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씨티은행 근속 30년, 나는 일하고 싶다

[쿠키인터뷰] 씨티은행 근속 30년, 나는 일하고 싶다

“소매금융 철수, 씨티그룹의 단기실적주의서 비롯돼”
“불만도 있지만 그래도 씨티 ‘애행심’ 많아…납득할 수 있는 방안 나오길”

기사승인 2021-08-06 06:10:02
사진=씨티은행노동조합

[쿠키뉴스] 김동운 기자 = 한국씨티은행이 지난 2004년 한미은행을 인수한 이후 17년이 지났다. 출범 이후 한국씨티은행은 파격적인 고객 영업 전략과 부유층을 위한 프라이빗 뱅킹(PB) 서비스를 선보이며 국내 금융시장에 순조롭게 안착하는 듯 했다. 하지만 2021년 한국씨티은행은 소매금융 부문 철수 계획을 밝히며 기업금융만 남게 됐다.

한국씨티은행의 소비자금융은 철수하지만, 그들과 함께해왔던 임직원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향후 미래는 어떻게 될까. 쿠키뉴스는 씨티은행의 전신인 한미은행부터 지금까지 소비자금융에서 근무한 직원 A씨의 이야기를 듣고 그의 시점으로 그간의 이야기를 풀어본다.

한미·씨티은행 30년 근속…국내 금융업의 변화 모두 지켜봤습니다

저는 90년대 한미은행에 처음 입행했습니다. 기수로 따지면 한 자리 수가 되겠군요.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디지털 금융이란게 없었던 시기였습니다. 모든 자잘한 금융업무를 은행에서 담당했죠. 동전 교환부터 입출금, 공과금 업무 등 시민들에게 필요한 모든 금융서비스를 은행원들이 창구에서 직접 처리했으니까요.

특히 수기작업에 익숙해지는게 힘들었습니다. 오늘날에는 모든 업무를 컴퓨터로 처리하지만, 당시 한미은행은 나름 국내 시중은행 중 디지털화가 됐음에도 ‘포스단말기’로 업무를 봐야했죠. 고객들도 고충이 심했을겁니다. 창구에 앉으려면 길게 줄을 서야만 업무를 볼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다 90년대 중반에 국민은행 하나로센터지점에 ‘번호표’를 뽑을 수 있는 기계가 들어서면서 이때부터 고객들은 편하게 앉아서 기다릴 수 있게 됐습니다.

불편하고 힘들었다 생각이 들 법 합니다만,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국내 은행 중 최고라는 한미은행에 입행했으니까요. 선진화된 은행에서 근무하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모두가 힘들었던 IMF, 은행원도 고객과 울고 웃었다

그러다 97년 IMF 사태가 터지고 한국이 구제금융을 받게 되면서 모든게 달라졌습니다. 한미은행이야 미국자본이 있어 버틸 수 있었지만, 많은 시중은행이 문을 닫았죠. 이때 경기은행의 은행원들이 한미은행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혼란스러운 시기다 보니 은행원들도 힘들었지만, 고객들의 고통에는 비할 바가 못됐다고 생각합니다. 그간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고객들이 대출이 안나와 눈물을 삼키는 모습을 너무나도 많이 봤죠. 십수년 1~2년 거래한 자영업자, 중소기업, 중견기업 고객들과 자금 융통을 위해 고민하다 술을 마시며 함께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같이 고락을 함께했던 고객들이 시련을 이겨내고 지금도 연락이 오는 것은 제 자랑 중 하나입니다. 

아주 작은 사업을 하는 상인들과 어려움을 나누고 은행원은 은행원대로, 사장님들은 사장대로 함께 커나가는 한국적인 모습, 이런 ‘로컬 영업’이 한국 은행문화의 핵심이자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사진=씨티은행

한미은행이 한국씨티은행으로 “걱정보단 기대가 컸지만…”

그렇게 외환위기 사태를 넘긴 뒤 한미은행은 씨티은행에 인수됐습니다. ‘한국씨티은행’의 시작이죠. 당시 한미은행 임직원들은 다니는 은행이 바뀐다고 했을때 굉장한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다만 고용 승계가 문제없이 진행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죠.

걱정이 해소되면서 기대감이 커졌습니다. 선진금융의 본고장인 미국의 금융기술을 가지고 있는 씨티은행에서 어떤 것을 볼 수 있을지 말이죠. 당시 씨티은행은 1990년 24시간 ATM, 1993년 24시간 폰뱅킹 등 국내 은행과 다른 혁신적인 서비스를 선보이면서 파란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실제로 씨티은행은 업무체계는 기존 국내은행들과 달랐습니다. 당시에는 ‘소비자금융’과 ‘기업금융’이란 구분이 없었죠. 씨티은행이 처음으로 소비자·기업 부문으로 점포를 분리하면서 저는 소비자금융만을 담당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제가 담당하고 있던 고객들을 기업금융 점포로 넘기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1000억이상의 대출 관리를 하는 회사를 넘기다 500억, 100억으로 모두 넘기게 됐죠. 그렇게 씨티은행의 이름을 달고 약 10년이 지났을까요. 이때부터 씨티은행은 조금씩 삐걱이기 시작했습니다.

합리성 속에 감춰진 불합리…그렇게 씨티은행은 무너졌다

씨티그룹의 경영체계는 독특합니다. 미국 씨티그룹 아래 아시아태평양 지역 총괄이 있고, 한국씨티은행장이 있습니다. 그 밑에 기업금융부문장과 소매금융부문장이 따로 각 사업을 운영합니다. 다만 각 부문장은 그룹 차원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다 보니 사실상 ‘로컬 영업’이 불가능한 구조입니다.

그렇다 보니 그간 한미은행 고객들도 하나둘씩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불만이 있었던 사항은 이메일을 고객들과 소통하지 못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제 이메일은 입행 이후 아이디가 같습니다. 한미은행 당시 많은 고객들은 제 이메일로 연락하면서 소통해왔죠. 제가 지점을 옮기더라도 고객들의 연락이 오면 후배를 통해 대출받을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식으로요. 하지만 씨티은행으로 변화되면서 이런 문화는 사라졌습니다.

고객 관리에서도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한국의 로컬 영업은 ‘고객은 가족이다’라는 마음으로 응대하지만, 씨티는 ‘고객은 고객이다’라는 일종의 선이 있습니다. 합리적일 수 있지만, 차갑죠. 한미은행에서 달력이나 가계부를 만들면 방문 고객들에게 나눠줬습니다. 그런 사소한 선물 하나가 새로운 고객을 유치할 수도 있고 기존 고객을 유지시킬 수 있었죠. 하지만 씨티은행은 이런 문화를 모두 없애버렸습니다.

한국의 소비자금융에 대해 이해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죠. 그렇게 한국씨티은행은 글로벌 씨티 기준에 맞춰서만 운영하려고 하다보니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국민, 신한, 하나은행들이 소매금융 분야에서 큰 성장을 이뤄낼 때 씨티은행은 점점 가라앉게 됐습니다.

사진=씨티은행노동조합

소매금융 철수, 씨티그룹의 단기실적주의에서 비롯됐다

종합해보면 씨티은행의 소매금융 철수의 근본적인 원인은 경영진들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씨티그룹의 단기실적주의가 가장 큰 폐혜를 가져왔다고 봅니다. CEO들이 자신의 임기 내 실적 향상을 빠르게 이뤄내고자 운영비용 감축을 꾸준히 진행해왔죠. 한국씨티은행도 영업점들이 적자가 나는 것도 아닌데 마구잡이로 없앴죠. 소매·기업 가리지 않고 그룹의 기준에 의해 영업점을 없앴죠.

명실공히 우리는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은행의 수익사업의 근간은 대면 영업에 있습니다. 아무리 비대면 대출을 많이 한다 하더라도 영업점이 줄어들면 대출도 줄어들 수 밖에 없죠. 

인력 활용 문제도 심각했습니다. 제가 입행한 이후 존경하던 선배님들은 모두 한직으로 밀려났습니다. 수많은 노하우를 가지고 있었던 지점장들은 지점이 사라지면서 지금은 콜센터 Q&A 담당을 하고 있는 웃지 못할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은행원 30년, 나는 지금도 일하고 싶다

이처럼 경영진의 실패가 소매금융 철수로 이어졌지만, 정작 피해는 씨티은행 직원들이 본다는 사실이 서글픕니다. 지금 일선 현장에선 직원들의 자괴감이 가장 큽니다. 저보다 먼저 입행한 선배들부터 10년된 막내들까지 누구 하나 뚜렷하게 앞길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저 뿐만이 아니라 당시 한미은행, 씨티은행 다닌다고 하면 자랑스러워 하던 가족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아프다고 합니다.

직원들은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간 신입이 안들어온지 오래된 만큼 씨티은행의 직원 평균 연령은 40대가 넘었습니다. 모두가 한미은행, 씨티은행에서 사회초년생으로 시작했다가 한 가족의 가장들이 됐죠. 한국에서는 직장을 다닌다는게 단순히 돈만 버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가족, 사회구성원, 모든 것들이 해당 커뮤니티에 맞춰지는 만큼 한 사람의 모든 것들이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많은 불만사항들을 이야기했지만 저는 여전히 씨티은행에 대한 ‘애행심’이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건 하나뿐입니다. 이름이 아무리 바뀌더라도 계속해서 일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죠. 한미에서 씨티로 이름이 바뀌고, 그 이후에 또 이름이 바뀌더라도 저와 직원들은 창구에 앉아 고객들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이번달 소매금융 철수 방안이 확정된다고 하죠. 바라건대 직원들이 납득할 수 있는 방안이 나와주길 바랄 뿐입니다.

chobits3095@kukinews.com
김동운 기자
chobits3095@kukinews.com
김동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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