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후속작 들어가는 배우가 없어요. 뚝 끊겼대요. 찍어둔 건 있는데, 새로 찍을 게 없다고.” (배우 A씨)
“영화나 드라마나 다 비슷해요. 찍어놔도 편성 안 되거나 개봉 밀리는 일 허다하고.” (소속사 관계자 B씨)
최근 업계에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한탄이다. 팬데믹 당시 촬영한 작품들은 한가득인 반면 신규 제작하는 작품들은 그야말로 씨가 말랐다. 톱스타들을 찾는 작품은 여전히 있지만 그마저도 촬영 이후 단계에서 표류하는 일이 허다하다. 업계 관계자들은 “과도한 비용 상승이 불러온 나비효과”라고 입을 모은다.
스크린·안방극장 모두 부진 늪 빠져
지난해 극장가에서 손익분기점을 넘긴 한국영화는 단 6편뿐이었다. 1000만 고지를 넘긴 ‘범죄도시3’를 비롯해 ‘밀수’, ‘잠’, ‘콘크리트 유토피아’, ‘30일’, ‘서울의 봄’만이 관객 수로 책정된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공포영화 ‘옥수역 귀신’은 25만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지만 해외 판매를 통해 손익분기를 겨우 달성했다.
TV 드라마는 시청률 가뭄에 시달린 지 오래다. 지난해 시청률 20%를 넘긴 미니시리즈는 연초 방영한 SBS ‘모범택시2’(전국 기준 21%, 이하 닐슨코리아 최고 시청률)뿐이었다. 10%를 넘긴 작품은 JTBC ‘닥터 차정숙’(전국 유료가구 18.5%), tvN ‘일타스캔들’(전국 유료가구 17%), SBS ‘낭만닥터 김사부3’(전국 16.8%), JTBC ‘대행사’(전국 유료가구 16%), JTBC ‘나쁜엄마’(전국 유료가구 12%), SBS ‘법쩐’(전국 11.4%)까지 6편이다.
관객 눈높이 맞추고 OTT·배우 눈치 보고… 제작비 눈덩이
문제는 영화와 드라마 모두 제작비 규모가 급속 팽창한 상태라는 점이다. 영화 ‘외계+인’은 1·2부 통틀어 순제작비만 700억원에 다다랐다. 손익분기점이 1500만 관객에 달하지만 1부가 154만명, 2부는 125만명(이하 27일 기준)을 모으는 데 그쳤다. ‘노량: 죽음의 바다’ 역시 300억원대 제작비를 들였지만 손익분기(720만명)에 못 미치는 454만 관객(27일 기준)을 기록했다. 제작비가 커진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외국시장에서 한국영화를 향한 주목도가 커진 데다 관객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선 컴퓨터 그래픽(CG) 등에 더욱더 투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게 영화계 인사들의 설명이다.
드라마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막대한 자본력을 갖춘 해외 OTT 플랫폼으로 인해 전반적인 제작비 수준이 높아졌다. 편성을 좌우하거나 해외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배우들의 회당 출연료는 10억대 수준으로 올라섰다. 한 드라마 제작사 대표는 최근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가 진행한 ‘드라마 산업의 위기와 해결 방법에 대해 논의하는 간담회’에서 “요즘 출연료를 책정하는 주도권이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 플랫폼으로 이동해 제작에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고 토로했다. 과거처럼 PPL로 충당할 수 없는 수준의 액수다. 때문에 이제는 OTT 판매와 해외 판권 수출로 손해를 충당하는 게 새로운 표준이자 필수가 됐다. 한 드라마 관계자는 쿠키뉴스에 “지난해 모 드라마는 국내 시청률이 잘 나왔어도 해외 판매가 저조해 결과적으론 마이너스였다”면서 “출연료를 포함한 평균 제작비가 너무 높아져 이제는 시청률만으로는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새 콘텐츠 가뭄… “제작비 줄이고 다양성 찾아야” 한목소리
영화계에서는 신규 작품이 원활히 나오지 않는 이유로 제작비의 비약적 상승을 꼽았다. 한 관계자는 “과거보다 흥행을 장담하기 힘든 구조에 제반비용 같은 위험 부담은 커졌기 때문에 제작시장이 경색된 것”이라고 짚었다. 이 가운데 관객 수는 회복이 더딘 상태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23 영화 산업 결산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극장을 찾은 총 관객은 약 1억2514만명으로, 전년보단 10.9%(1233만명) 늘었으나 팬데믹 전 평균 연간 관객 수(2억2098만명)에 비해 절반가량(56.6%)에 그쳤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업계에서는 “중간 체급의 작품이 늘어나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언론과 만난 배우 윤여정은 “인구도 적은 나라에서 작품에 몇백억 제작비를 들이는 건 너무 과하다”면서 “다양성을 가진 작은 영화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했다. 한 배급사 관계자는 “불황이어도 괜찮은 시나리오만 있다면 계속 투자하려는 분위기”라면서 “이제는 시즌별로 텐트폴(주요 작품)을 내거는 것보다는 좋은 작품을 여럿 선보이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고 귀띔했다.
드라마계에서는 콘텐츠 전반의 질적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OTT가 선호하는 로맨스 작품이나 해외에서 원하는 톱스타, 아이돌을 출연시켜야 판매가 잘 되다 보니 그에 맞춰서만 제작이 이뤄지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제작비가 출연료에 편중된 것 역시 문제다. 또 다른 관계자는 “출연료가 너무 비싸 세트·미술·그래픽 작업 등 기본적인 드라마 제작비를 줄여야 하는 상황도 생긴다”면서 “K콘텐츠의 장기부흥을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서 가이드라인을 잡아줄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