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가상자산(화폐) 거래소 빗썸을 이용하는 투자자가 개인 전자지갑으로 가상화폐를 보낼 수 없게 됐다. 투자자들은 탈중앙화인 가상화폐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빗썸은 최근 메타마스크를 비롯한 개인 전자지갑 주소를 가상자산 출금 주소로 사전 등록할 수 없다고 공지했다. 지난 19일 본인 전자지갑임을 증명하면 대면 심사를 거쳐 개인 전자지갑도 출금할 수 있다고 발표했으나 일주일 만에 바꾼 것. 변경 전 등록해둔 전자지갑 주소도 파기할 방침이다.
개인 전자지갑 출금을 막으면 투자자는 탈중앙화금융(디파이) 서비스와 대체불가능한 토큰(NFT) 플랫폼을 이용하기 어려워진다. 빗썸에서 코인을 사서 디파이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해외 거래소 전자지갑으로 보낸 뒤 이를 개인 전자지갑으로 보내는 ‘이중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상 네트워크 수수료(가스비)도 두 번 내야 한다.
관련 업계는 빗썸 이외 다른 가상화폐 거래소로 개인 전자지갑 출금 금지 조치가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 가상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당국이 자금세탁 방지에 심혈을 기울이는 만큼 한 곳에서 제재가 강화되면 다른 거래소들도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라면서 “사실상 금융기관이 원하는 대로 해줄 수밖에 없어 투자자 유출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코인원은 이메일 등 최소한의 본인 식별 정보로 가입한 개인 전자지갑일 경우 등록이 가능하다. 이때 이메일 주소는 코인원 가입 시 사용한 이메일 주소와 같아야 한다. 신한은행과 실명계좌 계약을 맺은 코빗도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업비트는 3월 트래블룰을 구축한 후 개인 전자지갑에 대한 방안을 마련할 것으로 예상된다.
투자자들은 이런 결정에 불만을 보이고 있다. 개인 전자지갑 출금이 가능한 다른 거래소를 이용하겠다는 글도 있다. 한 누리꾼은 “다 해외로 가겠다. 바이낸스가 답인가”라고 말했다. 바이낸스는 세계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다.
탈중앙화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는 반응도 있다. 또 다른 누리꾼은 “개인 (전자)지갑을 막는다는 건 탈중앙화라는 가상화폐 자체를 인정 안 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누리꾼들은 “이게 무슨 코인이냐 현금보다 유동성이 없다” “개인 지갑 막으면 우리나라만 코인 안 쓸 거냐” “폐쇄주의로 가는데 가상화폐 시장이 성장이 되겠냐”는 글을 잇달아 올리고 있다.
가상화폐 거래소별로 외부 전자지갑 등록 방식이 제각각이라 소비자들의 혼란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실명계좌 계약을 맺고 있는 은행에 따라 외부 전자지갑 등록 방안을 마련하고 있어 통일이 안 되고 있다”면서 “당국에서 같은 기준을 내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트래블 룰을 구현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는데 굳이 화이트리스트(외부 전자지갑으로 출금 시 사전 등록하는 정책)로해야 되느냐 이게 핵심이다”라면서 “금융기관이나 거래소가 화이트리스트를 해야 하는 합당한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확실하게 설명해주는 기관이 없으니 투자자들의 혼란만 커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손희정 기자 sonhj122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