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관리청이 감염병 병원체 검사에서 정식 허가받지 않은 진단기기를 사용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2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질병관리청으로부터 제출받은 ‘감염병 진단기기 개발 및 생산 용역 현황’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3년 8월까지 질병관리청은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 절차를 거치지 않고 주문제작 또는 연구용역 형태로 17개 업체에서 3만5000회분을 만들어 검사에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모두 23억7000만원어치다.
연도별로 살펴보면 2017년 조류인플루엔자 등 진단기기 5500회분, 2018년 에볼라바이러스 등 진단기기 320회분, 2019년 에볼라바이러스 등 진단기기 7505회분, 2020년 코로나19 등 진단기기 1만7040회분, 2021년 후천성면역결핍증 등 진단기기 944회분, 2022년 엠폭스 등 진단기기 3,804회분, 2023년 엠폭스 등 진단기기 300회분을 생산해왔다.
생산된 진단기기들은 소관 부처인 식약처의 안전·품질 검증 없이 검사에 사용됐다. 질병청의 용역의뢰로 생산된 제품 중 일부는 시도 보건환경연구원 등을 통해 대국민 검사에도 쓰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대국민 검사로 사용한 제품은 진드기매개질환, 홍역, 풍진, 후천성면역결핍증 등 진단기기였으며, 1만2400회분이 쓰였다.
식약처 허가를 받은 진단기기는 체외진단기기법 및 의료기기법에 따라, 시설·기구 및 장비를 갖춰 제조업 허가를 받아야 하고, 품질책임자를 둬야 하며 제조·품질 관리기준을 준수해야 한다. 또한 제품 오염 등 위해상황 발생 시 부작용 의무 보고와 회수·폐기 절차를 거친다. 그러나 질병관리청의 용역의뢰로 만든 제품은 제품오염 등 품질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이러한 품질관리 대상에서 제외돼 조속한 파악과 대응이 어렵다.
이에 대해 질병청은 상용화된 허가 제품이 없는 경우 부득이하게 위탁제조해 사용하고 있다고 답했지만, 기존 허가제품이 존재하거나 용역기간이 종료됐음에도 추가 생산이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2021년 3월 제정된 ‘공중보건 위기대응 의료제품의 개발 촉진 및 긴급 공급을 위한 특별법’ 상에서도 감염병 대유행 상황에 대비하는 제품을 지정하고 긴급 사용승인을 내릴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했음에도 질병청은 법 시행 이전과 동일하게 용역의뢰를 통한 위탁생산을 지속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최 의원은 “실험실 내에서만 만들어 사용하는 시약은 식약처 허가 없이 사용이 가능하지만, 진단기기(키트)는 완제품으로 바로 진단에 사용할 수 있으므로 소관 부처가 제품의 안전성과 성능을 면밀히 검증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어 “새로운 법률이 제정돼 운영되고 있는 만큼 질병청이 그동안 위탁제조해 온 제품에 대해서는 긴급 사용승인이나 예비 위기대응 의료제품 지정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며 “향후 기존 허가제품이 없는 신종 감염병 진단기기 생산 시 부처 간 역할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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