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m 지하 속 ‘중저준위방폐물 처분시설’은 안전할까

180m 지하 속 ‘중저준위방폐물 처분시설’은 안전할까

기사승인 2024-02-01 11:00:02
경주 중·저준위 방폐물 동굴처분시설에 사일로(SILO). 앞에 있는 노란색 기계로 콘크리트 처분용기를 들어올려 적재한다. 사진=심하연 기자 

병원이나 연구원에서 쓰이고 버려진 방사성폐기물은 안전하게 버려질까. 버려진 쓰레기가 가득 차면 그 이후엔 어떻게 될까. 

지난 30일 기자가 방문한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중저준위방폐장(이하 경주 중저준위방폐장)은 탁 트인 동해바다 근처에 자리하고 있었다. 전국에 하나뿐인 중저준위방폐장은 현재 한국원자력공단이 관리하고 있다. 

방사성폐기물은 분류 기준에 따라 △고준위 △중준위 △저준위 △극저준위로 나뉜다. 이 중 경주 중저준위방폐장은 원전에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를 제외한 중저준위 이하 폐기물을 관리한다. 

동굴처분시설로 내려가는 입구에 도착했다. 2층 높이의 작은 건물이 보였다. 주변이 너무 조용해 인적 드문 마을의 한가한 동사무소 같았다. 시설 입구는 해발 30미터에 위치해 지진이나 쓰나미를 견뎌낼 수 있다.

지하 125m에 있는 동굴처분시설. 사진=심하연 기자

엘리베이터 타고 125m를 내려갔다. 층수로는 지하 17층 수준이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지상의 작은 입구와는 상반된 거대한 ‘지하 세계’가 펼쳐졌다. 

덧신과 방호복, 안전모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외부와 완벽히 격리하기 위해 설치한 두꺼운 강화 콘크리트 때문에 음압이 생겼다. 작게 웅웅거리는 소리가 귀에 맴돌았다. 

동굴처분시설은 200리터 짜리 방폐물 드럼 10만개를 저장할 수 있는 규모로 지어져 2015년부터 운영되고 있다. 긴 중심 터널을 기준으로 세 개의 짧은 터널이 좌우로 나뉘어져 있었다. 방폐물을 저장하는 사일로(SILO)는 세 개 터널의 양 끝에 하나씩 총 6개가 설치돼 있었다.

사일로에 적재된 콘크리트 처분용기. 사진=심하연 기자

사일로는 높이 50m, 내부 직경 23.6m의 거대한 원통형 모양이다. 그 안에는 10㎝ 두께의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직사각형 처분용기가 차곡차곡 쌓여 있다. 처분용기가 다 차면 콘크리트와 쇄석으로 윗부분을 모두 막은 뒤 사일로를 봉쇄한다. 이후 300년간 방사능 수치 등을 확인한다. 

사일로 앞에는 실시간 방사선량이 표시되어 있었다. 화면에 표시된 방사선량은 0.14 마이크로시버트. 자연방사선과 비슷한 수준이다. 방사선 양이 일정 이상으로 올라가면 세 단계로 나뉘어 위험도를 표시하는 장치도 있다. 그러나 2015년 운영 이후 안전 기준치를 넘긴 적은 한번도 없다.

30일 기준 사일로 6개에는 누계 2만9866드럼이 쌓여 있었다. 운영한 지 10년이 채 되지 않아 최대 용량의 30%가 찬 것이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에서 공사 중인 2차 표층처분시설. 사진=심하연 기자

현재 공단은 2차 표층처분시설도 공사 중이다. 2012년 부지를 선정했고, 올해 말 완공할 계획이다. 중준위 폐기물까지 수용할 수 있는 동굴처분시설이 아닌 저준위 처분시설을 따로 만든다는 것이다. 

공단은 방사선량에 따른 폐기물을 중저준위 단일 종류에서 중준위, 저준위, 극저준위 3종 분류 체계로 변경해 관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표층처분시설이 완공되면 12.5만 드럼을 처리할 수 있다.

공단은 2차 처분시설이 안정성과 경제성을 모두 고려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지혁진 공단 홍보팀장은 “중준위와 저준위, 극저준위는 모두 처분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구분해서 처리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반감기가 짧은 잡고체, 폐필터 등 저준위폐기물은 일정 기간만 분리해서 저장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려도 있다. 이상홍 경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표층처분시설 준공에 들어갈 당시 주민 의견수렴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많았다”며 “동굴에 묻어 핵폐기물을 처분하는 방식인 중준위와 다르게 표층시설은 땅 위에 핵폐기물을 저장하고 흙으로 덮는 것에 그친다”고 지적했다.

방사성폐기물이 등급에 따라 제대로 분류될지도 의문이라고 전했다. 이 국장은 “중준위보다 저준위시설이 처분비용이 훨씬 덜 들어간다”며 “중준위와 저준위 폐기물을 엄격하게 구분해서 관리할 수 있을지 우려가 된다”고 전했다. 이어 “안전이 뒷전으로 밀린 채 경제성에만 집중한 방식이 아닌지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최남호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이 2차 처분시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심하연 기자

그러나 중저준위방폐장과 다르게 고준위방폐장은 부지도 선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관련 법안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영구처분을 위한 △부지선정 절차 및 일정 △유치지역 지원 △독립적 행정위원회 설치 △원자력발전소 부지 내 건식저장시설 설치 등을 골자로 한 고준위법을 추진하려고 했으나 사실상 이번 국회에서 폐기 수순을 밟고 있다. 이에 원자력업계에서는 “법안이 통과돼서 하루라도 빨리 부지를 선정해야 한다”고 우려한다. 

이날 현장을 방문한 최남호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도 고준위법 제정 필요성을 언급했다. 최 차관은 방사성폐기물 관리 현황을 확인하며 “방사성 폐기물 관리는 안전한 원전 운영을 위한 전제 조건”이라며 “중저준위 폐기물 운영처럼 고준위폐기물 처리도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특별법이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렇게 원전 전주기 생태계를 완성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심하연 기자 sim@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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