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유도제 ‘미프진’(성분명 미페프리스톤)의 불법 유통 문제가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지만, 정부는 미온한 대처로 일관하고 있다. 시민단체는 국가가 필수의약품 지정 등을 통해 도입을 추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11일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온라인 사이트 등에서 미프진을 불법으로 판매한 A씨가 약사법 혐의로 검거됐다. 최근 언론과 SNS 등을 통해 미프진 불법 거래 실태가 드러나면서 경찰이 수사망을 강화한 결과다.
식약처의 ‘최근 5년간 의약품 온라인 판매광고 적발 현황’에 따르면 유산유도제의 적발 건수는 2014년 175건에서 2015년 12건으로 뚝 떨어졌다가 2019년 2365건으로 200배 가까이 증가했다. 2020년부터는 적게는 200~400여건, 많게는 수천건 이상의 유통 사례가 적발되고 있다.
미프진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2005년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해 90여개 국가에서 합법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의약품이다. 반면 국내에선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지 못해 불법지대에 놓여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정식 도입을 위한 시도는 있었다. 2021년 7월 현대약품이 미페프리스톤 성분인 ‘미프지미소’를 도입하고자 처음으로 허가를 신청했지만 식약처 승인을 얻지 못했다. 이어 지난해 3월 허가 재신청을 추진했는데 식약처가 임상 자료 보완을 요구하면서 보류된 상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미페프리스톤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고 수십년째 쓰고 있는 약물이라 보완할 자료가 없다”며 “식약처가 법적, 사회적 이슈 때문에 허가를 미루는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현대약품 측은 식약처 요청에 따라 자료를 보강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식약처 국정감사에서 ‘미프진을 국가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자 오유경 식약처장은 “법률 개정 추이를 지켜보면서 사회적 논의를 지속하겠다”고 답한 바 있다. 해당 법률은 모자보건법이다. 모자보건법은 임신중절 수술 허용과 관련한 규정은 있지만 약물에 대한 내용은 없다. 지난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이후 법을 개정하도록 했지만 5년째 감감무소식이다.
시민단체는 국민청원, 기자회견, 시위 등을 통해 수년째 미프진의 정식 도입 필요성을 외치고 있다. 정부가 미프진 불법 유통 사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단편적인 조치에 그치는 불법 사이트 적발, 경찰 조사 외에 합법적으로 미프진을 쓸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동근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사무국장)은 “미프진의 정식 허가가 어렵다면 긴급 도입 필수의약품 등 여러 제도적 대안을 이용해 공급을 공적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며 “여성들은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미프진의 온라인 유통을 전면 차단할 수 없다면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식약처는 ‘법률 개정이 우선돼야 한다’면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방치하고 있다”며 “시민단체는 지난 6월 2000여명이 참여한 국민감사청구를 감사원에 제출한 상태다. 식약처가 미프진을 도입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왜 허가를 안 하는지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에 따르면 감사원은 해당 감사 요청에 대해 논의가 필요하다며 보류 결정을 내렸다.
다음달 진행될 국정감사에서도 미프진 불법 유통 사례에 대해 식약처를 상대로 질의가 이어질 예정이다. 이 정책위원은 “많은 국회의원분들이 미프진 도입 상황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고, 국정감사 질의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경찰이 수사에 나선 상황에서 올해 국정감사는 관련 법 개정, 미프진 허가 등과 관련한 정부 부처의 적극적인 움직임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기회라고 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