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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들의 지난해 4분기 성장세가 주춤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급여력비율(K-ICS)도 크게 떨어졌다. 금융당국이 계리 가정을 변경한 여파다. 보험업계는 올해 1분기까지는 이러한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계리 가정이란 보험사가 미래 부담해야 할 비용의 예측치를 말한다. 금융당국은 지난 2023년 새로운 회계제도인 IFRS17을 도입하고 보험사가 자율적으로 정한 여러 계리 가정을 변경하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왔다.
21일 보험업권에 따르면 삼성화재는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지만 4분기 당기순이익은 2079억원으로 3분기 대비 62.5%(3467억원) 떨어졌다. 메리츠화재의 지난해 4분기 당기순이익도 직전 분기에 비해 56%(2773억원) 줄었다. 전년 동기와 비교해도 20%(531억원) 감소했다.
4분기 실적을 바꾼 가정 변경의 핵심은 보험부채다. 고객에게 지급할 것으로 예상되는 보험금을 뜻하는데, 손해율과 해지율을 추정해야 산출할 수 있다. 금융당국은 보험사가 적게 가정한 해지 위험을 더 인식하도록 하는 방향의 계리 가정 가이드라인을 연말 결산부터 적용하도록 했다.
문제는 보험부채 가정 변경 반영이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손해율 가정을 제시하면서 회사 내 결산 시스템 수정 등 물리적 한계가 있다면 올해 1분기까지 반영할 수 있도록 했다. IFRS17 도입 당시 다소 높게 설정했던 보험부채 할인율을 현실화하는 연착륙 방안도 올해 1월부터 적용된다.
보험사들은 올해 1분기 일부 지표 하락에 대비하고 있다. 조은영 삼성화재 장기보험전략팀장은 지난 12일 “무‧저해지 가이드라인으로 가정 변경을 (지난해) 12월에 했는데 보험료 인상이 4월 예정이라 1분기에는 (CSM) 배수가 전반적으로 하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종원 메리츠금융지주 위험관리책임자(CRO)도 19일 “화재는 향후 예정된 할인율 변경 등을 위해 자본 확충을 했다”고 말했다.
보험사의 지급여력비율(K-ICS)도 떨어졌다. 지급여력비율은 보험사가 지급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 금액 대비 준비한 금액을 말한다. 보험부채가 늘어나면 준비해야 하는 금액이 늘며 지급여력비율이 떨어진다. 삼성생명의 지난해 연말 기준 지급여력비율은 180%로 전년 말에 비해 39%포인트(p) 하락했다. KB손해보험의 지난해 지급여력비율도 188.1%로 전년보다 27.8%p 줄었다. 금융당국은 지급여력비율을 150% 이상 유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지만, 200%를 넘기지 못하면 배당에 제한이 생길 수 있다.
이밖에 KB라이프생명은 지난해 연말 기준 지급여력비율이 64.5%p 떨어진 265.3%를 기록했다. 신한라이프의 지난해 지급여력비율도 206.8%로 전년 대비 44%p 하락했다. 메리츠화재 역시 지난해 4분기 지급여력비율이 247.6%로 직전 분기 대비 9.4%p 줄었다.
보험업계에서는 금융당국이 보험사가 자율적으로 산출한 추정치에 개입해 부담을 늘린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금융당국은 현재까지 나온 것 이상의 가정 변경은 더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권홍 금융감독원 보험계리상품감독국장은 “지난해 IFRS17 안정화 로드맵으로 주요 회계적 이슈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됐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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