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오리지널 예능 ‘더 존 : 버텨야 산다’(이하 더 존)는 ‘존버’(무조건 버티기)가 시대정신이 된 현대사회를 비춘다. “4시간 촬영? 개꿀!”이라고 외치며 촬영장에 들어간 그룹 소녀시대 멤버 유리는 몸을 에는 추위에 “이러려고 나를 불렀어?”라며 절규한다. 바른생활 사나이로 유명한 국민 MC 유재석의 입에선 “이 새X야”라는 고함이 스스럼없이 튀어나온다. 촬영 시작 15분 만에 포기를 고민하는 이광수처럼, 우리도 포기와 ‘존버’ 사이 어딘가에서 매일을 보낸다. 그래서일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포기를 포기하며 어떻게든 4시간을 버텨내는 유재석·이광수·유리의 모습이 묘한 위로와 응원을 준다.
‘더 존’을 만든 조효진 PD와 김동진 PD를 지난달 말 화상으로 만났다. 두 사람은 2007년 SBS ‘패밀리가 떴다’부터 15년 넘게 호흡을 맞춰온 막역지우이자, 일찍부터 넷플릭스와 디즈니+ 등 글로벌 OTT를 경험한 선구자다. 이런 두 사람에게 OTT 예능의 현재를 물었다. 이들이 대답으로 던진 화두는 ‘새로움’이다. 조 PD, 김 PD와 나눈 이야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Q. ‘더 존’이 공개된 지 한 달 여 흘렀다. 반응이 어떤가.
“주변 PD, 작가들에게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연락을 받고 있다. 출연자들도 만족스러워한다. 유재석은 ‘역시 재밌게 촬영한 에피소드가 방송도 잘나온다’고 했다. 거리두기를 주제로 한 4화가 특히 그랬다. 유재석이 ‘녹화 때도 재밌었는데 쫄깃하게 잘 편집했다’고 칭찬했다. 디즈니+ 측에 따르면 에피소드가 공개될수록 반응이 더 많아진다고 한다.” (조효진 PD, 이하 조)
Q. 추위, 좀비, 귀신 등이 등장하는 극단적 상황에서 4시간 동안 버텨야 하는 프로그램이다. ‘더 존’의 매력은 뭔가.
“나이, 성별, 사는 곳을 떠나서 누구나 버티면서 일상을 살아간다. 이런 포인트를 잘 살리면 한국뿐 아니라 해외 시청자도 공감하면서 웃을 수 있다고 본다.” (김동진 PD, 이하 김)
Q. 세트가 워낙 크고 여러 장치가 나와 제작비가 많이 들었을 것 같다.
“1화 세트를 짓는 데 가장 긴 시간이 걸렸다. 약 두 달 간 작업했다. 방송사와 제작비 규모를 단순 비교하긴 어렵지만 디즈니+에서 지원을 많이 해준 덕에 규모가 커보이도록 지을 수 있었다. 거대하고 특별하게 세트를 짓기보다는 시청자들이 ‘이런 공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겠구나’라고 공감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김)
Q. SBS ‘패밀리가 떴다’, ‘런닝맨’, 넷플릭스 ‘범인은 바로 너’ 등 여러 프로그램에서 유재석과 호흡을 맞췄다. TV 프로그램과 OTT 프로그램 속 유재석은 어떻게 다른가.
“큰 차이는 없지만 OTT 프로그램에서 좀 더 편하게 진행하는 것 같다. OTT 오리지널 프로그램의 경우, 촬영 이후부터 공개 전까지 후반 작업할 시간이 TV 프로그램보다 더 넉넉하다. 유재석도 편집에 들일 시간적 여유가 보장돼 있다는 생각에 좀 더 편하게 촬영하는 것 같다.” (조)
Q. 좀비 특집인 3회를 재밌게 봤다. 단역 배우들의 좀비 연기가 매우 뛰어났다.
“배우들 절반가량이 좀비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한 경력이 있다. 일단 촬영을 시작하면 제작진이 중간에 개입할 수 없어서 배우들이 알아서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좀비 역 배우들께서 제작진 기대 이상으로 잘해주셨다. 가령 좀비들이 국밥을 따라 움직이는 장면은 연출이 아닌 배우들 즉흥 연기로 탄생했다. 우리도 보면서 많이 웃었다.” (조)
Q. 유재석, 이광수, 유리는 어떤가. 세 사람의 순발력이나 노련함에 감탄한 경험이 있나.
“1화에서 이광수와 유리가 초콜릿을 놓고 가위 바위 보하는 사이 유재석이 초콜릿을 가져가는 장면을 제일 좋아한다. 작은 음식에도 절실해지는 상황을 유재석이 재밌게 보여줬다. 2화에서 이광수가 유리의 커피를 벌컥 마셔버리는 장면도 기억난다. ‘찐 남매’ 궁합이 잘 드러났다. 우리가 염두에 둔 설정을 출연자들이 200, 300% 더 잘 살려줬다.” (조)
“유리와 첫 작업이라 걱정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녹화 10분 만에 모든 걱정이 사라졌다. 프로그램에 잘 적응하고 유재석, 이광수와의 케미스트리도 보여줬다. 앞으로 어떤 상황을 만들더라도 세 출연자가 있으면 문제없겠다고 1화 녹화 때부터 확신했다.” (김)
Q. 한국 드라마가 OTT를 타고 해외에서도 크게 성공한 반면, 예능 프로그램은 문화적 차이 때문에 외국 시청자들에게 통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자주 나왔다. 이런 간극을 좁히기 위한 방법을 찾았나.
“한국 시청자를 최우선으로 두되 시청층을 (해외로) 확장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했다. 외국 시청자들이 얼마나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을지를 고려했다. 그 결과, 한국에서 유행하는 코드보다는 슬랩스틱 등 보편적인 유머를 넣고 자막은 줄였다. ‘더 존’의 경우, 전 세계 시청자들이 감염병 대유행이라는 재난 상황을 견뎠기에 ‘버티기’라는 소재에 공감할 수 있으리라고 봤다. 다행히 아시아 지역에서 반응이 좋다고 한다. 앞으로도 더 노력해서 한국 예능을 세계에 알리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다.” (조)
Q. OTT가 제작하는 드라마는 방송사 드라마보다 소재가 자유롭고 수위도 센 편이다. OTT 오리지널 예능도 방송사가 제작하는 예능과 다른 점이 있나.
“시간 여유가 많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다. 촬영 전 세트와 콘셉트 등을 고민할 시간이 충분하고, 촬영을 마친 뒤에도 편집을 비롯한 후반 작업에 더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있다. 또, 그냥 틀어두고 보는 TV와 달리 OTT에선 시청자가 적극적으로 볼 콘텐츠를 선택한다. 그래서 TV 예능은 다양한 연령층을 고려해 제작해야 한다. 반면 OTT에선 ‘범인은 바로 너’처럼 시청 연령을 제한해 표현 수위를 높이거나, 특정 집단을 겨냥해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다. 한쪽이 더 낫다는 의미는 아니다. 각자 매체 특성에 걸맞은 책임이 따른다고 본다.” (조)
Q. TV, 유튜브, OTT 등 플랫폼이 다양해진 요즘, 창작자에게 어떤 역량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내가 ‘꼰대’처럼 보일까 걱정되는데(웃음)…. 어느 플랫폼이든 현실적인 제약은 있겠지만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구현할 기회가 예전보다 많아졌다. 그러니 당장 유행하는 형식을 따라가기보다는 참신하고 자신이 하고 싶었던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 나도 그런 고민을 하는 창작자 중 한 명이다. 유재석과 ‘새로운 도전을 하자’는 얘기를 자주 나눈다. 다양한 콘셉트와 형식의 프로그램에 숨통을 틔우자는 나름의 사명감이 우리에겐 있다. 그래야 예능 프로그램들도 가지각색으로 발전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조)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