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강을 앞둔 대학가에서 과학기술계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여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미 인건비 삭감이 진행된 연구실도 있지만, 일부 신규 과제 선정 여부가 발표되는 오는 4월 이후 타격이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29일 카이스트 대학원총학생회에 따르면 오는 4월 R&D 예산삭감 관련 여파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인건비 삭감의 여파가 4월 이후 보다 명확하게 나타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현재도 R&D 예산 삭감 관련 여파는 분명히 존재한다. 대학원 일부 연구실에서는 과제 중단 또는 예산 삭감 등을 이유로 대학원생의 인건비를 삭감했다. 오는 6월부터 순차적으로 인건비를 삭감하겠다고 예고한 곳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사후연구원의 채용을 계획했다가 예산 삭감으로 취소한 곳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교수는 “예산 삭감의 여파가 전국의 모든 대학에 미치고 있다”며 “아직 체감이 어려운 곳도 있겠지만 모든 대학 연구자들이 아주 많은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에 미치는 여파는 올해 한국연구재단의 과학기술분야 기초연구사업 선정이 완료된 후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기초연구사업 중 우수신진연구는 다음 달에, 한우물파기연구와 중견연구(1차)는 오는 4월 달에 선정이 완료된다. 신진연구자를 위한 사업들이다. 해당 연구 과제에 선정돼야 연구를 지속할 수 있음은 물론, 연구실에 소속된 대학원생 인건비 지급도 가능해진다.
대학가에서는 신규 과제 공모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그만큼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2022년 기준 우수신진연구 신규 사업 선정율은 30.9%다. 신청된 1769개 과제 중 547개가 선정됐다. 특히 기초연구부문은 정부의 연구과제를 통해 대부분의 연구비를 충당한다. 분야에 따라 다르지만 기업으로부터 과제를 수주하는 비율은 높지 않다.
석박사 통합과정 중인 카이스트 대학원생 A씨(25)는 “기존 과제를 유지하지 못하게 된 연구실이 너무 많다”며 “올해 어떻게든 신규 과제를 따내는 것이 대다수 연구실의 목표가 됐다. 신규 과제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준영 전국대학원생노조 수석부지부장은 “과제 선정이 완료된 후에 인건비 삭감 여부가 명확히 정해진다”며 “오는 4월로 넘어가면서부터는 본격적인 예산 삭감과 인력 감축 등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R&D 과제비는 대학원생의 학위 취득 기간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난 22일 발표된 ‘2023년 카이스트 연구환경실태조사 분석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R&D 과제비를 받는 경우, 학위 취득 기간이 길어지는 사례가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경제적 지원 수준이 높을수록 학위 취득 기간이 길어지는 사례도 적었다. 반대로 말하면 연구비를 받지 못하거나 경제적 지원이 적어질 경우, 졸업에 걸리는 시간이 길어질 수 있는 것이다.
정부는 이공계 대학원생을 위한 장학금 확충에 나섰지만 반응은 일부 갈린다. 앞서 정부는 학부생만 받을 수 있었던 ‘대통령과학장학금’을 대학원생에게 확대했다. 올해 120명이 대상으로 선정됐다. 또한 R&D 과제에 참여하는 이공계 석박사 과정 대학원생에게 매달 일정 금액 지원을 보장하는 ‘연구생활장학금’도 도입한다. 혜택이 늘어나는 것에 대한 긍정적 반응도 있지만, 수혜 인원이 적고 R&D 예산이 삭감된 상황에서 ‘조삼모사’라는 비판도 인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 명예교수는 “정부가 R&D 예산 삭감에 대해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것 같다”며 “장학금 확충 등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R&D 삭감으로 기초연구가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 과학기술계가 ‘카르텔’이라는 오명을 쓴 상태에서 사기도 많이 떨어진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정부가 새롭게 들고 나온 글로벌 R&D가 잘 진행될 수 있을지 우려가 크다.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과제들을 다른 나라에서 원활히 협업해 주겠느냐”며 “형식적인 국제협력이 될 확률이 높다”고 꼬집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