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부터 상급종합병원 지정 기준을 손질하겠다고 밝히자 의료계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가 입원 환자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아닌 병원과 의사만 옥죄는 방식이라는 지적이다.
보건복지부가 오는 30일 제5기(2024∼2026년) 상급종합병원 지정 계획 공고를 앞두고 변경된 지정 기준과 준수사항을 20일 발표했다.
이번 제5기 지정 기준엔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진료 과목은 상시 입원환자 진료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준수사항이 추가됐다. 위반할 경우 시정명령을 내리고 이를 듣지 않으면 지정이 취소될 수 있다.
상급종합병원에서 탈락할 경우 병원에 타격이 크기 때문에 사실상 강제성을 부여한 셈이다.상급종합병원에서 탈락해 일반 종합병원이 되면 수가 가산율이 5%p 떨어져 병원 수익이 줄어들게 된다. 규모가 큰 병원의 경우 이로 인한 손실액이 한 해 1000억원에 이를 수 있다.
저출산에 따른 수요 감소와 의료진 기피 현상 등으로 진료 기반이 약화되자, 이같은 극약처방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 지원을 더 받는 만큼 필수의료 과목의 입원 진료를 봐야 한다는 취지로 보인다.
이를 두고 의료계 내부에선 근본적 해결책은 내버려두고, 의사와 병원만 압박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낮은 수가와 법적 분쟁 등 필수의료 과목 기피현상에 대한 대책부터 내놔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임현택 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가뜩이나 수가가 낮아서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은 병원에서 천덕꾸러기 신세다. 상급종합병원 준수사항 지정으로 소아과는 병원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며 “기존 인원이 돌아가면서 당직을 서는 식으로 의사들만 힘들어질 것”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당직 설 전공의를 구하지 못해 입원 진료를 포기한 건데, 지원을 늘리는 것이 맞지 않나”라며 “인건비나 수가를 올리면 전공의 모집이 안 되겠나. 돈 들일 생각은 전혀 없고 채찍만 드는 격”이라고 꼬집었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도 “입원 환자를 안 받고 싶어서 안 받나”라며 “현재 낮은 수가 때문에 산과 분만실을 운영하지 못하는 상황인데, 대책도 없이 무조건 하라는 건 해결책이 아니다”라고 질타했다.
이어 “상급종합병원에 대한 규제를 강화시키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수가체계의 전반적 개선이 이뤄진 다음에 지정 기준을 바꿔야지, 무조건 입원 환자를 받으라는 건 보여주기식 행정에 불과하다”며 “당장 현장에 도입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복지부는 의료법에도 명시돼 있듯 소아청소년과와 산부인과가 입원 진료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의료법 제3조의4(상급종합병원 지정)에는 ‘20개 이상의 진료과목을 갖추고 각 진료과목마다 전속하는 전문의를 둘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평가지표 검토 작업을 수행한 이신호 차의과학대학 교수는 “법적으로도 20개 진료 과목을 갖춰야 하는 만큼 의사가 없다고 입원진료를 안 하는 건 법 정신에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병원 측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