의 ‘역주행’을 하고 있다. MBC ‘놀면 뭐하니?’ 방송 이후 ‘석며든’(이석훈에게 스며든) 누리꾼의 발걸음이 계속되는 것이다. 이석훈이 11년 전 발매한 첫 솔로음반에 수록됐던 이 곡은 그룹 최근 SG워너비의 재림과 함께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음원과 유튜브 속에 박제돼 있던 이석훈의 목소리가 오는 12일 되살아난다. ‘그대를 사랑하는 10가지 이유’를 만든 밴드 로코베리는 이 곡을 듀엣버전으로 재녹음해 발매하기로 했다. 이석훈과 입을 맞출 상대는 로코베리 멤버인 로코. SG워너비 인기에 기댄 프로젝트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번 리메이크는 이석훈이 ‘놀면 뭐하니?’에 출연하기 전부터 기획됐다고 한다. 로코베리 측은 “로코베리와 이석훈만의 따듯한 감성에 오케스트라와 어쿠스틱 악기들의 조화로운 선율이 봄의 설렘을 배가시킬 것”이라고 예고했다.
예전 인기곡을 부활시키려는 시도는 가요계, 특히 발라드 가수들 사이에서 빈번하다. 이루는 자신의 2006년 히트곡인 ‘까만 안경’을 견우와 함께 다시 불러 오는 16일 발표한다. 황인욱은 2005년 유행했던 가수 이지의 ‘응급실’을 리메이크해 7일 냈고, 벤은 여성 그룹 키스의 2001년 곡 ‘여자이니까’ 리메이크 버전을 지난 4일 공개했다. 지난달에도 하동균·봉구 ‘기다릴게’(원곡 하동균·이정), 보라미유 ‘미인’(원곡 이기찬), 경서예지 ‘모를까봐서’(원곡 쥬얼리) 등 여러 리메이크 곡들이 세상에 나왔다.
제작자에게 인기곡 리메이크는 ‘안전한 카드’다. 흥행성이 이미 입증된 데다가 듣는 이의 향수를 자극할 수 있어서다. 최근 발표된 리메이크 곡들도 음원 차트에서 순항했다. 하동균이 봉구와 다시 부른 ‘기다릴게’는 멜론 차트에서 31위(4월22일)까지 올랐고, 경서예지의 ‘모를까봐서’는 발매 당일 72위로 진입했다. 경서예지의 멤버인 경서는 작년 말 ‘밤하늘의 별을’(원곡 양정승)로 음원 차트 정상에 오른 이변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한 가요 관계자는 “리메이크 곡의 흥행 가능성이 증명되면서, 여러 가수와 제작자가 리메이크 열풍에 합류한 양상”이라고 설명했다.
가요계에 리메이크 열풍이 분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5년과 2007년에도 나얼의 ‘귀로’(원곡 박선주), 인순이 ‘거위의 꿈’(원곡 카니발) 등이 유행하며 리메이크 붐이 일었다. 김도헌 음악평론가는 “한 시대가 지나면 그 때를 추억하는 세대가 생겨나기 마련이다. 리메이크 열풍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짚었다. 그는 “최근 1~2년 사이 1990년대 생들이 유튜브에서 만들어낸 흐름이 있다. 2000년대 히트곡을 아우른 ‘싸이월드 BGM 플레이리스트’가 그 중 하나”라면서 “그러다보니 당시 감성을 되살린 리메이크 곡들이 잇따라 발매되는 것”이라고 봤다.
‘코로나(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시국’이라는 시대상도 한몫 했다. 신곡 시장은 위축된 반면, ‘추억의 노래’들이 음원차트 최정상에 오르는 ‘역주행’이 대세가 되다시피 했다. 관계자는 “IMF 구제 금융 사태가 있던 1990년대 후반에도 옛 노래가 담긴 음반이 흥행하는 등 복고 열풍이 불었다”며 “코로나19로 모두가 지친 요즘, 좋았던 시절을 회상하며 위안 받고자 하는 심리가 나타나면서 리메이크 곡들이 인기를 얻는 것 같다”고 말했다.
wild37@kukinews.com / 사진=하얀달엔터테인먼트 제공, 유튜브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