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세사기 피해금 모든 금액을 돌려달란 것이 아닙니다. 법정에서 인정하는 최우선 변제금만이라도 선 구제해 달란 것입니다. 단 2700만원, 3400만원을 보장받을 수 없어 피해자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습니다. 제발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주시길 바랍니다. (강민석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은 지 하루도 채 안 돼 정부 거부권 앞에 멈췄다. 21대 국회가 마무리돼 전세사기특별법은 22대 국회에서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30일 전세사기 특별법을 둘러싼 정부와 야당의 갈등이 격화하는 양상이다. 더불어민주당은 21대 국회 임기 만료 하루 전인 지난 28일 본회의를 열어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 안정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가결했다. 국민의힘은 야당의 강행 처리에 항의해 불참했다.
본회의 통과 직후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2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 임시 국무회의를 열고 전세사기특별법을 포함한 4개 법안에 대한 재의요구안을 의결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로부터 15일 이내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정부와 야당의 갈등으로 인해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은 장기화 조짐을 보인다. 21대 국회는 임기 만료됐고 22대 국회 원 구성까지 상당 시간 소요되기 때문이다. 또, 구성 이후 국회가 새로 제출된 특별법 개정안을 심사‧표결하기까지 난관이 예상된다. 정부와 야당의 입장 차이가 좁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22대 국회에서 ‘정부안’을 새로 발의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또다시 선구제 후회수 방안이 담긴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맞불을 놨다.
“살려달란 애원에도…희망 잃어”
법안이 국회에서 계류 중인 사이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생계의 위협을 받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2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 모여 구조요청을 보냈다.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강민석씨는 “피해자들의 얇고 얇은 꿈인 전세사기특별법 재개정이 통과 후 단 몇 분 만에 거부권 행사 가능성 기사를 보고 무너졌다”라고 말했다. 그는 “피해자들이 국가에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데 국가는 외면하고 있다”라며 “도대체 얼마나 더 죽어야 하냐. 제발 피해자들 좀 만나 얘기를 들어달라”라고 호소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선구제 후회수는 전액 보증금 보장이 아니며 최소한의 선택지 중 하나임을 주장한다. 안상미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 위원장은 “전세사기 피해 당사자이지만 현 전세사기특별법은 사용 못 한다”라며 “경매 시 100% 낙찰 자금 지원해 준다더니 대출은 거부됐고 2년간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피해자들 상황이 각기 달라 다양한 선택지가 필요한 것”이라며 “정부가 발표한 대안은 해당 집에 계속 거주 시 도움이 되지만 그 집에서 거주하지 않을 사람에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라고 호소했다. 피해자들은 정부 거부권 행사에도 22대 국회에서 특별법 개정 촉구 활동을 이어 나갈 계획이다.
선구제 후회수를 통해 최소한의 보증금 보장을 촉구했다. 강민석씨는 “전세사기특별법이 개정안도 최우선 변제금을 보장하는 것. 현재 피해자들은 2700만원, 3400만원이 없어 죽고 있다”라며 “전액을 보장해달라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은 “전세 보증금은 그냥 보증금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라며 “우리 삶이 짓밟혀 도움을 요청하는데 국가는 손을 잡아주지 않는다. 그 절망감에 희생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상황까지 발생한 것”이라고 호소했다.
“전세제도, 변화 필요한 시점”
업계 전문가들은 현행 전세제도가 전세사기를 키운다고 지적하며 손질 필요성을 제기했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전세사기를 치기 쉽고 처벌은 약하다. 양심만 버리면 돈을 쉽게 벌 수 있으니 사기범들이 끝도 없이 나오는 것”이라며 “전세사기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시스템 정비도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현행 전세 시스템은 임대인의 세금 체납 여부 등을 개인에게 확인하게 한다”라며 “계약 당사자들이 확인할 의무는 있으나 믿고 계약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국세청과 국가기관이 연계된 시스템을 통해 전세 계약서를 작성하고 안정성 유무, 보증보험가입까지 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전세대출과 전세금보증보험 한도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문도 서울 디지털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일단 국가가 전세제도에서 빠져야 한다”라며 “국가 개입이 지속되며 전세가율(주택매매가격에 대비한 전세가격의 비율)이 80~90%를 넘는 깡통전세가 늘어났다”라고 진단했다. 이어 “전세대출과 전세보증보험 한도를 줄여야 한다”라며 “전세금반환보증 비율을 70%로 낮추면 전세가율도 70%선으로 조정되며 시장에서 정상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수준으로 찾아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