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0g. 김하영(38·가명)씨가 임신 23주 4일째 되는 날 하진이는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에서 미숙아로 태어났다. 작고 연약했던 하진이는 엄마 아빠 곁이 아닌 인큐베이터 안에서 4개월 반 동안 의료진의 케어를 받아야 했다. 의료진의 관심과 노력 속에서 수 차례 수술과 위기를 넘어 하진이는 출생 당시 체중의 8배인 4㎏을 넘긴 상태로 건강히 퇴원했다. 김씨는 “처음에는 그저 살아만 주길, 엄마 아빠 곁으로 와주기만 바랐다. 의사·간호사 선생님들 덕분에 하진이가 건강하게 퇴원할 수 있게 됐다”며 “지금은 더 바랄 게 없다. 건강하게, 웃음이 많은 아이로 잘 자라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년 넘게 계속된 의료공백 상황에서 고위험 임산부와 아이들의 숨결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이 있다. 아픈 아이가 치료받아 건강을 찾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고위험 신생아 치료 지원이 확대되고, 배후진료가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지난 4일 쿠키뉴스와 마주한 하진이 가족과 이성희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이임재 고위험 산모·신생아 통합치료센터 간호팀장은 하진이가 퇴원하기까지의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전했다.
지난 4월 김씨는 밤늦게 진통이 왔지만 그동안 다녔던 병원에서 분만을 할 수 없었다. 전공의 집단 이탈의 영향으로 임신 28주 이상만 분만이 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병원을 수소문한 끝에 건보 일산병원에서 무사히 출산할 수 있었다. 다만 미숙아로 태어나 인큐베이터 치료가 필요했다. 하진이는 고위험 산모·신생아 통합치료센터 내에서도 가장 작은 아이였다. 극진한 보살핌이 필요했다.
이성희 교수는 “살짝만 만져도 부서질 것 같이 작고 연약했다. 의료진 모두가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대해야 했다”며 “지금은 트림시키기 위해 등을 두드려줄 만큼 크고 건강해졌다”고 말했다.
하진이는 숱한 고비를 겪었다. 우선 망막병증 치료를 받아야 했다. 망막병증은 망막혈관이 완전히 형성되기 이전에 태어난 미숙아에서 많이 발생한다. 망막혈관의 비정상적 발달로 인해 치료시기를 놓쳐 망막박리로 진행될 경우 예후가 좋지 않다. 무엇보다 빠른 치료 요구된다. 이에 빠른 수술이 가능한 서울대병원까지 전담 간호사팀과 보호자가 119구급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이송 과정에서 감염 우려도 있어 여러 검토와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했다.
동맥관 개존증 수술도 이뤄졌다. 동맥관 개존증이란 선천성 심장 기형의 일종이다. 아기가 출생 후 자가 호흡과 폐순환을 시작하면 대동맥과 폐동맥 사이를 연결하는 동맥관이 자연스럽게 막혀야 하는데 이같은 폐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열려 있는 질환이다. 열린 상태가 지속되면 심내막염이나 폐부종 같은 합병증이 생기거나 심부전 등으로 사망할 수 있어 신속한 수술이 필요하다.
이 교수는 “혈압이 잘 안 잡히고 수술 난이도도 높아서 후유증이 남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잘 넘겼다. 버텨줘서 고맙고 기특했다”면서 “센터 의료진 모두가 하나 된 마음으로 하진이를 바라봤던 것 같다. 소아청소년과 의사로서 가장 보람 있는 순간이었다”고 했다. 지난 2018년 경기 북부 권역 유일한 고위험 산모·신생아 통합치료센터로 지정된 건보 일산병원은 총 20병상에 분만실, 신생아실, 산모·태아 집중치료실, 신생아 집중치료실 등을 갖추고 있다.
간호사들도 24시간 돌아가며 하진이를 보살폈다. 30년 경력의 베테랑 간호사인 이임재 간호팀장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이 간호팀장은 “위태로운 순간이 있었지만 건강하게 퇴원할 수 있었다”며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다. 퇴직하는 날까지 아이들을 잘 치료해 모두가 가족 품에 안기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다.
환자를 잘 돌보는 것은 의료진의 소명이지만 이를 위해선 인력, 장비, 시설 등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 이 교수는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감소에 대비해 의료공백 사태가 터지기 이전부터 전담 전문의 시스템을 구축했다”며 “출산 연령 증가 등의 이유로 고위험 산모·신생아가 늘고 있는 만큼 앞으로 중요한 건 전문 인력을 확보하는 일이다”라고 피력했다. 현재 고위험 산모·신생아 통합치료센터는 전문의 7명, 전담 간호사 2명, 그 외 간호 인력 등으로 구성돼 운영되고 있다.
이 교수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만 있어선 고위험 신생아를 볼 수 없다. 소아외과, 소아흉부외과, 소아안과, 소아신경외과 등 배후진료가 가능한 소아 세부 분과 전문의가 꼭 필요하다”면서 “이들이 팀워크를 이뤄서 오랜 기간 환자를 보고 제대로 된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끔 관심과 지원이 뒷받침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