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핵심 기술을 가진 인재들이 해외 기업으로 이직하는 등 기술 유출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 기업에서도 유출을 막기 위한 노력을 꾀하고 있으나 법적처벌 강화 등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제50민사부(김상훈 재판장)는 지난달 29일 SK하이닉스가 전직 연구원 A씨를 상대로 낸 전직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이를 위반할 시 1일당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A씨는 SK하이닉스에서 HBM을 연구하던 연구원이다. 지난 2022년 7월 SK하이닉스를 퇴사한 후 미국 마이크론으로 이직했다. 퇴사 후 2년간 경쟁업계에 취업하지 않겠다는 약정서를 썼으나 이를 어긴 것이다.
SK하이닉스는 “HBM을 포함한 D램 설계 관련 기술은 국가 핵심기술에 포함되기에 법원의 판결은 적법하다”며 “이같은 판결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반도체 기술 유출은 업계의 오랜 고민이다. 지난해 6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설계 자료를 중국에 빼돌린 혐의로 삼성전자 전직 임원 B씨가 기소됐다. B씨는 부정 취득한 국가핵심기술로 30나노 이하급 D램 및 낸드플래시를 제조하는 반도체 공장을 세우려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5년간 ‘국가핵심기술’을 포함한 우리나라 전체 산업기술의 해외 유출 적발 건수는 총 96건이다.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이중 반도체 분야 적발 건수는 38건으로 전체의 39.6%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반도체 업계는 ‘최고의 대우’를 약속, 기술 및 인재 유출을 막고자 노력 중이다. SK하이닉스는 ‘정년 없는 엔지니어 제도’ 등을 통해 60세가 지나도 계속 근무하면서 후배를 육성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지난 2019년부터 ‘명장 제도’를 운영, 구성원에게 자부심을 불어넣고 있다. 명장으로 선정되면 격려금과 명장수당, 정년 이후에도 근무 가능한 ‘삼성 시니어 트랙’ 대상자 선발 시 우선 검토 등의 예우를 받을 수 있다. 또한 일정 직급 이상 수석 중에서 기술이 뛰어난 인재를 대상으로 ‘Distinguish Engineer’라는 타이틀을 부여한다. 복지·근무여건 등에서 직원의 편의를 최대한 지원하고 있다.
다만 기술유출에 대한 법적 처벌 강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실형이 선고된 사례는 드물다. 대다수는 집행유예에 그친다. 익명을 요구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기술을 유출하고도 얼마 되지 않는 징역형과 벌금 정도로 끝난다면 나쁜 마음을 먹기기 쉽다”며 “지금보다 더욱 강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지성우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기술유출·탈취를 간첩죄 혹은 그에 준하는 처벌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국내에 얼마 남지 않은 원천기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보다 강력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