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40도까지 오르는 등 역대급 무더위가 지속되면서 건설 현장 노동자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지난달 부산에서 건설 노동자의 온열질환 사망사고까지 발생한 만큼 건설사들도 안전 관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6일 업계에 따르면 건설 현장은 온열질환 산업재해 비중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근로복지공단이 국회에 제출한 ‘온열질환 산업재해 승인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열사병, 탈진 등 온열질환 산업재해로 승인된 건수는 총 147건이다. 이 중 사망사고는 총 22건으로 나타났다. 업종별로는 건설업이 70건, 전체의 48%로 가장 많았다. 이는 2위 제조업(22건) 대비 약 3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온열질환 사망사고 역시 건설업(15건)이 68%로 드러났다.
온열질환 사고는 중대재해 처벌 대상이다. 한 사업장에서 3인 이상 온열질환 환자가 나오거나 1명 이상의 온열질환 사망자가 나올 경우 처벌 가능하다. 실제 지난 7월 부산 연제구 한 근린생활시설 건축 현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A씨는 온열질환으로 사망했다. A씨는 사망 당시 체온이 40도에 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과 부산고용노동청은 해당 건설사를 상대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 등을 수사 중이다.
주요 건설사들은 온열질환자 발생 최소화를 위해 안전관리 캠페인을 마련하고 현장 관리 강화에 들어갔다. 현대건설은 지난 6월1일부터 9월 말까지 ‘온열질환 예방 혹서기 특별관리기간’으로 지정하고 ‘3GO! 프로그램’을 전개 중이다. 3GO! 프로그램은 ‘마시 GO! 가리 GO! 식히 GO’라는 슬로건을 통해 물과 그늘, 휴식 수칙을 중심으로 하는 대응 전략이다.
현대엔지니어링도 같은 기간 ‘HCE 아이스(ICE) 캠페인’을 통해 폭염 단계별 세부 가이드 수립 후 현장 내 깃발, 배너 설치 및 사이렌 알림 등 알림 체계를 강화했다. 체감온도 33도 이상 폭염주의보 발효 시 ‘워터보이’가 현장을 돌아다니며 식수 지급과 직원 건 상태 확인에 나선다. 또, 외국인 근로자도 소외되지 않도록 국가별 언어가 능통한 직원이 온열질환 예방 교육도 별도 실시하고 있다.
건설사 대표 이사(CEO), 최고안전관리자(CSO) 등 경영진도 직접 현장 방문을 통해 안전 관리를 강조하는 상황이다. 5일 조태제 HDC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 최익훈 대표이사, 김희언 대표이사 등 주요 경영진은 서울숲 아이파크 리버포레 현장을 방문해 ‘HDC 고드름 캠페인’ 이행상황을 점검했다. HDC 고드름 캠페인은 휴게시설 설치 의무화와 옥외작업자를 위한 시설물 설치, 취약 근로자 관리, 휴식 시간 부여하는 근로자 건강 보호 프로그램이다.
GS건설은 지난 4월부터 발 빠르게 전국 현장에 ‘온열 질환 예방가이드’를 배포하고 지난 5월 초 최고안전책임자(CSO)를 포함한 안전점검 부서에서 현장을 방문했다. GS건설은 폭염주의보 발효 시 전 근로자에게 보냉 제품을 지급하고 시간당 10~20분 휴식을 관리하고 폭염경보 발효 시 옥외 작업 중지하고 있다.
일부 건설사의 경우 자체적으로 작업중지권 활성화에도 나서고 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더위가 느껴지거나 어지러움, 두통 발생 시 작업중지권을 통해 해당 작업을 중단하고 휴식 시간을 제공하고 있다. 체감온도 33도 이상 시 시간당 10~15분씩 휴게 시간을 보장하고 있다.
문제는 중소 건설사 등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건설노동조합이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1일까지 건설 노동자 1575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15%는 여전히 물도 제공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응답했다. 혹서기 무더위 시간대 작업 중지는 단 18.3%, 정기 휴식은 25.4%만이 준수했다. 이는 고용노동부가 조사한 통계와 큰 차이를 보였다. 노동부에 따르면 무더위 시간대 작업 중지는 36%, 정기 휴식은 77.1%가 준수했다.
건설노동조합 관계자는 “폭염 특보 발령 시 현장에서 사이렌은 울리는데 쉴 수 없다”며 “체감온도 35도 이상 시 무더위 시간대 옥외 작업을 중지하지만 대체로 별도 중단 없이 일을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아무리 더워도 작업 중단을 요구할 수 없다”며 “건설 일을 하려면 더워도 일을 해야 하고 쫓겨날까 봐 말을 못 한다”고 호소했다. 아울러 그는 “고용노동부 폭염 지침은 강제성이 없어 건설 현장에선 있으나 마나 하다”고 덧붙였다.
노동부와 일부 건설사의 폭염 대책을 두고 강제성이 필요하단 의견도 나온다. 전재희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현재 고용노동부의 폭염 지침은 강제성이 없어 6년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면서 “1군 대형 건설사도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이어 “화장실, 휴게실 등 의무 설치가 되긴 했지만 상태가 좋지 않거나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라며 “현장 안전 캠페인도 권고사항으로 현장에서 정착되고 있지 않아 법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