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녹십자는 얀센과 코로나19 백신 위탁생산(CMO) 계약 논의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녹십자는 지난 8월부터 세 차례 공시를 통해 ‘현재 확정된 바 없다’며 협상 진행 상황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4개월 만인 이달 9일 자로 ‘당사와 존슨앤존슨(얀센 모회사)은 금일 자로 백신 위탁생산에 대한 논의를 중단했다’고 공시했다.
당초 업계에서는 녹십자의 수주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지난해 충북 오창 소재 백신 생산공장이 완공되면서 연간 백신 20억 도즈를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확보하게 됐기 때문이다. 녹십자가 얀센 백신을 수주한다면 정부가 제시한 ‘글로벌 백신 허브’ 목표에 다가서게 된다는 기대도 적지 않았다. 현재 국내에서 허가를 받아 대규모 접종이 진행된 백신은 아스트라제네카, 모더나, 화이자, 얀센 등 4종이다. 이 가운데 SK바이오사이언스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모더나 백신을 국내에서 생산하고 있다.
얀센과 논의가 결실 없이 종료되면서 녹십자에 대한 기대감도 거듭 낮아졌다. 백신 위탁생산 이슈보다 앞서 녹십자는 코로나19 치료제 연구개발 역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마무리 지었다. 지난 4월30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코로나19 혈장치료제 ‘지코비딕주’의 조건부 허가를 신청했지만, 식약처는 ‘임상 2a상 시험의 탐색적 유효성 평가 결과만으로는 치료효과를 제시하지 못했다’며 추가 임상시험 결과를 제출할 것을 권고하고 승인을 내주지 않았다. 이에 녹십자는 입장문을 통해 “품목허가 획득에 연연하지 않겠다”며 신중한 입장을 내비쳤지만, 이어 6월4일 자로 공시를 내고 지코비딕주 품목허가 신청을 자진 취하했다고 밝혔다.
녹십자는 코로나19가 국내 확산한 지난해 초부터 치료제 개발에 뛰어들어, 국내 기업 가운데 선두주자로 꼽혔다. 지난해 5월에는 보건복지부 국책 과제 ‘코로나19 혈장치료제 개발을 위한 연구용역과제’의 우선순위 협상 대상자로 선정, 정부의 지원과 함께 혈장치료제 개발을 본격화했다. 국고 약 58억원이 투입됐으며, 코로나19 완치자로부터 혈장을 공여받아 연구개발을 진행했다. 허은철 녹십자 대표는 지코비딕주를 국내 환자들에게 무상으로 공급한다는 공약을 내걸기도 했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녹십자는 향후 코로나19 백신과 혈장치료제 분야에서 활약할 기회가 많다고 긍정했다. 녹십자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전염병대응혁신연합(CEPI)과 체결한 코로나19 백신 5억 도즈 생산협약을 통해 글로벌 기업의 백신 완제 생산을 수주할 수 있다”며 “국내에서는 지난 6월 에스티팜, 한미약품, 한국혁신의약품컨소시엄(KIMCo) 등과 컨소시엄을 결성해 국산 백신 개발 및 공급 협업계획을 마련했으며, 녹십자가 완제 생산을 담당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혈장치료제와 관련해서는 “주력 분야인 혈액제제 분야에서 확보 중인 기술과 플랫폼을 활용한 도전이었다”며 “품목허가 신청 취하 이후 지코비딕주에 대해서는 별도로 진행 중인 사항이 없지만, 혈액제제 연구개발에 지속적으로 역량을 투입하고 있고 내년에는 면역글로불린 사업의 미국 진출도 앞뒀다”고 덧붙였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