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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하반기 ‘법인 가상자산 투자’ 활로가 열리면서 은행들의 가상자산거래소 확보전이 불붙고 있다. 일각에서는 ‘1거래소·1은행 체제’와 맞물려 대형 거래소의 독과점이 고착화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빗썸은 NH농협은행과의 ‘7년 동행’을 마무리하고 다음달 24일부터 ‘리딩뱅크’인 KB국민은행과 손을 잡는다.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에 따라 가상자산거래소는 은행 실명계좌가 있어야 원화마켓을 운영할 수 있다. 앞으로 투자자들은 농협은행이 아닌 국민은행 계좌를 연결해야만 빗썸에서 가상자산 거래가 가능하다. 국민은행 계좌가 없던 이용자들도 거래를 지속하려면 신규로 국민은행 계좌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사전에 이전된 계좌만 2만여 개에 달한다.
업계에선 이번 제휴를 두고 “분위기가 반전됐다는 단적인 예시”라는 평가가 나온다. 당초 은행들은 안정성 문제로 가상자산 거래소와의 협력에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변화가 일고 있다. 가상자산 업계의 숙원이었던 ‘법인계좌’가 허용되면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3일 제3차 가상자산위원회를 열고 법인의 가상자산 거래를 점진적·단계적으로 허용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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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자산 거래소와 제휴를 맺지 못한 은행들의 행보도 빨라질 전망이다. 국내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인 업비트는 오는 10월 케이뱅크와 계약 만료일을 앞두고 있다. 최근 업비트는 하나은행 인증서를 본인 인증 수단으로 추가하는 등 간접적 제휴에 나섰다. 하나금융 수장인 함영주 회장도 신년사에서 “가상자산 시장·규제 변화의 흐름에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며 선제적인 활용을 강조했다.
은행 입장에서 가상자산거래소와의 제휴는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할 기회다. 투자자의 예치금이 은행의 대규모 요구불예금으로 유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요구불예금은 언제든 입출금이 가능한 예금으로, 통상 금리가 1% 미만이다. 비교적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어 은행의 수익성 향상에 도움이 된다. 국내 5대 암호화폐거래소의 지난달 말 기준 예치금은 10조6561억원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1월(5조2154억원)과 비교하면 104.32% 폭증한 규모다. 가상자산거래소와 제휴된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가상자산 거래 규모가 커지고 법인 계좌가 허용되면서 금융권에서도 가상자산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며 “젊은 2030세대 고객을 늘릴 수 있다는 점도 은행들이 적극적인 유치 경쟁에 힘을 보태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다만 은행들 간 가상자산거래소 제휴 경쟁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1거래소·1은행’ 체제로 인해 소수 대형 거래소의 독점 구조가 공고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1거래소·1은행 규제란 거래소 하나당 특정 은행 한 곳과만 실명계정 발급 계약을 맺어야 한다는 일종의 그림자 규제를 말한다. 법규상으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금융당국의 관리 아래 사실상 규제처럼 작용한다. 한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해당 체제가 시장 독과점을 고착화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만큼, 체제 변화가 필요하다”며 “하반기 법인의 가상자산 거래 허용 이후 금융당국의 추가 규제나 제도 개편 여부가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