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턱 높은 방송국, 이제 안내견이 드나든다

문턱 높은 방송국, 이제 안내견이 드나든다

기사승인 2023-04-20 06:05:05
지난해 4월13일 JTBC ‘썰전 라이브’로 중계된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와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 토론. JTBC는 책상 높이가 도마 위에 오르자 한 달여 뒤 가진 두 번째 토론에서 높이가 낮은 책상으로 대체했다. JTBC 유튜브 캡처

제42회 장애인의 날을 일주일 앞뒀던 지난해 4월13일.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와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의 JTBC ‘썰전 라이브’ 토론은 그 내용만큼이나 스튜디오 환경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비장애인 눈높이에 맞춘 책상 때문에 휠체어에 탄 박 대표는 불편한 자세로 토론해야 해서다. 이승한 칼럼니스트는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에서 이런 문제를 짚으며 “장애접근성에 대한 고려 또한 평상시에 휠체어 장애인과 함께 일해본 경험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토론 당시 박 대표와 동행했던 정창조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는 책상 높이뿐 아니라 ① 무대로 이동하는 통로가 너무 좁았고 ② 무대 역시 휠체어 이용자에겐 좁았으며 ③ 생방송에 수어통역과 문자통역이 준비되지 않았다고 비마이너에서 꼬집었다.

그 후 1년. TV에선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변호사(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인기를 끌었고, 한국 드라마로는 이례적으로 장애인 배우가 장애인 캐릭터를 직접 연기(tvN ‘우리들의 블루스’)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장애인에게 방송사는 글자 그대로 문턱이 높은 곳이다. 지상파 3사 방송 가운데 장애인이 주인공인 정규 프로그램은 KBS1 ‘사랑의 가족’뿐. 장애인 고용률도 낮다. KBS와 MBC 등 지상파 방송사의 2021년 장애인 고용률은 1~2%대로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이 규정한 장애인 의무고용률에 못 미쳤다. 이 칼럼니스트가 지적했듯, 장애인과 일해본 경험이 부족한 방송사는 장애인 접근성에도 무감하다. 출입문 대부분은 휠체어로 드나들기 어려운 회전문 혹은 미닫이문이고, 점자블록이나 점자 변환기 등 편의시설도 태부족이다.

TV에 더 많은 장애인이 등장하려면 제작 환경부터 점검해야 한다. 쿠키뉴스는 2011년부터 장애인 앵커를 기용하고 있는 KBS에 방송국 내 장애인 접근성 개선 과정을 물었다. KBS는 지난 3일부터 ‘KBS뉴스12’ 속 ‘생활뉴스’ 코너를 진행 중인 허우령 앵커를 비롯해 이창훈·홍서윤·임세은·이석현·임현우·최국화 등 7명의 장애인 앵커를 배출했다. KBS 관계자는 “차별과 편견 없는 공동체를 목표로 한국 방송 사상 처음 시행한 제도”라며 “장애인 앵커 선발제도 말고도 KBS1 모든 뉴스에 수어 방송을 실시하는 등 배리어 프리를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KBS 보도본부 관계자와 나눈 일문일답.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KBS 전현직 장애인 앵커 임세은, 임현우, 허우령, 최국화. KBS 유튜브 캡처


Q. 2대 앵커 홍서윤 등 휠체어 이용자들의 접근성을 어떻게 개선했나.

“우선 건물 내 장애인용 엘리베이터와 계단 경사면 등 시설을 점검했다. 휠체어 이용 장애인의 경우 책상을 이용하는 게 오히려 불편하다고 판단해 책상 없이 뉴스를 진행했다. 원고를 손에 들되 프롬프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Q. 시각장애인 앵커는 어떻게 녹화장에 진입하나.

“1기 이창훈 앵커를 선발했을 당시 보도국 안에 점자블록을 설치하고 보조인원을 추가로 배치해 이 앵커의 이동과 업무를 지원했다. 최근 선발된 허우령 앵커는 안내견과 함께 이동한다. 허 앵커 선발 후 허 앵커와 안내견이 분장실, 녹화장, 화장실 등 회사 내 시설 동선에 익숙해지도록 안내견 훈련사가 참여해 몇 차례 이동 연습도 했다. 회사 내 복도 등 바닥에는 점자블록이 설치돼 있으나 스튜디오엔 없어서 직원과 함께 이동한다. 허 앵커 책상 옆에 안내견이 머물 공간을 마련했고, 사내 (비장애인) 직원들에게도 안내견 관련 주의사항을 공지했다.”

Q. 다른 편의시설물로는 무엇을 마련했나.

“시각장애인의 경우 보도정보시스템 접속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에 허우령 앵커 분량의 방송 원고 작성과 점자 변환, 그리고 검수 등 업무 프로세스 자체를 일부 변경했다. 또, 이창훈 앵커가 활동할 당시 별도 예산을 투입해 점자프린트 기기를 구매한 바 있다. 허 앵커의 경우 점자변환기를 이용한다. 뉴스 아이템이 결정되면 점자변환기 시스템에 맞춰 USB에 한글 파일을 담아 전달하고, 허 앵커가 이를 점자로 변환해 방송을 준비한다.”

Q. 장애인 앵커와 일하면서 무엇을 느꼈나.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 공간에서 하는 업무, 특히 방송 업무는 어려울 수 있다는 편견이 있다. 그러나 당사자의 적극성, 주변 비장애인의 참여 등으로 별 무리 없이 콘텐츠를 제작하고 방송할 수 있다는 점을 사내 구성원들이 알게 됐다. 이런 과정을 장애인에 대한 배려나 호혜로 바라보는 시혜적인 관점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울리는 공동체 형성에 방해가 될 수 있다. 구성원이 불편을 느낀다면 이를 해소해 더 나은 노동환경을 제공하는 건 회사의 의무일 뿐이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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