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병원에서 의료사고로 추정되는 사고로 인해 환자가 사망했습니다. 유족들은 의료분쟁중재원에 조정을 신청해 각 사건에 대해 두 차례나 감정을 받았습니다. 감정 과정에서 일부 위원들의 (의료사고 정황) 의견이 분명 있었는데, 최종적으로 감정서에는 그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유족들은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시도했지만, 중재원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의료사고 의심 사건 사망자 유족의 법률대리인 윤승현 변호사는 18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 기자회견에 참석,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하 조정중재원)의 폐쇄적이고 편파적인 운영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변호사가 변호를 맡은 사건의 사망자는 담도이상증세로 담관염 진단을 받아 치료 후 퇴원했지만, 가슴통증과 복통을 호소했다. 다시 검사를 받은 결과 급성담낭염이 뒤늦게 관찰됐다. 환자가 사망하자 유족들은 의료사고 여부를 밝히기 위해 중재원에 중재를 신청했다. 이후 중재 과정에서 제기된 의료사고 의심 소견들이 묵살됐다는 것이 윤 변호사와 유족 측 지적이다. 경실련은 현재 중재원의 상임감정위원 일부를 형사고발 한 상태다.
중재원 감정 업무는 의사인 상임감정위원 1명과 비상임위원 4명으로 구성된 정원 5명의 위원회가 담당한다. 비상임위원은 보건의료인 1명, 검사 1명, 법률전문가 1명, 소비자단체 1명 등이다. 위원들이 전원 합의한 내용에 기반해 상임감정위원이 최종 감정서를 작성한다. 위원들이 전원 합의한 의견 외에 소수의견도 제시한다면, 상임감정위원은 이를 감정서에 기재해 조정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문제는 최종 감정서에 비상임위원의 소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상임위원이 의료사고 의심 정황을 지적하는 소견을 밝혔지만, 현행 제도에 따르면 최종 감정서를 작성할 권한을 가진 상임감정위원은 이를 반영하지 않고 의료진의 ‘설명부족’ 등 모호하고 가벼운 과실로 최종 감정서를 작성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실제로 윤 변호사가 맡은 사건의 사망자에 대한 소견서도 이와 유사한 정황이 드러난다. 경실련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감정위원 김모씨와 최모씨 등은 감정소견서에 ‘처음 입원 시 담낭염을 의심하지 못하고 조치를 미흡하게 했다’, ‘초기 내원 시 패혈증만 염두에 두고 담낭염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 등의 의료사고 의심 소견을 기재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이런 소견이 반영되지 않았고 ‘판단하기 어렵다’는 모호한 결론이 도출됐다.
전문가들은 중재원의 감정 업무를 대폭 개선해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비상임위원으로 활동했던 신현호 변호사는 “현행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감정 과정에서 나오는 전문가들의 소견은 모두 최종 감정서에 반영해야 한다”며 “소수의 의견 누락이 계속된다면, 결국 감정 결과가 왜곡되는 현상을 막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송기민 한양대학교 디지털의료융합학과 교수는 “중재원이 감정을 하고, 위원 가운데 비의료인을 참석시키는 이유는 전문성과 공정성을 동시에 담보하기 위해서다”라며 “상임감정위원의 자의가 개입할 여지가 큰 현재 구조는 공정성에 치명적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비상임의원 가운데 보건의료인과 의사인 상임감정위원이 서로 친분이 있는 사이인 경우도 흔했다”고 덧붙였다. 송 교수 역시 중재원에서 비상임위원으로 활동한 경험이 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경실련의 고발 건을 포함해 중재원 감정의 공정성 문제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 관계자는 “상임감정위원이 최종적으로 감정서를 작성하다 보니, 비상임위원과 의견 차이가 있는 경우 조율이 원만히 되지 않는 사례가 많다는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다”며 “경실련에서 고발장을 접수한 사건을 포함해 그동안의 중재원 감정 업무 절차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점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